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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25 조회수1,481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람의 진가는 언제 나타날까요? 인생을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사람은 절박할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믿음을 고백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평온할 때는 전혀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잘 모릅니다. 위기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일 때 믿음의 심지가 굳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믿음 고백이 한낱 립서비스임을 말하십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려고 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자신이 살아가는 일에 하나의 큰 장애로 다가오고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의 생명도 부지하기 어렵다는 두려움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한 두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때론 갈팡질팡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 하느님을 믿고 종교를 가진다는 게 어쩌면 어리석은 삶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신에 의존할 수가 있다고 하지만 지금 같은 첨단과학 문명시대에 종교를 가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과연 2000년 전 이들의 모습과 비슷한 점은 없을까요? 어쩌면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겁니다.

 

약간 충격적일 수가 있는데요 작년 가을에 한 수도회 신부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50년 넘게 수도원에서 수도자로서 살았어도 지금도 하루하루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인간적인 육신의 생각과 싸우는 고독의 시간을 보낸다고 하셨을 때 한편으로는 놀랐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한평생을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서원하고 살아도 인간의 육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저도 그 말씀을 가지고 정말 많이 고민해봤습니다. 그 신부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하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이해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항상 하느님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를 하지 않으면 즉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끊임없이 기도로 하느님과 항상 호흡을 하지 않으면 영혼 없는 영혼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을 오롯이 한 분 하느님께 일생을 바치며 살겠다고 서원하신 분들도 이러할진대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범부들은 어떨까요? 추풍낙엽과 같은 신세일 겁니다. 위태위태한 믿음인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오는 고난은 모르겠지만 굳이 찾아서 자신에게 고난을 닥칠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진가와 믿음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삶이 길흉화복과 같은 삶이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과 같은 역동적인 삶이 신앙인에게는 어쩌면 살아있는 십자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도 죽은 십자가가 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는 십자가를 진다고 하지만 영어식 표현을 보면 저는 그리스말을 모르니깐 영어식 표현만 보면 받아들이는 것 좀 더 다르게 표현을 하면 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를 품을 수 있는 신앙인에게는 그 십자가가 살아 있는 십자가가 된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당신의 십자가를 맡기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품는 게 아니라 마지못해 지니고 가는 사람 다시 말해 그 사람은 십자가를 하나의 짐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수준 높은 교부들의 해석을 보면 우리와 같은 범부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실제 십자가를 하느님께서 주신다면 그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100퍼센트 공감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제는 거의 90프로는 이해를 합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 나옵니다. 우리는 어차피 세상에서 고난을 겪는 게 필연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고난이 없는 삶이 있다면 그건 비극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은 그게 행복인 것 같지만 말입니다. 신앙적으로 봤을 때, 믿음의 눈으로 봤을 땐 그렇습니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고난을 정말 고통으로 여기는 것인지 이걸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사랑하셔서 저를 포함한 누구에게나 맡겨진 사랑의 십자가라고 생각하는지 여부는 자신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강도에 따라 그게 사랑의 십자가일 수가 있고 아니면 원망스러운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원망의 십자가라 생각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모양이됩니다. 원망의 십자가를 질 것이냐 사랑의 십자가를 질 것이냐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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