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2 조회수1,621 추천수12 반대(0)

20년 전의 일입니다. 수녀님들과 대림특강의 강사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서울교구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었습니다. 거리가 멀었고, 신자의 수가 적었습니다. 누구를 강사로 모실지 고민하고 있을 때입니다. 수녀님이 제안을 하나 하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모실까요?’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바쁘신 추기경님께서 작은 성당에 오실 수 있을까? 오신다고 하면 어떻게 대접을 할까? 혹시 모르니 편지를 보내자고 결론을 냈습니다. 수녀님이 정성어린 편지를 추기경님께 보냈습니다. 6월에 보냈는데 9월이 되어도 아무런 답장이 없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못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강사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월에 연락이 왔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로마에 다녀오셨는데 편지를 보셨고, 대림특강을 해 주시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많이 모일지, 준비는 차질 없이 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동네 입구에 추기경님의 방문을 알리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장단의 콩으로 두부를 만들었습니다. 임진강의 꽃게로 탕을 만들었습니다. 면장님도 오고, 군인들도 올 수 있도록 부대에 연락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대림특강도 해 주시고, 미사까지 봉헌해 주셨습니다. 미사 후에 사진도 찍어 주시고, 식사도 함께 하셨습니다. 바쁘신 추기경님께서 온전히 하루를 내어 주셨습니다. 서울교구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었기에 특별히 시간을 내 주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해마다 성탄절이면 작은 곳에서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비록 작고 허름한 곳이지만 추기경님께서 방문하시고 미사를 봉헌하시면서 결코 작고 허름한 곳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인가 피정 중에 추기경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 어디일까요? 그것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입니다. 가슴에서 다리로 가는 여행입니다.” 아는 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구약의 제사는 다시 번제물이 필요하지만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더 이상 번제물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방문이 저와 성당에는 큰 기쁨이요, 영광이었던 것처럼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길만 따라가면 우리는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고난이 찾아오면 다른 곳을 찾으려합니다.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 쉽게 넘어지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족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땅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의 눈에는 하늘을 나는 나비가 위험에 보일 겁니다. 날개의 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욕망에 눈이 먼 사람의 눈에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미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미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오리를 가자는데 십리를 가주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 뺨을 내 주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시기 때문입니다.’ 출세와 성공 그리고 부와 명예를 쫓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도 예수님께서 미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류의 영적인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땅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의 수준에서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나비의 수준으로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보여 주셨고,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맛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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