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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은 아무나 하나 (요한15:7-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4 조회수1,282 추천수0 반대(0) 신고

 

5월 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공동번역성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

 

(요한15:7-19)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11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13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15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 주실 것이다. 17 서로 사랑하여라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도 나를 먼저 미워했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19 너희가 만일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세상은 너희를 한 집안 식구로 여겨 사랑할 것이다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내가 세상에서 가려낸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 성도들에게 포도나무의 열매로서의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포도나무의 열매에서 출발하여 사랑까지 가서 사랑과 미움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는 단순히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착한 삶이 아닌 것입니다아울러 열매의 본질로 거론이 된 사랑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뿐만 아니라 종교적 열심이나 종교화 된 삶도 열매의 본질은 아닙니다마태복음 7장으로가서 확인해 보지요.

(마태7:21-23) 21 '나더러 '주님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 간다. 22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주님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나에게서 물러가라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여기 보면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며 예언자 노릇도 하고 마귀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 나오지요쉬운 말로 엄청난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매몰차게 내어 쫓으십니다심지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성도에게는 그러한 종교적 열심이나 종교화된 삶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21절의 말씀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그들이 바로 천국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마태7:24-27) 24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25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 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쳐도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26 그러나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잘 보면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행위에 국한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주님께서 원하시는 참 열매는 주님의 말을 들었느냐 아니냐 에서 결판이 나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한 것과 내 말을 듣지 않고’ 행한 것 즉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순종하는 마음에서 행한 일과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행한 일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삶 속에서 맺혀야 하는 열매는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고후10:5-6) 5 하느님을 아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오만을 쳐부수며 어떠한 계략이든지 다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6 그리고 여러분이 완전히 순종하게 될 때에는 모든 불순종을 처벌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보다시피 하느님께서 지금도 이 역사와 우주를 경륜하고 계신 유일한 이유는 당신의 백성들을 하느님께서 복종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함이며 훗날 하느님께 복종치 않은 것들을 벌하시기 위해 지금도 이 역사와 우주를 붙들고 계신 것입니다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 다른 것 할 것이 없습니다착한 일 선한 일 종교적인 일에 힘쓰기 전에 우선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고 그 분의 사랑과 은혜의 크기를 알며 우리의 보잘것 없음을 깨달아 하느님의 말을 듣는 자로 그 분에게 완전히 항복하고 복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면 되는 것입니다.

 

(에레11:4) 4 이 계약은 쇠를 녹이는 가마 같은 에집트에서 너희 조상을 건져 내 올 때 지키라고 명한 것이다나의 말을 들어 시키는 대로 다 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리라고 했던 그 계약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자격 조건을 명확히 밝혀시지요? ‘착하게 살아라제사 열심히 드려라좋은 일 많이 해라?’ 아닙니다. ‘내 말을 들어라’ 입니다하느님을 신뢰하고 그 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라는 것입니다

 

(마태17:5) 5 베드로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인간들에게 내어주시면서 그들에게 주시는 당부의 요점이 뭡니까? ‘너희는 내 아들의 말을 들으라’ 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자기부인과 순종만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당신의 명령을 어기는 자가 없도록 철저하게 당신의 나라를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자신의 소원을 곧추세워 하느님을 이겨 먹으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러한 자들의 환도 뻐를 언제든지 내리칠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얍복강 가에서의 야곱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지요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하느님마저도 이겨 먹으려고 하는 그러한 불순종의 모습을 하느님은 가차없이 부숴 버리십니다 결국 하느님의 복을 받은 야곱의 모습이 하느님이라는 지팡이를 평생 의지하여 살 수 밖에 없는 자로 이 세상에서 드러났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옛 사람의 잔재와 우리 안에 오염으로 남아있는 불순종의 죄성과 이기심을 난타 당하며 조금씩 자신을 허물어 가는 과정에 서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누가 예수를 믿으면 자신이 원하는 자아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까예수를 믿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 꼭대기에 올라앉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까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성도가 예수를 믿으면 끝없이 자신의 본연의 자리인 티끌의 자리로 추락을 하게 되어있지 절대 육욕과 정욕과 탐심의 고지에 올라가게 되는 것이아닙니다.

 

우리는 친구인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로 지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친구는 닮음과 동질을 전제하는 관계니까요우리의 친구 예수가 어떻게 사셨지요?

(요한8:29) 29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하느님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습니다자기의 기쁨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아버지의 기쁨을 위한 일이었습니다그런데 그 일을 하다보니 그것이 바로 자신의 기쁨임이 드러나더라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분은 죽음 앞에서도 내 안에 기쁨이 있으니 이기쁨을 너희에게 주고싶다’ 라고 말씀을 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자기의 뜻과 자기의 소원이 아닌 하느님의 기쁨과 뜻이 그 분의 삶과 목적이셨던 것입니다우리도 그렇게 바뀌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6:38-39) 38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일 즉 창세전에 택하셔서 예수님께 주신 당신의 백성들을 모두 살려서 건져 올리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그건 십자가라는 毒盃를 마시는 것이었고 음부의 고통을 몸소 겪어야 하는 무서운 일이었습니다그런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그러했습니다예수님은 마다하지 않으시고 그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우리가 바로 그 친구의 삶을 닮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필립2:5-9)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아니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7절에 있는 자기를 비워 종의 신분를 가졌다’ 는 것은 능동태로 되어있고 8절에 있는 순종 하셨다’ 는 말씀은 수동태입니다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문제에 있어서 자기를 비워 종의 신분을 가지는 능동적 순종이 앞서 있고 그 능동적 순종에 하느님의 뜻이 덮여 지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수동의 내용이 참으로 기가 막힌 것입니다하느님이신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자신이 창조한 이 땅으로 내려와 피조물들에게 온갖 수난을 다 당하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그것이 비워진 예수라는 존재 안에 들어온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수행해 내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가 어떠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그렇게 예수님은 일단 자신의 뜻을 비우고 하느님께 복종하는 상태가 되어 그 빈 自我에 하느님 아버지가 무엇을 담아도 순종을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그러나 결국 그 뜻이 최고의 선으로 결론이 난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하느님의 백성들은 자기를 비워내야 합니다그리고 하느님께서 그 빈 그릇에 어떤 뜻을 담으시던지간에 오롯이 순종을 해야 합니다그 때 완전하신 하느님의 온전한 계획과 목적이 다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그것이 최고의 선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한 분만이 완전하시며 최고의 행복과 선에 이르는 방법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의 뜻은 자꾸 버려져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나 성도들의 삶 속에서 자주 우리들의 뜻을 꺾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그것은 우리가 능력이 없고 믿음이 없고 열심이 부족해서 그런 일을 겪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열심이 우리를 압도하여 당신의 계획 속에서 여러분을 만들어 가시고 계신다는 훌륭한 증거인 것입니다이렇게 성도는 하느님께 순종하며 하느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 것입니다그 열매를 하느님께서 맺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길에 가난이나 질병이나 사고나 이별 등이 우리에게 도구와 방법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그 때 우리는 고집스럽게 자기만을 사랑하던 자아를 해체시키게 되는 것이고 자신의 소원과 뜻을 밀어내고 하느님의 소원과 뜻을 조금씩 자아 안에 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성도의 힘이고 성도의 잘됨이며 강함입니다.

 

성도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의 힘이 되어 하느님을 중거하고 자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 저를 좀 강하고 센 자로 만들어 주세요’ 라는 요구에 아니 난 너를 강한 자로 만들어 주지않을 거야 내가 너의 강함이 될거야’ 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입니다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시는 것을 온전히 자신의 기쁨으로 삼아 사셨어요그 기쁨이 예수님에게 힘이 되셨지요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것만이 자신의 기쁨이며 그게 바로 자신의 힘이며 그게 바로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명확히 아셨습니다.

 

(요한4:30-34) 30 그 말을 듣고 그들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 모여 들었다. 31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무엇을 좀 잡수십시오하고 권하였다. 32 예수께서는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33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누가 선생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을까?' 하고 수군거렸다. 34 그러자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

예수님의 양식은 당신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었습니다양식이라는 것은 '힘의 원천을 말하는 것입니다양식과 음식은 다릅니다음식은 생명과 힘의 원천으로서의 개념보다는 기호와 관계있는 단어입니다음식은 먹어도 되고 안먹어도 되는 기호에 더 관계되는 단어임과는 달리 양식은 없으면 죽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양식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과 힘의 원천을 하느님의 말을 듣는 것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됨이나 우리의 부유함이나 우리가 가진 명예등으로 우리를 자랑하는 것을 힘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하느님이 처하게 하신 상황과 환경과 정황 속에서 그 분을 여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며 의존하는 자로 서는 것을 우리의 힘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다른 이들이 그런 우리를 보고 ’ 저 사람은 어떻게 저 상황속에서도 저렇게 담대할까어떻게 저 사람은 저런 일을 겪고도 자기의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가?’ 하는 놀람의 탄성을 지를 수 있어야 합니다그게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며 그게 바로 진정한 성도의 힘이며 강함인 것입니다하느님은 결국 우리를 그렇게 당신의 뜻에 순종하는 자로 지어내시기 위해 우리에게 작은 고난들을 반복하여 허락하시는 것입니다.결국 우리는 우리의 목숨까지도 하느님 앞에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절대의존적 존재로 완성이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6:33-35) 33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 34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선생님그 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35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양식을 찾으러 온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먹으라고 하시지요그렇게 하늘의 빵으로 하늘의 양식으로 이 땅에 오신 당신을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생명을 얻는다고 하십니다곧 영생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양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습니까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그 분의 일을 성취하는 것이라 했지요우리가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그 말은 곧 예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동일한 말인 것입니다성경은 그것을 생명이라고 말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워내고 자신을 부인해 내는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은 우리를 그 자리로 열심히 끌고 가고 계신 것입니다하느님의 뜻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타락을 하여 이제는 자기만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버린 죄인들이 원래의 창조의 목적 아래로 돌아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자기 자신만이 아닌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자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그게 순종이며 그게 자기 부인이며 그게 계명지킴이며 그것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로마13:8-10) 8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9 '간음하지 말라살인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탐내지 말라라는 계명이 있고 또 그 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0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정체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율법의 완성이 사랑인 것입니다율법이 정죄의 잣대나 심판의 도구로 쓰였다면 우리는 모두 큰 일 날 뻔 한 사람들입니다다행히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계명을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뻔뻔스럽게 계명을 지킨 자가 된 것입니다.

 

(고전 13:4-7)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사랑은 친절합니다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보세요이렇게 오래 참고 믿어 주며 바라고 견디는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의 이 부족함을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율법 즉 하느님의 계명은 사랑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임과 동시에 그 성취의 방법 또한 사랑인 것입니다그래서 율법의 완성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그 사랑을 아는 자들만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자로 성숙이 됩니다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에게만 요구될 수 있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사랑은 하느님 나라에 소속된 자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아주 신성하고 구별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요한13:34-35) 34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서로 사랑하여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라는 어절에서 너희’ 가 제한하는 무리가 어떤 무리일까요하느님 나라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지금 이 말씀은 가리옷 유다가 예수님을 팔러 나간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왜 굳이 가리옷 유다가 예수님을 팔러 나가자마자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을까요가리옷 유다는 그 사랑하라’ 라는 명령에서 제외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하느님이 성도에게 요구하시는 사랑’ 은 먼저 소속’ 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세상 사람들은 절대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그 말을 잘 새겨들으셔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은 주님 안에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하느님의 선택에 의해 주님에게 넘겨진 자들이며 그로인해 믿음을 통하여 주님을 알게 된 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인 것입니다성경은 그들을 계명을 지키는자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주 실수하고 자주 넘어집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명을 지키는 자들인 것입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비록 지금은 예서 사람의 방해로 너무나 자주 넘어지고 쓰러지기는 하지만 순종이라는 고지를 향하여 열심히 넘어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그 모습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살게 결정된 자들의삶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들은 계명을 지킨 자라 불리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로 불리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선언적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히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불쌍한 이를 감싸주며 매력있는 이에게 호감을 던지는 그런 종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으로 그 분의 은혜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과 불가능함을 깨달은 자들이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사랑과 은혜와 완성된 언약의 결론 안에서 그 복음의 내용을 몸으로 체감하고 체득하며 경험하는 그 모든 삶 자체를 사랑이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전히 자신만을 사랑하느라 아내의 불편함을 나 몰라라 하고 자신의 요구만을 주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괴로워하면서 난 왜 여전히 이 모양일까왜 나는 예수를 이렇게 오래 믿었는데 여전히 나만을 사랑하는 것이지정말 괴롭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될 뻔했는가?’ 하고 자신에 대해 절망하셨을 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사랑은 자기부인에서 격발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랑의 행위를 했는가 안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자기가 부인 되었는가 얼마만큼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가 사랑 있음의 가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부인 속에서 한 발 더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성숙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때때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하고 다투고 미워하는 가운데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그게 바로 복음입니다미움 속에서도 다툼 속에서도 사랑한 자라고 칭함을 받는 그 은혜의 역설을 우리는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그래서 복음인 것입니다하느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작품은 이미 영적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께 선택을 받는 그 순간 그는 이미 사랑하는 자가 됩니다그러나 그 자신이 어떻게 사랑한 자가 되었는지를 그가 깨닫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실패와 절망의 경험이 소용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그게 바로 시편 기자가 입만 열면 노래하는 야훼의 율법이 어찌 그리 즐거운지요’ 라는 고백의 진의인 것입니다.

 

(에페1:15-16) 15 나는 여러분이 주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16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지금 에페소 교회를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그들이 이미 주 예수 안에 있고 그들 안에 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이 말은 그들이 서로 서로 열심히 사랑하고 있었다는 그 상태를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지금 사도 바오로는 교회의 정체성을 들어 에페소 교회를 호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주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고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고 있는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에페소 교회다’ 하고 그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건 교회의 존재론적 본질이니까요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똑같은 에페소서에서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에게 어떻게 권면을 하는지 보세요.

 

(에페3:17-19) 17 그리고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여러분의 마음 속에 들어 가 사실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 감으로써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19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1장에서는 에페소 교회가 이미 믿음과 사랑을 발휘하고 있는자요 예수 안에 있는 자로 소개가 되고 있는데 3장에서는 여전히 진행형이지요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기를 기도한다고도 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고도 합니다 전형적인 이미와 아직의 상태입니다 이렇게 포도나무가 맺어야 할 열매인 사랑은 예수의 사랑을 받아 사랑을 알게 된 자들이 예수 앞에서 전혀 면목 없는 자신들의 실패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성경이 사랑을 소속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것이 아닙니다사랑은 하느님 나라 백성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하고 추악하며 무력한 자임을 알고 낮아지고 낮아질 때 그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진짜 존경과 배려와 이해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그것을 사랑’ 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이렇게 사랑은 소속의 문제입니다그래서 우리와 다른 소속에 있는 이들은 절대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그와 정 반대로 미움을 내어 놓습니다본문 18절 이하로 가보지요.

 

(요한15:18-19)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도 나를 먼저 미워했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19 너희가 만일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세상은 너희를 한 집안 식구로 여겨 사랑할 것이다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내가 세상에서 가려낸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세상은 세상끼리 사랑합니다세상은 절대 하느님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그런데도 하느님 백성들은 자기들을 미워하는 세상 원수들을 사랑해야 한답니다왜냐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하느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다면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그런 세상으로 남겨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 성도는 이 세상 그 누구 앞에서도 자신의 잘남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우린 세상과 소속이 다릅니다그래서 세상이 우릴 미워합니다그것은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기 때문이고 예수의 소유인 우리도 함께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게 멸시를 당하고 미움을 당하며 억지스러운 일로 모욕을 당할 때 우린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진짜 하느님 나라 소속이 맞구나’ 하고 박수를 치셔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도 그렇게 소속이 다른 우리가 세상과 너무 잘 어울려서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함께 추구하며 그들의 욕심과 그들의 탐욕과 그들의 야망을 한 모습으로 흉내 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게 어떻게 가당하겠습니까우리의 삶의 원리는 달라야 합니다.

 

(요일2:15-17) 15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 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17 세상도 가고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소속이 다른 하느님 나라 사람들입니다그래서 이 세상의 힘의 원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악마가 이 세상 것들을 너무나 근사하게 포장을 해 놓았기 때문에 쉽게 포기가 안됩니다이 세상의 힘들이 하느님보다 더 매력 있어 보이고 하느님 보다 더 힘이 세어 보입니다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의 삶 속에 깊이 개입하셔서 그러한 세상의 힘들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가르치시는 것이고 심지어 그러한 세상의 힘들을 빼앗아 보이기도 하시는 것입니다이렇게 사랑은 소속의 문제이며 하느님 앞에서의 항복’ 에서 격발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랑을 한 문장으로 정의 하라고 하면 사랑은 하느님 앞에서의 항복이다’ 라고 정의를 하겠습니다.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 백성들의 사랑을 TV에서 본 그런 저급한 삼류 멜로 드라마 식으로 폄훼하면 안됩니다사랑은 하느님의 열심에서 비롯된 우리의 항복과 순종과 자기부인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사랑은 동정도 아니고 억지도 아닙니다원래 피조물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살아져야 하는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 가 아닌 하느님과 타인을 중심으로 한 그 세상 거기가 천국입니다그래서 천국에서는 모두가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 류의 가짜 사랑처럼 나의 감정의 만족이나 충족이 전제되면 안됩니다이 세상이 정의하는 사랑은 자기만족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조차도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이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내 사랑을 받은 자식이 나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 이라는 막연한 기대.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렇게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다’ 라는 자족. ‘내 사랑을 받은 상대방이 얼마나 행복해 할까그리고 얼마나 나에게 고마워할까?' 라는 희열이 모든 것들이 언뜻 보기에는 아주 지고지순한 사랑 같지요그러나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언제나 ’ 중심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사이인들의 구제나 선행을 하나도 인정해 주지 않으시고 외려 그들의 선행 앞에서 그들을 독사의 새끼들 이라고 욕을 하셨어요.

이렇게 성도에게 요구되는 사랑은 자기가 부인된 상태에서 나오는 겸손하고 면목 없는 사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은 바로 그 열매를 맺고 계신 것입니다어떠세요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들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괴롭지요우리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형제를 미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발각되어질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지요이러고도 내가 예수 믿는 자가 맞는가 하고 자괴감에 치를 떨지요우린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사랑은 그렇게 우리의 친구이신 예수에 의해 오늘도 주렁주렁 열매로 맺히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감사하십시오기뻐하세요그 감사와 기쁨이 우리 모두를 바꿔 내는 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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