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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야곱과 라반의 계약[20] / 야곱[3] / 창세기 성조사[6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31 조회수1,342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 야곱과 라반의 계약

 

그래서 야곱은 양쪽의 여러 친족이 보는 앞에서 외숙 라반에게 지난 이십여 년의 그 한 많은 세월에 담긴 이야기를 당당하게 털어놓았다. 야곱의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께서 베텔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28,15) 그분께서는 역시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이심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였다. “이 여자들은 내 딸들이고 이 아이들은 내 손자들이며, 이 가축 떼도 내 가축 떼일세. 자네가 보고 있는 것들이 모두 내 것이네. 그렇지만 오늘에 와서 내가 여기 있는 내 딸들이나 그 애들이 낳은 아이들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니 이제 이리 와서 자네와 내가 계약을 맺어, 그것이 나와 자네 사이에 증인이 되게 하세.” 일반적으로 여기서의 계약은 경계와 영토를 확정하는 협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토속 신들이 증인으로 나오는 이런 협정들은 고대 근동에서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들은 바 그대로 야곱의 그 오랜 세월의 한 맺힌 이야기에 라반은 매우 당황한다. 그러면서도 애초의 주장과는 달리, 그 못된 라반은 야곱의 식솔들과 가축들 모든 게 다 자기 것이라고 허황된 주장을 털어 놓는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는 분명히 풀이 죽어 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자기 고집을 내세우기에는 한계를 느껴, 이제는 야곱을 더 붙잡지 않겠다는 의중을 비춘다. 그러면서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지난날을 앙금을 말끔히 잊자는 취지에서 계약을 맺자고 제안한다. 사실 외숙과 조카 사이의 친족지간에 뭐 별다른 계약 내용이 있으랴? 기껏해야 가족 간의 안부전하는 왕래 이야기가 고작일 게다.

 

그리하여 야곱이 돌 하나를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웠다. 그리고 그는 친족들과 함께 돌들을 가져다 큰 무더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그 곁에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그 돌무더기를 히브리 말의 길엣에 해당하는 아람 말로 여가르 사하두타라 불렀다. ‘돌무더기 증인이란 뜻이다. 그곳은 또 망보는 곳을 뜻하는 미츠파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라반의 말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볼 수 없는 동안 주님께서 우리를 살피시기를 바라네. 자네가 내 딸들을 구박하거나 내 딸들을 두고 다른 아내들을 맞아들일 경우, 우리 곁에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나와 자네 사이의 증인이심을 명심하게.”

 

라반이 야곱에게 다시 말하였다. “이 돌무더기와 우리 사이에 세워 놓은 이 기념 기둥을 보게. 내가 이 돌무더기를 넘어 자네 쪽으로 건너가지 않고, 자네가 나쁜 뜻을 품고 이 돌무더기와 이 기념 기둥을 넘어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이 돌무더기와 기념 기둥이 증인일세.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나호르의 하느님께서 우리 사이의 심판자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네.” 협약의 규정을 파기하면 바로 그 협약이 예고하고 있는 저주를 불러들인다. 고대 계약의 관습에 따라 쌍방의 수호신들이 증인으로 내세워진다.

 

이렇게 계약 내용은 라반과 야곱이 돌무더기와 기념 기둥을 증인으로 세우고 야곱의 하느님을 심판자로 하여 맺은 계약 내용은 가족 문제와 양 집안의 불가침에 관한 것이다. 어쩌면 둘 사이의 이런 계약은 그리 큰 효력이 과연 있을까? 야곱은 아버지 이사악과 형이 있다. 라반도 자기 친족이 하란은 물론 우르에도 더러 있을 게다. 딸들을 야곱에게 딸려 보내는 그 아비의 심정은 알만하다. 두 딸을 구박하지 말고 아예 새장가 들지도 말란다. 그리고 이곳을 경계로 서로 불법적으로 넘나들지 말라는 거다. 야곱도 외숙의 이 제안에 흡족해 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두려우신 분을 두고 맹세하였다. 야곱은 그 산악 지방에서 제사를 함께 지내고, 자기 친족들에게 음식을 함께 나누자고 청하였다. 그들은 모처럼 열린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면서 그 산악 지방에서의 밤을 지냈다. 통상 계약을 맺은 당사자들은 연대성을 더 굳히는 차원에서 식사를 함께 한다. 일종의 공동 운명체의 결속을 다지는 행위이다. 야곱과 라반 일행이 그 오랜 기간의 타향살이를 마무리하는 미츠파의 밤하늘에 별빛도 찬란히 빛났을 게다.

 

베텔에서 하느님을 만나 서원까지 한 야곱의 외숙과의 하란 생활은 이 간단한 계약으로 마무리된다. 앞으로 더 이상 둘의 만남은 없을 게다. 아니 더는 없었다. 하느님을 믿고 이십 년을 묵묵히 견뎌 온 야곱의 삶은, 나름으로 알찬 결실을 거둔다. 하느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는 분이시고, 강자의 편에 서시는 하느님보다 늘 약자 편에 서시는 하느님이시다. 이튿날 아침 라반은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고 축복해 주었다. 그런 다음 라반은 길을 떠나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라반의 활동무대는 더 이상 성조사에서는 사라졌다.

 

야곱은 그래도 라반 외숙의 축복을 받으며 해피엔드로 하란에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그가 머문 브에르 세바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에사우 형을 피해 부모님과 작별한 후 이십 년 만이다. 간단한 단봇짐에 홀로 야반도주하는 모습으로 떠나온 고향으로, 이제는 다시 요르단 강을 건너 지나온 그 길을 따라 남으로 길을 떠났다. [계속]

 

[참조] : 이어서 '21. 형에게 심부름꾼 보냄‘ / 야곱[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돌무더기,길엣,미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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