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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일의 한 신학자의 기고문을 통해 본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6 조회수1,376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묵상 주제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세상을 추구하는 영혼과 하늘나라를 추구하는 영혼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어떤 사람이 불쌍한 사람인지 말입니다. 하늘나라를 추구한다고 생각하면서 행동을 하는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하느님을 추구하는 게 아닌 것이 될 때 그런 영혼은 참 불쌍한 영혼이 될 겁니다.

 

여러 책에서도 봤지만 실제 지금까지 제가 개종 후 이제 9년이 다 되어갑니다. 지금까지 나름 개종 후에 읽은 가톨릭 영성 서적이 작년에 한번 조사를 해 보니 책 값이 약 천 만원 조금 넘어갔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내용으로 봐서 내린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제가 개종 전에도 책은 읽었지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지식과 영성을 위해서 읽은 게 아닙니다. 개종 후에 영적인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상 수많은 유명한 성인들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말하는 불쌍한 영혼이 어떤 영혼인지 지금까지 성인들의 이야기에서 얻은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많은 날을 밤세워 읽어서 알게 된 것입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 그 많은 책을 읽으면서 눈도 아프고 때론 밤을 세울 땐 열 시간 이상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민하고 묵상하고 천 만원이라는 돈을 투자해서 얻은 걸 하나로 표현을 하면 이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려면 영혼이 순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하겠습니다. 기도를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해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입니다.

 

어떤 유명한 신학자는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신앙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에 하나 첨언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복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대로 은혜를 입을 수가 있지만 기도를 해도 오히려 독이 될 수가 있다는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내용을 잘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걸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복을 청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성경에 청하면 얻을 것이라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과 모순이 되는 것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이걸 설명을 하려면 엄청난 설명이 필요합니다. 결론만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를 하는 목적은 수많은 책에서 보면 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최종적으로 귀결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영혼을 맑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앉아서 기도문만 기도손을 하며 구송으로 한다든지 염경기도를 하는 게 기도가 맞긴 맞습니다. 그런 기도도 교회에서 분명 말하는 기도가 맞습니다. 그런 기도도 중요하지만 기도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영혼이 맑아지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입으로 형식적으로 하는 기도는 하급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삶 자체가 기도가 되는 삶이 진정한 기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인데 그 부분을 잘못 해석하면 말씀을 듣고 여러 가지 활동하는 것보다 더 기도가 은총이 될 것이라고 언급을 하는데 그걸 그렇게만 해석해서 그걸 곧이곧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엄청난 오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가장 큰 오류에 빠지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성경에 나오니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사실 영세를 받고 본당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교구에서 파견한 봉사자로부터도 그렇게 들어서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의 설명을 영어로 번역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분명 기도를 원하십니다. 독일 신학자가 말씀하신 것을 제가 하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기도를 엄청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죽어나 사나 기도만 한다고 하죠. 그리고 미사를 평일미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평일 미사도 빠지지 않고 드리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자 이런 사람을 하느님이 보시기엔 어떤 사람으로 보실까요? 하는 질문으로 설명을 하십니다. 이건 분명 하느님이 보시기에가 아니라 우리가 보기에도 정말 독실한 신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명 이 신학자도 정말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엔 어떤 경우는 빵점자리 신앙인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어떤 경우가 시험으로 말하면 영점이 될까요? 이분이 하나 아주 쉬운 예를 든 게 있습니다.

 

저도 어제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만약 성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성전 청소를 해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전에서 청소를 합니다. 자기는 그냥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그냥 집에 가서 기도를 했다고 가정을 하고 집에 가서도 열심히 기도를 했다고 한다면 하느님께서 보시기엔 이 영혼이 불쌍한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이분이 설명의 편의를 위해 비유로 설명을 한 거지 전적으로 이 예를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신학자가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실제 어쩌면 기도는 그런 상황에서 성전에서 청소를 한 사람이 진정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자 한 것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엔 이 영혼은 청소를 했을 뿐인데 기도를 한 거라고 하시고 실제 조금 전에 성전에서 기도를 하고 집에 가서 기도를 한 그 신자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하느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공동체에 협력하는 게 진정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자칫 잘못하면 신앙생활을 오랜 세월을 하고도 헛 신앙을 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게 단적인 예입니다. 이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은 성경학자가 아니고 신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중에 천국에 가면 놀랄 일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천국에 없을 수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천국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나중에는 정말 이 세상말로 표현을 하면 천지개벽을 할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을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하느님이 만약 싫어하시는 영혼이 있다면 잔머리 굴리는 신자를 가장 싫어하신다고 했습니다. 영어를 풀이한 것을 제가 우리나라 말 표현으로 하자면 이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 같아 잔머리로 표현했습니다.

 

그분이 표현한 것이 이 말 한마디에 다 표현이 됩니다. 저는 이 말이 정말 공감이 갑니다. 잔머리 굴리며 신앙생활하는 신앙인이 왜 하느님께서 안 좋아하는지 이해가 될 겁니다. 잔꾀를 부리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몸은 외형적으로 신앙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세상과 타협을 하며 양다리 걸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진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은 영혼 자체가 순수해서 계산을 할 줄 모르는 그 영혼을 하느님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혼은 준주성범에도 나오지만 이런 영혼이 오히려 하느님 구원의 손길에 더 가까이 있는 영혼이 된다는 것입니다. 준주성범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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