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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신앙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4 조회수1,312 추천수2 반대(0) 신고

 

인생무상과 하느님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 며칠을 묵상한 주제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항구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그게 가능할까도 같이 묵상한 주제입니다. 며칠을 이것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나름 찾은 정답은 있습니다.

 

세상에 살든 수도자로 살든 자기의 위치에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며칠간 노동을 하면서 삶에서 건져낸 묵상이 또 하나 저에겐 저의 신앙에 분수령이 될 것 같습니다. 육체의 안락함 속에서는 하느님을 만나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좋다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합니다. 보통 보면 그런 것을 신앙의 외적인 모습으로 일단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저는 이번에 하나 배운 사실이 있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믿음이 형편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람이 하느님 눈엔 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더 강할 수가 있다는 것을 삶 속에서 체험했습니다. 혹 신앙의 과정에 많은 갈등으로 흔들렸다고 생각한다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에 흔들림이 없다는 게 더 위험한 신앙일 수가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흔들림이라는 건 하느님과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하느님을 더 많이 생각하느냐 아니면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하느냐와 같은 이치입니다. 이 싸움의 무게 중심이 계속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무게 중심이 자주 변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그런 과정에 일부는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만약 개입하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벌써 약간의 시련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이탈되어 하느님과 자신과 그런 줄달리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야곱과 하느님과의 싸움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야곱과의 씨름에서 졌을까요? 하느님이 졌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을 겁니다. 왜 하느님은 만약 처음부터 야곱과 싸움에서 그냥 야곱에게 져주지 않았을까요? 그건 제가 며칠간 체험과 묵상을 한 바로는 야곱의 집념을 먼저 보셨습니다. 다시 말해 마음을 먼저 보신 것입니다. 그다음 야곱과 한번 겨뤄보면서 야곱의 끈기를 시험한 것 같습니다.

 

시험하는 과정에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최대 한계치에 이르렀을 때 야곱이 손을 든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때 하느님이 먼저 손을 드신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이 소진되었을 때 그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될 때까지는 하느님께서 절대 손을 들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야곱과의 싸움에서 하느님이 손을 드셨다는 것은 단지 이기고 지고 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면 하느님의 인정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처럼 야곱과 하느님과의 싸움이 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끝없이 하는 게 신앙의 여정일 것 같습니다. 싸움에는 고요와 평화가 없습니다. 이 싸움이 자신이 지고가야 하는 십자가일 겁니다. 십자가는 오히려 인생의 온갖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이 잘 지고 갈 겁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 단지 강한 바람이 불다보면 약간 휘청할 뿐입니다. 이런 휘청거리는 모습이 혹 믿음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지만 이런 경험 없이 자신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련 속에서 더 자생력이 강하게 작용될 것입니다. 지금 신앙이 나약하다고 쉽게 단정 짓는 건 금물일 겁니다. 신앙만큼을 그 누구도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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