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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디안으로 달아난 모세[5] / 이집트 체류[1] / 탈출기[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30 조회수2,183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 미디안으로 달아난 모세

 

히브리인의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한 그 파라오의 저택에서 히브리인 사내아이 모세가 자란다. 마흔 살이 다 되었을 때(사도 7,23), 그의 마음에 자기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을 찾아볼 생각이 떠올랐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족 가운데 한 사람이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을 보고 이집트 사람을 쳐 죽여, 학대받은 그 사람을 도와주고 그를 위하여 앙갚음해 주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살피고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 죽은 아무도 모르게 모래 속에 깊숙이 묻어 감추었다.

 

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이번에는 히브리 사람 둘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조용히 타이르듯 말하였다. 그러자 그자는 대뜸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어제도 이집트인을 쳐 죽였듯이 오늘은 나도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모세는 이 일이 정말 탈이 나고야 말았구나.” 하면서 몹시 두려워하였다.

 

때마침 파라오는 그 일을 전해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고 그곳 어떤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미디안족은 아카바 만 동쪽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던 하나의 정치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미디안은 기원전 13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번영을 누리고 큰 세력을 떨쳤다. 미디안이 시나이 반도 서쪽과 북쪽으로 요르단 건너편에 이르기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판관 6-8장이 들려주는 갈등 참조)이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는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 정치 집단으로서의 미디안족이 그곳에서 사라진 뒤에는 미디안이 팔레스티나 동남쪽 광야 지역과 거기에 살던 아랍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아무튼 그 먼 길을 달려온 모세가 머문 곳은 우물가였다. 그 넓은 광야에 자리 잡은 우물터는 여행자에게는 쉼터, 유목민들에게는 집합소였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이사악의 아내가 된 레베카를 처음 만난 곳도 우물가였고(창세 24,11), 야곱이 형 에사우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 외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처음 만난 곳도 우물가였다(29,2).

 

아무튼 모세는 파라오의 힘이 크게 미치지 못하는 미디안으로 가서 그곳에 자리를 잡기로 하였다. 미디안족은 아브라함과 크투라 사이에 태어난 넷째 아들 미디안의 후손(창세 25,1-2)으로 탈출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상당히 우호적 관계를 갖지만, 판관시대 이후에는 적대적 관계가 된다. 그런데 미디안의 사제에게는 딸이 일곱 있었다. 이들이 그곳으로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서는 아버지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려 하였다. 그때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아내었다. 그러자 모세가 일어나서 그 딸들을 도와 양 떼에게 물을 먹여 주었다.

 

이 때문에 미디안 사제들의 딸들은 다른 때보다 일찍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집에 갈 수가 있었다. 그들이 아버지 르우엘에게 돌아가자, “오늘은 웬일로 일찍 돌아왔느냐?” 하고 그가 물었다. 모세의 장인이 될 르우엘은, 이트로(3,1; 4,18; 18,1 이하), 호밥(민수 10,29; 판관 4,11) 등으로 불린다. 이렇게 이름이 달리 기술되는 것은, 성경 편집자들이 다양한 여러 문헌을 굳이 조화롭게 통일시키지 않은 것은 장인이라고 하는 용어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인은 일반적으로 계약에 의한 부모라는 의미를 지닐 수 있기에.

 

르우엘의 딸들은 모세의 옷차림을 보고 그가 이집트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딸들이 어떤 이집트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구해 주고, 우리 대신 물까지 길어서 양 떼에게 먹여 주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르우엘이 딸들에게 말하였다. “그가 어디 있느냐? 어째서 그 사람을 내버려 두었느냐? 그를 불러다 음식을 대접하여라.” 이렇게 딸들의 말을 들은 르우엘은 기쁨에 찬 어조로 모세를 불러다 음식을 대접하게 한다.

 

그 뒤 모세가 그 사람의 청을 받아들여 함께 살기로 하자, 그는 자기 딸 치포라를 모세에게 주었다. 치포라는 르우엘 몇째 딸인지는 모르지만, ‘라는 뜻을 의미한다. 그 여자가 아들을 낳자, 모세는 내가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되었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였다. 게르솜은 그곳에 있는 이방인을 뜻한다. 이스라엘에서의 이방인은 아무도 파스카 제물을 함께 먹지 못한다(12,43).

 

그러면 모세는 어느 곳의 이방인으로 기억되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모세는 이집트와 미디안 모두에서 자신을 이방인으로 의식하였다는 게 옳을 듯하다. 사실 모세에게 이집트는 분명히 남의 나라 땅이었고, 미디안은 장인의 땅이기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만이 이방인의 땅이 아닌, 자신의 땅이다. 그러기에 모세는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모세의 처가가 미디안이었음을 들려준다(2-4, 18; 민수 10,29-32 참조).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던 시기에 모세와 미디안이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집트 임금이 죽었다. [계속]

 

[참조] :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미디안,르우엘,치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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