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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7.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7-13 조회수2,43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7월 13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 1,10-17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복음 마태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좋은 일만

생겼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끔찍한 실패도 경험했고,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아픔도 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수렁에서 헤맸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을 이겨냈기에

그들은 ‘성공’이라는 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성공’은 단순히 세상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정도의 가치가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가치의

결실이기에 그 어떤 것보다도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의 이런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적이에요.”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풀리는 기적을 체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계가 없는 일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믿는 만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힘든 시간이 찾아와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적을 사는 것이 됩니다.
기적을 살고 있습니까?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면,

나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기적이 내 곁에 다가올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편안과 안락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때로는 세상의 것을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하기도 합니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말해 보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리에 커다란

종기가 났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이 종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종기를 가만히

두는 것이 평화일까요? 아니면

칼로 이 종기를 제거하는 것이

평화일까요? 내 몸을 불편하게 하는

종기를 제거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칼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잘라버릴 수 있는 칼을

주십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속된 이익을 위해 살다가 영원한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하느님을 위해

죽어서 영원히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선순위에 따라 사랑하며

그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을 주님께서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늘 가슴

깊이 담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이사 1,16)”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좋은 점을 보아라.

(오드리 햅번)

비교는 하지 마세요.

‘비교는 기쁨을 훔쳐 가는 도둑이다.’

(테디 루즈벨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려 할 때,

그래서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려고 할 때

이 말을 떠올리려고 노력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남과 비교를 많이 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아이 등등….

저보다 더 나은 아이가 많았고 그러면서

남과 비교하는 횟수도 늘어만 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 안의

기쁨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실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내가 비교해야 할 것은 과거의

나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뿐입니다.

그 외의 비교는 기쁨을 훔쳐 가고,

지금을 힘들게 만들 뿐입니다.

(평화가 아닌 칼을 주시는 예수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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