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1.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5 조회수1,648 추천수6 반대(0) 신고

(대구대교구 순교 사적지, 진목정 성지)

2021115

연중 제1주간 금요일

복음 마르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무대에서 어떤 남자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몇 사람은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인상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요즘 시대가 아닌 15~16세기 때의

모습입니다. 그 당시에는 기타를 남자가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만

연주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남자가 기타 치는 모습을 보고서

멋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고, 좋아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기준 역시 계속해서 바뀝니다.

특히 요즘에는 그 변화가 더 빨라집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변화를

부정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계속 공부를 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에 맞추기 싫다면서

그것은 틀렸다면서 부정하려고만 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과 함께 하나를

이루면서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어떤 것도 틀렸다면서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보고

바라볼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 곁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서 들것을 달아

내려보냅니다.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 하느님 자신의

구원 행위입니다. 이 사실을 당시의

율법학자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문제는 그들 스스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단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들이 하느님인 것처럼,

하느님의 영역인 죄의 용서를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보면서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정체성은 그의 말이 현실화되면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 용서받았다는

말과 함께 중풍병자의 병이 말끔히 씻어져

걸어가는 모습에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깨닫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단죄하려고 합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 판단과 단죄는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신은 어딘가 하늘 아래

그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마련해 놓았다.

(호러스 부쉬엘).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무언가에 관한 소중함의 최대치를

100이라고 친다면, 이를 가지기 전에는

소중함 정도가 80이고, 가진 다음에는

소중함 정도가 20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최신형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는

이것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소중함 정도가 80정도 됩니다.

그러나 이를 구매하고 난 뒤에는 어떻습니까?

소중함 정도는 20으로 떨어지게 되지요.

그렇다면 그 소중함의 최대치인 100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눈치 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면 소중함의

최대치인 100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 잃어버린 후에 그 소중함을

깨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통해서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고 있는 중도 아닌,

사랑을 소유했을 때도 아닌,

사랑을 잃었을 때 그 가치는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있을 때 잘 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소중함을

간직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고 있고

또 사랑받고 있음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진짜 행복과

진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대구대교구 순교 사적지, 진목정 성지 순교자 무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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