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4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7-04 조회수2,337 추천수12 반대(0)

오프라 윈프리, 스티브 잡스, 조엔 롤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연히 이 세 사람이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하는 걸 들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방송 진행자로 우뚝 선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로 우뚝 선 사람입니다. 조엔 롤링은 헤리포터라는 소설로 우뚝 선 사람입니다. 모두가 엄청난 명성과 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가 꽃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사생아였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입양아였고,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성격차이로 이혼하였고, 아이를 혼자서 키워야 했습니다. 이들은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것은 그들의 성공도 있었겠지만 그들이 실패와 고난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졸업생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축하를 하면서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을 하였습니다. 미국의 졸업식은 한국의 졸업식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졸업식이 엄숙한 반면, 미국의 졸업식은 축제와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1월에 입대한 저는 졸업식을 군 훈련소에서 지냈습니다. 졸업장은 친구가 집으로 가져다주었습니다. 축사는 아마도 주교님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 최강의 나라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습니다. 로마는 강력한 군대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로마의 문화와 로마의 제도는 로마가 지배하는 모든 지역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이스라엘도 로마의 총독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로마인에게 바오로 사도는 새로운 삶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망에 따라서 살기보다는 성령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런 새로운 기준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로마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고, 성령의 뜻에 따라 사는 신앙이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로마라는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로마가 받아들인 성령의 뜻, 교회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절망 중에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빛이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팬데믹(대유행)이 되었고, 많은 나라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경의 폐쇄와 사회의 봉쇄는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는 기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한국은 전염병 확산을 막아내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Test, Trace, Treatment'였습니다. 진단키트의 개발과 적극적인 검사, 확진자 파악 및 격리, 신속한 치료입니다. 국경을 폐쇄하지 않고도, 사회를 봉쇄하지 않고도 연대와 협력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WHO의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였습니다. 개발되는 백신은 인류를 위한 공용제로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가난한 국가와 가난한 사람에게도 백신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였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봉성체를 다녔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찾아가기도 했고,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을 찾아가기도 했고, 요양 병원에 계신 분들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성체를 모시면서 기뻐하셨고, 제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에게 주님은 위로가 되셨고, 용기를 주셨고, 희망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습니다. 청량리 성 바오로 병원으로 봉성체를 갔을 때입니다. 수술을 기다리는 자매님께서 기도를 청하셨고, 성체를 모시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고,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해 드렸습니다. 큰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자매님께서는 아무런 두려움과 걱정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다 잘 될 거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기준으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율법과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이정표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과 계명은 지키는 사람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단죄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율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부정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여인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돌아온 탕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온 탕자를 위해서 잔치를 베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하신 새로운 기준은 온유함과 겸손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