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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7 조회수1,778 추천수9 반대(0) 신고

 


2020년 3월 27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지혜 2,1ㄱ.12-22

악인들은

1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

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22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복음 요한 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세 때 어느 수도원에서는

기도 중간에 수사 한 명씩

나와서 영적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한 수사님은

이 시간이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말재주가 없었고, 특히 남들 앞에

서면 떨려서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원장 수사님을

찾아가서 다른 수사님께 방해가

될 뿐이니 자신은 빼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원장 수사님은

이럴수록 더 많이 해야 한다며

오히려 세 번 연속으로

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첫 번째 나눔 때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아십니까?”라고 말합니다.

모든 수사는 고개를 흔들며 모른다고

 표시했지요. 그러자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분명히 아십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열심히 사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 날, 전날과 같이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수사들은 전날과 달리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여러분이 모두 아는데 제가 무슨

 말을 더 드리겠습니까? 그저 아는

대로 실천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나눔 때,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아십니까?”

라고 또 묻습니다. 이에 절반은

고개를 안다고 끄덕이고 나머지는

고개를 모른다고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반반씩이니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모르는 것도, 아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하느님께 맡기면서 열심히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주면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맡기면서 열심히 살지 못하는

우리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아는 척하며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과거 예수님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나자렛에서 살았다는 것은 알지만

 베들레헴에 대해서나 그분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아버지에

대해서도 참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만 정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라는 확신을 두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잘못 아는 것은 커다란 문제가 됩니다.

잘못 알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으로 몰았던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 맡기면서 열심히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이 마치 하느님의

뜻인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늘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사람만이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는 사상이나 힘으로

승리한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귀한 미덕을 가진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로맹 롤랑)

진상을 부린다.

‘진상을 부린다. 진상을 떤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운 짓을 할 때 많이 쓰는 말이지요.

그런데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진상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 다른 이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늘어놓는 사람,

불같이 화를 자주 내면서도 자신은

뒤끝이 없다고 하는 사람,

그 밖에도 많은 진상 신앙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신앙의 힘으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진상 신앙인들은 자신이

진상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모릅니다.
이렇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피곤한

진상 신앙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말했듯이 신앙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성지순례 스탬프 찍는 분들이 많아지는

코로나 사라지는 날이 빨리 오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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