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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과 씨름한 야곱[2/3][25] / 야곱[3] / 창세기 성조사[7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5 조회수1,818 추천수4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5. 하느님과의 씨름[2/3]  

 

이런 고요함에 어울리게 초원의 어둠은 별빛으로 흔들리고 달빛은 마치 야곱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 같다. 한 편의 드라마 세트장 같은 풍경이다. 마치 급박한 장면이 연출될 직전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어둠을 뚫고 갑자기 나타났다. 귀신같이 나타나서는 야곱을 혼비백산으로 내몰았다. 야곱은 너무너무 놀랐을 게다. 귀신 곡할 노릇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상대가 귀신인지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꿈이나 환시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아무튼 야곱은 그 사람과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벌였다. 말이 씨름이지 샅바를 매고 모래판에서 벌이는 그런 씨름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상대를 알 겨를도 없이 엉거주춤 움켜쥐고는, 초지에 뒹굴면서 서로 힘자랑을 했을 게다. 이렇게 야곱은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물론 그 상대는 자신의 신분을 끝내 감추면서 야밤에 서로의 힘내기를 숨 가쁘게 벌였다. 상대가 하느님의 천사인지, 아니면 하느님인지도 모르면서, 야곱은 그 상대와 밤새우면서 사투를 벌였다.

 

동이 틀 때까지라는 말은 씨름이 오래 계속되었음을 나타내며, 더구나 상대를 모르는 채 그와 겨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둠에서 상대를 모르는 채 죽기를 각오하고 겨루었다나. 만약 야곱이 그 상대가 베텔에서 본 그 하느님이었다면, 그렇게 대적했을 리 만무했으리라. 아니 그분의 천사였더라도 그는 절대 겨루지 않았을 게다. 아무튼 그 밤의 공격자는 빛을 두려워했는지, 빛이 발하는 동이 트려니까 물러갈 기세다. 빛에 어둠이 물러가듯이 그렇게 말이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이길 수 없다면 항복을 선언하고 재대결을 하든지 해야지, 상대를 쳤다는 것은 어쩌면 반칙이다. 그만큼 상대가 야곱에 비해 다급했을까? 사실 치다라는 히브리 말은 본디 만지다를 의미한다. 사실은 그 상대는 야곱의 엉덩이를 살짝 만졌을 수도. 그러나 야곱은 지금 제정신이 아닌지라 만졌는지 쳤는지를 어쩌면 모를 수도 있었을 게다.

 

지금 그는 형 에사오를 만나야 할 긴박한 상황에 처한 몸이다. 그리고 밤이고 주위엔 아무도 없다. 그런 야곱에게는 극도로 긴장된 처지인지라, 어쩌면 실제 활동 반경이 자연 클 수밖에. 그렇게 그가 죽기 살기로 마냥 덤비니까, 상대가 야곱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사전에 경고성으로 살짝 만지는 흉내를 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받아주는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게 만지는 게 아닌 쳤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게다.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막무가내다. 아예 그는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꾸한다. 왜 야곱은 축복을 달라고 했을까? 상대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고, 감히 싸우다 말고 축복을 얻으려 한 이유는? 아마도 야곱은 상대에 대한 힘의 한계를 분명히 느꼈을 게다. 어쩌면 상대가 자기보다 무한의 힘을 가진 분이심을 직감을 했을 수도. 그래서 야곱은 이미 상대는 처음부터 자기를 시험하는 것임을 알아채고는, 어쩌면 이 고독하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축복을 달라고 감히 요청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축복 주는 것을 마다하고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 이름은 비록 부모님이 지어주지만, 그 사람의 임무와 소명과 운명을 포함한다. 그래서 상대가 이름을 묻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축복을 받기 전에 축복받을 준비를 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나아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자기를 한번 되돌아볼 여지를 만들라는 것일 수도. 또한 이름을 이렇게 묻는 이유는 자신이 지금 네게 어떤 희망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은연중 암시하는 취지를 전하기 위함도 있을 게다.

 

그는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이리하여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개명이 된다. ‘하느님께서 싸우시기를!’ 또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시기를!’을 뜻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 이름은, 야곱이 초월적인 존재를 거슬러 싸우는 가운데 보여 준 기력과 그가 대표하는 자연의 힘과 연계되어 있다. 이 이름은 이제 야곱과 그의 후손의 운명을 규정했던 싸움을 상기시키는 징표가 되리라.

 

이어서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하느님께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곧 자신을 내어 줌을 뜻한다(탈출 3,13-15).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신비를 보존하시기 위하여 손수 이름 밝히기를 거절하지만,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시면서, 야곱이 이미 받았던 몇 번의 축복을 재확인시키셨다.

 

사실 축복해 주다복을 내려 주다는 히브리 말에서 똑같은 동사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분이시다. 야곱과 그의 상대가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때는 축복하자로 할 수 있지만, 이제는 야곱도 그 상대가 하느님이심을 알았고, 그분께서도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면서까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신 것만큼 성경 저자는 아예 복을 내리다로 하느님의 존재를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새로운 사명을 지닌 삶을 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형의 눈치만을 보는 연약한 동생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에서 성조사의 한 일부로 자리매김하는 지위까지 얻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한 민족을 상징하는 이름도 되었다. 하느님은 이처럼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준 이유까지도 분명히 밝히셨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32,29)

 

이제 야곱은 새 이름 이스라엘로 형 에사우를 성공적으로 만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동이 트자 하느님은 어둠 속으로 홀연히 떠나시고, 야곱은 간밤에 하느님을 대면하고도 살아남았음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그는 그분의 모습을 감히 보지를 못했다. 대화는 많이도 나누었지만, 다시 또 어디서 또 만나도 그분께서 과연 누구이신지를 아마도 모를 게다. 아마도 만나도 만나지 않은 것 같고, 만나지 않아도 만난 것 같은 분이 하느님이신가 보다. 더구나 만나고 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하느님이시지만, 야곱은 그분을 만나고도 살아남았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형 애사우를 어디서 만나더라도 분명히 살아남으리라. [계속]

 

[참조] : 이어서 '26. 하느님과 씨름한 야곱[3/3]‘ / 야곱[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씨름,이스라엘,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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