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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라반의 추격[19] / 야곱[3] / 창세기 성조사[6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30 조회수1,358 추천수1 반대(1)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9. 라반의 추격 

 

아무튼 야곱이 하란을 떠난 배경에는 하느님의 심오한 섭리가 있었다. 더 이상 야곱을 하란에 내버려 두었다가는 그곳 사람들과 너무 깊은 관계가 형성되어, 그의 본고장행은 영영 불가능했을 수도. 더군다나 그가 사랑하는 라헬도 우상의 맛을 아직도 버리지 않은 상태임을 고려한다면, 지금이 최적기라 여겨지기도.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즈음 해서 그를 하란에서 불러내시는 거다. 야곱이 달아났다는 소식이 사흘 만에 라반에게 전해졌다.

 

야곱은 하란의 평원에서 유프라테스 강(15,18)을 건너, 요르단 강 건너편 비옥한 지대인 길앗 산악 지방에 들어섰다. 여기서는 가나안으로 가는 속도가 더디다. 산악 지형도 복잡하지만, 그 많은 가축의 이동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목축 지역이라 가축의 먹을거리가 많아, 더더욱 나아가는 게 더딜 수밖에. 그리고 라반 외숙 몰래 사흘거리를 숨 가쁘게 달려온지라, 나름으로 긴장도 다소 풀렸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라반은 그의 친족을 이끌고 야곱의 뒤를 쫓아 이레 길을 달려와, 길앗 산악 지방에서 야곱을 따라잡아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 밤 꿈에 하느님께서 아람 사람 라반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야곱에게 돌아가라.’라고 이르신 그 베텔의 하느님께서는 라반에게도 이제 그의 귀환은 기정사실 인만큼,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라반이 야곱에게 다다랐을 때, 야곱이 산악 지방에 천막을 쳤으므로, 라반도 자기 친족과 함께 길앗 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이레 길을 달려온 그인지라 긴장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지만, 그래도 점잖게 말로서만 조카에게 접근한다. 어쩌면 꿈에 나타난 야곱의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할 게다.

 

라반이 야곱에게 따지면서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전쟁 포로처럼 끌고 가다니, 어찌 이럴 수가? 어째서 나를 속이고 몰래 달아났는가? 나에게 왜 알리지 않았나? 그랬다면 내가 손북과 비파로 노래 부르며, 기쁘게 자네를 떠나보내지 않았겠나? 왜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게 해 주지도 않았는가? 자네가 한 짓은 참으로 어리석기만 하네. 나는 자네들을 해칠 수도 있지만, 어젯밤 자네 아버지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네. 그런데 자네는 아버지의 집이 그토록 그리워 떠났다고는 하지만, 내 집안의 수호신들은 어째서 훔쳤나?”

 

야곱이 대답하였다. “솔직히 장인어른께서 제 아내들을 빼앗아 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냥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장인어른께서 저희 가운데 누구에게서든 어른의 것들을 발견하신다면, 그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제 짐 속에 장인어른의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저희 친족들이 보는 앞에서 다 찾아내어 가져가십시오.” 그는 라헬이 그것들을 훔쳤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라반은 야곱과 레아, 그리고 두 여종의 천막에 들어가 보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라헬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라헬은 그 수호신들을 낙타 안장 속에 숨겨 넣고는 그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라반은 천막 안을 이리저리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하였다. 라헬이 다가오는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금 몸이 있어, 아버지 앞에서 일어설 수가 없답니다.” ‘어른 앞에서는 일어서고, 노인을 존경해야 한다.’(레위 19,32) 어쩌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의범절은 다 같나 보다. 그리고 몸이 있다는 라헬의 말은 저에게 여인들의 길이 있다는 뜻으로 월경 중임을 가리킨다. 라반은 마지막으로 여러 곳을 두루두루 더 찾아보았지만 결국은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러자 야곱이 화를 내며 라반에게 다그치며 따졌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악착스레 쫓아오셨습니까? 제 물건을 샅샅이 뒤지셨는데, 장인어른 집안의 기물 가운데 어디 하나 무엇이라도 찾아내셨습니까? 여기 저와 장인어른의 친족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당장 내놓으십시오. 그들이 우리 사이의 시비를 만천하에 다 가리게 하십시다. 저는 지난 이 이십 년을 장인어른과 함께 지냈습니다.” 야곱에게는 흘러간 그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계속 화를 내며 따진다.

 

그동안 장인어른의 암양들과 암염소들은 유산한 일이 없고, 저는 어른의 양 떼에서 숫양들을 잡아먹은 적이 결코 없습니다. 들짐승에게 찢긴 것은 장인께 가져가지 않고 제가 물어냈습니다. ‘맹수에게 찢겨 죽은 증거물로 내놓으면, 찢겨 죽은 짐승은 배상하지 않는다.’(탈출 22,12) 라고 하지만, 결국은 제가 장인께 그 손실분을 제 책임으로 보상해 드렸습니다. 더구나 낮에 도둑을 맞든 밤에 도둑을 맞든 장인께서는 그것을 언제나 저에게 물리셨습니다. 낮에는 더위가, 밤에는 추위가 저를 괴롭혀, 저는 눈도 단 한 순간 제대로 붙이지 못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야곱의 화는 절정에 이른다. “이 이십 년을 저는 장인어른 댁에서 지냈습니다. 그 가운데 십사 년은 어른의 두 딸을 얻으려고, 그리고 육 년은 어른의 가축을 얻어드리려고 온갖 궂은일을 다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장인어른께서는 저의 품값을 자그마치 열 번 이상이나 바꿔 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아버지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두려우신 그분께서 정말 제 편이 되어 주지 않으셨다면, 장인어른께서는 저를 틀림없이 빈손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의 이 고통과 제 손의 눈물겨운 그 고생을 보시고, 어젯밤에 시비를 장인어른께 가려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앞으로 야곱의 하느님까지 되실 그 두려운 하느님께서 정말 야곱의 편이 되어 주셨다. 기세등등하게 이레 길을 추적하며 달려온 라반에게 꿈에서까지 나타나 야곱의 앞길을 열어주셨다. 그래서 야곱은 양쪽의 여러 친족이 보는 앞에서 외숙 라반에게 지난 이십여 년의 그 한 많은 세월에 담긴 이야기를 당당하게 털어놓았다. 야곱의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께서 베텔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28,15) 그분께서는 역시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이심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였다. [계속]

 

[참조] : 이어서 '20. 야곱과 라반의 계약‘ / 야곱[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라반,추격,이십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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