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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세계 젊은이의 날 십자가 전달을 위한 거룩한 미사[2020. 11. 22. 주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27 조회수1,417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3.index.html#homilies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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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201122일 주일[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 34,11-12.15

화답송 : 시편 23(22),1-2.2-3.5.6(◎ 1)

2독서 : 코린토 1 15,20-26.28

복음 : 마태오 복음 25,31-46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909&gomonth=2020-11-22&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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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젊은이의 날 십자가 전달을 위한 거룩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2020 1122일 주일

 

 

우리는 방금 그리스도의 수난 구절 바로 앞에 나오는 마태오 복음 말씀을 들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그분 사랑을 부어 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바람을 나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가장 작은 형제 자매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선한 일굶주리거나 목 마르거나 나그네 되거나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감옥에 있거나이 그분께 해드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오 복음 25,37-40). 이렇게 주님께서는 하늘 나라에서 우리와 함께 나누실 영원한 혼인 잔치를 위한 그분의 선물 목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선물들은 우리의 생명을 영원하게 만드는 자비의 일들입니다. 우리 각자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일들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가? 나는 가난한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친구들을 위해서만 착한 일을 하는가? 나는 나에게 아무것도 되갚을 수 없는 누군가를 돕고 있는가? 나는 가난한 사람의 친구인가?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을 수 있는 많은 다른 비슷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내가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네가 가장 작게 생각하는 곳 그리고 어쩌면 보고 싶어하지도 않을 곳. 거기에, 가난한 사람들 안에”. 내가 거기에 있다, 나한테 좋으면 인생은 좋은 것이라는 지배적인 사고 방식들이 내가 있으리라고 가장 작게 기대하고 있는 곳에. 내가 거기에 있다. 여러분이 삶에서 여러분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또한 청년 여러분들에게도 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거기에 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수백 년 전에 한 젊은 군인에게 하셨습니다. 그는 18살이었고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걸하지만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가난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나쳐 갔기 때문입니다.” 저 젊은 청년은 다른 사람들이 가엾어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 가난한 사람이 거기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제복 밖에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외투를 둘로 잘라서 절반을 그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고 구경꾼들 중 몇몇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했습니다. 다음 날 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그가 가난한 사람을 감싸주었던 외투 절반을 입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그리고 그는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르티노야, 너는 이 외투로 나를 감싸주었다’”(cf. SULPICIUS SEVERUS, Vita Martini, III). 성 마르티노가 그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몰랐지만 오늘의 복음 말씀 안에 나오는 의인들과 같이 행하였기 때문에 그는 그 꿈을 꾸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위대한 꿈을 포기하지 맙시다. 오로지 꼭 필요한 것에만 만족하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지평을 좁히지 말고 인생의 길 위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대범하게 그리고 기뻐하면서 고귀한 목표들을 향해 질주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휴가나 주말을 꿈꾸려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꿈을 이 세상에서 실현시키려고 창조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꿈꿀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삶의 아름다움을 껴안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자비의 일들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위대한 꿈의 핵심으로 곧장 갑니다. 만약 당신이 지나가는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 진정한 영광을 꿈꾸고 있다면 이것은 따라야 하는 길입니다. 오늘의 복음 구절을 다시 읽으십시오 그리고 묵상합시다. 자비의 일이 다른 어떤 것보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자비의 일이 다른 어떤 것보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결국 우리는 자비의 일로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위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시작할까요? 위대한 선택으로. 오늘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이것을 또한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마지막 심판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한 선택에 대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거의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단지 양과 염소를 가르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선해지거나 악해지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로지 우리 선택들에서 결과들만 이끌어내시고 그것들에 빛을 비추시고 그것들을 존중하십니다. 삶은-우리가 보게 되는데-굳건하고 과감하고 영원한 선택을 위한 시간입니다. 하찮은 선택들은 하찮은 인생으로 이어집니다. 위대한 선택들은 위대함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진실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됩니다. 더 선한 것을 위해 또는 더 악한 것을 위해. 만약 우리가 훔치는 것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도둑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자기 중심적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미워하기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화가 납니다. 만약 우리가 핸드폰에 시간을 쓰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중독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한다면 매일 우리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자라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선택의 아름다움은 사랑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택의 아름다움이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고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마비된 채로 머무른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준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생명의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비밀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오로지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오로지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우리는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와 영원히    

 

사실 우리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두려움, 불안정, 너무나 많은 답이 없는 질문들하지만 사랑은 우리가 이것들을 넘어서 나아가기를 요구하고 그리고 왜 삶이 그러한 방식인지 궁금해하지 말고 답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 대답은 이렇게 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는 성부 하느님 아버지의 눈빛입니다.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가 를 넘어서 가도록 그 대신 누구를 위해서라고 묻도록, “왜 내가 살아 있지?”에서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가?”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떠밉니다. “이 일이 왜 나한테 일어나고 있을까?”에서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 “누구를 위해?” 단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은 이미 우리가 스스로 한 선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엇을 공부할지, 어떤 친구를 둘지, 어떤 집을 살지, 어떤 이득이나 취미를 추구할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전혀 사랑하기를 시작하지 않으면서 몇 해를 허비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로 만초니(Alessandro Manzoni)는 좋은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잘 있기 보다는 오히려 잘 행하는 것을 더 목표로 해야 한다.” (약혼자들, 38).

 

의심과 물음들 뿐만 아니라 매일 다른 많은 장애물들도 위대하고 자비로운 선택들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과열된 소비주의는 우리의 마음을 필요 없는 것들로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쾌락에 사로잡히는 것이 문제에서 도망치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그것들을 미룰 뿐입니다. 우리의 권리들에 대한 집착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들을 소홀히 하도록 우리를 이끌 수 있습니다. 그때 사랑에 대한 큰 오해가 있습니다. 사랑은 강렬한 감정 이상의 것인데 본래 선물이고 선택이며 희생입니다. 잘 선택하는 기술은, 특히 오늘날, 인정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정체성을 꺾는 소비주의 정신에 빠지지 않는 것 그리고 외모에 대한 숭배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선택하는 것은 하늘 나라라는 목적을 향해 하느님의 꿈을 향해 우리의 삶을 이끌기 위해서 버리는 문화”, “지금 모든 것을 가지려는 욕망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선택하는 것은 사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살려고 태어났습니다. 그저 대강 지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같은 젊은이 복자 Pier Giorgio Frassati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대강 지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서 많은 선택들에 직면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을 잘 선택하도록 훈련해 줄 마지막 한가지 충고를 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면 우리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물음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가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 이 질문은 자주 잘못 이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고 우리의 바람들과 충동들을 탐닉하는 것이라고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는 질문들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가 아니라 바로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유익한가?”. 그것이 우리가 매일 해야 하는 선택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 아니면 무엇이 나에게 가장 유익한가? 이 내적인 식별이 결국 하찮은 선택들이 되거나 아니면 결국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결정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분께 우리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을 선택할 용기, 사랑이라는 방법으로 그분을 따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그분께 간청합시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기쁨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그리고 그저 대강 지내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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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미사를 마치면서 교황 성하의 말씀.

 

이 감사의 봉헌 끝에 나는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와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마음을 담아 인사합니다. 십자가와 세계 청년의 날의 상징인 로마 백성들의 구원(Our Lady Salus Populi Romani) 성모님 이콘의 전달 예식에 잠시 참석할 두 파견단의 대표인 파나마와 포르투갈 청년들에게 특별한 인사를 전합니다. 이것은 2023년 리스본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순례에서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대한 다음 대륙간 세계청년의 날을 준비하면서 나는 또한 지역 교회 안에서 그 기념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세계청년의 날 제정 이후 35,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평신도 법원, 가정과 생명-청년 사목을 책임지고 있는-에 문의한 후에 나는 내년으로부터 시작해서 세계 청년의 날의 교구 기념을 성지 주일에서 그리스도왕 주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념의 중심은 세계청년의 날의 제정자이자 지지자인 성 바오로 2세 성인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것처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여러분의 삶으로 소리 지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입니다.(루카 복음 19,40 참조)

 

 (번역 2020. 11. 27. 금요일. 13:03 / 최종 수정 2020. 11. 27. 금요일. 14:41)

 

강론영어원문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1122_omelia-passaggiocroce-gmg.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0/11/15/giornata-poveri.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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