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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주간 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6 조회수1,390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라자로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치에 참석하시는 장면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마르타는 시중을 든다고 바쁩니다.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다가 비싼 고가의 향유를 부어서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립니다.

 

제가 예전에 영세를 받기 전에 아로마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로마 향도 좋아서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디퓨즈로 발향이 되면 오일에서 나오는 향기는 정말 그윽합니다. 오늘 마리아의 머리카락이 디퓨즈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했지만 실제 복음에서 암시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향유는 역대하 16장에도 나옵니다만 장례에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마치 어쩌면 병자성사를 할 때 사용하는 성유로 도유하는 그런 느낌을 준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는 이게 그런 상징적인 걸 뜻한다는 걸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참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했다고 보여집니다. 비싼 향유로 해드린 걸 보면 그렇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유다는 못마땅해 합니다.

 

비싼 향유로 차라리 그걸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더 좋을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유다는 그런 마음보다는 자기의 마음이 도둑과도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복음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저는 오늘 유다의 이런 심리 상태와 오늘 나자로에 대해 묵상을 하고자 합니다. 유다의 심리 상태를 보면 저는 이게 일반적인 우리 신앙의 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신심에 비유하면 아주 적절한 예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아주 신심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누구는 약간 요즘 말로 말하면 티는 행동을 하면 좀 유별나게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달리 보면 자기는 그렇게 열심한 신앙을 하지 못하니 열심히 하는 사람을 시기하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오늘 유다의 모습은 시기는 아닙니다. 시기는 아니지만 남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가리려고 하는 면에서는 신앙에 비유하면 아주 졸열한 모습입니다.

 

사람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을 보면 자신도 그런 사람처럼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음악에 달란트가 완전 꽝입니다. 그래서 음악적인 재능을 가진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부러워는 하지만 절대 시기는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분들의 그런 재능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정말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런 분들이 없다면 가령 성가대 말입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전례도 더 풍요롭다고 생각합니다. 장례미사를 보더라도 성가대원들이 불러주시는 성가가 정말 어떤 경우는 그 은혜로운 성가가 하느님의 마음을 울리는 듯한 그런 은혜로움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을 질투를 한다고 한다면 자기가 마지막 하느님 앞에 가는 의식인 장례미사를 할 때 그런 게 없다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찔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께서 그 성가를 들으시고 마음이 어떻게 변하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복음에서 유다는 예수님께 큰 잘못을 했지만 베드로도 나약해 예수님을 배반했어도 두 사람의 평가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회개를 하고 안 하고 차이가 나지만 이것 외에도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는 유다의 모습은 자신의 일을 합리화하려는 명분에서 남을 단죄하는 그런 모습은 정말 있어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자신이 모르는 이런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이런 일은 자신의 영혼이 병들어가는 모습이라 정말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나중에 다 생명책에 자기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을 거라서 그때 돌이켜 후회해봐야 소용없을 겁니다.

 

어제 새벽에 예전에 개신교에 다닐 때 아는 자매님이 영상을 하나 보내주셔서 봤습니다. 개신교 간증이지만 지금까지 제가 들은 모든 간증 중에서 정말 어제는 소름끼칠 정도로 이 세상에 살면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내 주신 분은 서울에서 참 친하게 지낸 분이고 저를 교회에 나가게 한 분이라 제가 가톨릭에 있는 걸 알아도 가톨릭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개신교로 오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 영혼을 위해서 나중에는 천국에서 같이 만나자고 하시면서 열심히 하자고 합니다. 저도 가톨릭의 중요한 자료가 있으면 보내드립니다.

 

저는 어제 그 영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이 짧은 세상에 살면서 남 신경쓸 시간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만 챙기자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자기 영혼 구원을 생각하면 내 코가 석자라서 남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씻기도 바쁜데 한가하게 남 신경쓸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갑니다. 우리는 살아간다고 하지만 달리 표현하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제 그 영상을 보면서 제 영혼이 하느님 앞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을 매일 아침마다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십분 매일 묵상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하느님의 심판대에서 저의 죄를 씻기 위해서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는 교부들의 주옥같은 말씀을 생각하며 제가 생각과 마음으로 지은 죄도 씻으려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제 영혼은 비참할 겁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 이야기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이야기로 흐르는지 모르겠네요. 나자로 이야기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약간은 언급하려고 합니다.

 

오늘 나자로 이야기는 약간 등장합니다만 많은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사람들이 나자로도 죽이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나자로가 죽었다가 예수님 덕분에 살아났잖습니까?

 

사람들이 이걸 보고 나서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어 나자로를 죽이려고 한다고 나옵니다. 저는 이 복음을 많이 봤지만 오늘 새벽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지지난 주 주일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자로의 병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내용 말입니다. 이 말씀과 연결시켜 묵상을 해보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은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되어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좀 더 넓게 보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말 못할 핍박이나 어려움 이런 것도 여기 세상에서는 고통처럼 보일 수가 있지만 나중에 하늘 나라 가서는 고통이 찬란한 영광으로 예수님께서 타볼산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모하신 것처럼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상상을 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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