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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9.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1 조회수2,00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에페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복음 마태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
어떤 분이 건의의 글을
올리셨습니다.
저의 묵상 글을 많이
보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가 클 것이라면서
글을 바로 써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댓글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더욱 신경을 써서 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사실 이 글을 보고서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괜히 트집을 잡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고,
‘내가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도 아닌데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나?’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글을 많은 분이
보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맞기 때문에,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문법에 관련된
 책들을 사서 공부하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무식하게 글을
써왔는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국어학자도 또 전문작가도
 아니어서 많은 실수를 하는
저입니다. 따라서 늘 배우는
자세로 다른 분의 말을 잘 듣고 
스스로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과 부정적인
마음으로 인해 비판하려고만
하지 정작 나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발전은 없고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마태오 축일이기에
오늘 복음에서는 그의 부르심
장면이 나옵니다. 세리였던
마태오는 한순간에 사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사도가 되기 위한 어떤 계획도
그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했을 뿐이었지요.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고 세상일에
파묻혀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겸손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를 주저 없이 선택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하느님께 파묻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겸손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들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과연 우리를 부르실까요?
 부르지 않으실까요? 마태오
복음 사가는, 세리와 죄인으로
살다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으로
올 모든 사람에게 하늘의 잔치를
그려서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사처럼, 필요할 때마다,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때마다, 영혼을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아픈 이들과
관계를 늘 맺으십니다.
그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겸손이라는 마음입니다.
 이 겸손함 없이는 주님의
선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슬픔은 한 번 더 사랑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어떤 말에 집중할 것인가?

코로나 19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그래서일까요? 방송을 보면

경제 전문가들이 나와서

미래의 시간을 예측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문득

‘이렇게 미래의 경제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큰 부자가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로 잘 예측한다면

1년 안에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고,

수년이면 전 세계의 재산을

 거머쥐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제 전문가 중에서 엄청난

부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들이 돈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예측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전문가의 예측은 기껏해야

 40% 정도라고 합니다.

동전 앞뒤를 맞추는

확률보다도 적은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전망은 참고

사항일뿐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른 이들의

말에 흔들릴까요? 전문가도

아닌 사람의 말에 흔들리고

주저앉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확률 낮은 세상의 말이 아닌,

확률 높은 주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전교구 청양다락골성지 십자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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