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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요한 사도 복음사가)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3-12-27 조회수2,005 추천수20 반대(0) 신고

◎ 2003년 12월 27일 (토)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오늘의 복음]  요한 20,2-8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3)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4)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6)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예수성탄 팔일축제의 셋째 날에 교회는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을 지낸다. 사도 요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통상 그가 스스로 집필하였다고 알려진 요한복음 자체에서보다 공관복음에 더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도 요한은 우선 갈릴래아 출신의 어부였다.(마르 1,19) 그는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야고보의 형제요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12사도의 명단에 들어 있다.(마태 10,2) 복음사가 마르코는 사도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에게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 라는 별명을 붙였다.(마르 3,17) 이로써 두 사도는 매우 활동적이고 격한 성품을 가진 인물로 추정되며, 예수의 일행을 거부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불살라 버릴 생각도 하였다.(루가 9,54) 요한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예수로부터 총애를 받아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체험하기도 했다.(마태 17,1; 마르 9,2; 루가 9,28) 둘은 명예욕도 강하여 예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오른편과 왼편의 자리까지 부탁하였다.(마르 10,35-40)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에서도 요한과 야고보는 베드로와 함께 기둥처럼 존경받던 사도들이었다.(갈라 2,9)

 

  이처럼 공관복음서는 사도 요한에 대하여 그의 이름을 거명(擧名)하여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가 사도 요한의 이름을 단 한번도 거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면 사도 마태오는 자기 복음서에 자신의 이름을 3번 기술하고 있으며(마태 9,9.10; 10,3), 사도가 아니었던 루가의 이름은 바울로의 서간에만 3번(골로 4,14; 2디모 4,11; 필레 1,24), 마르코의 이름은 사도행전에 5번, 서간에 4번 등장한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을 거명하여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복음서 전체에 사도 요한을 가리키는 부분은 많다. 요한복음은 딱 한 번 "제베대오의 아들들"(21,2 - 21장은 추가편집 부분)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 외 다른 대목에서는 막연히 "제자"로 표현되나 문맥상 사도 요한을 지칭하는 것임이 틀림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제자"로 언급된 대목을 정리하여 보자.

 

  "다음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다시 그 곳에 서 있다가 마침 예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하고 말하였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1,35-37) "그 때 제자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곁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눈짓을 하며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께 바싹 다가앉으며 ’주님, 그게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셨다."(13,23-26a)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잘 아는 사이여서 예수를 따라 대사제의 집 안뜰까지 들어갔으나 베드로는 대문밖에 서 있었다. 대사제를 잘 아는 그 제자는 다시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18,15-16)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19,26-27) 다음 대목은 오늘 복음이다.(20,2-8) "베드로가 돌아다보았더니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 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묻던 제자였다.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주님,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21,20-21)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제자는 죽지 않으리라는 소문이 퍼졌다."(21,23) "그 제자는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글로 기록한 사람이다."(21,24)

 

  위의 요한복음이 기술하는 대목들을 미루어 볼 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애제자)였고, 공관복음이 거론하는 바로 그 사도 요한과 동일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사도들 중에서 예수님의 빈무덤을 가장 먼저 목격하고 믿었던 자들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이다. 요한이 빈무덤에 먼저 도달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베드로를 기다린 것은 초대교회 안에서의 베드로의 수위적(首位的) 위치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초대교부들이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을 초대교회의 직무와 열정, 권위와 사랑, 수제자(首弟子)와 애제자(愛弟子), 직무교회와 사랑교회 등으로 각각 표현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로 남는 부분은 사도 요한이 정말로 요한복음, 요한서간들, 요한묵시록의 저자(著者)인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성서학자들은 성서원문비판과 성서주변연구들을 근거로 이들 기록들이 요한의 저작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요한은 늦어도 60년경에 순교하였고, 통상 요한의 작품이라고 인정되었던 이 기록들이 거의 빨라도 90년 이후에 집필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의 놀라운 신학적 내용과 묵시록에 담겨 있는 구약성서에 관한 해박한 지식들을 갈릴래아 어부출신의 요한이 혼자 소화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것이다. 요한서간들이 다루고 있는 영지주의적·그리스도론적·윤리적·종말론적 이단사상은 역사적으로 볼 때 1세기에 등장한 사조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이 요한 사도의 친저성을 완전히 깨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이견(異見)이 있더라도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미덕(美德)이라고 여겨진다면, 사도 요한이 그 저자라고 인정할 수도 있다. 아니면 사도 요한의 직접적인 증언을 토대로 요한의 제자들이 집필하여 스승의 이름을 붙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적어도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로서 다른 누구보다 스승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받았던 사랑만큼 스승을 사랑했다고 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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