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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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탄절의 저녁 예불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26 조회수1,282 추천수7 반대(0) 신고

오전에 미사 하고 등산을 갔습니다

집 근처 만의사에 차를 두고 舞鳳산을 넘어서

용인군 이동면 상덕 저수지까지 내려가

그 곳 정갈한 낚시터에서 맛있는 점심겸 저녁밥을 먹고 쉬다가

다시 산을 넘어 만의사로 내려오는 울 남편이 개발한 코스입니다

 

오랫만에 남편과의 산행입니다

곳곳 처처에 대한 설명이며,

이 능선으로 내려가면 아무개가 별장을 짓고 있는 중이고
저 능선으로 내려가면 청려 연수원이 있고
저 봉우리를 돌아가면 남사면이 나오고
저쪽으로 잘못 갔다가 7시간을 헤맸느니...


 

이곳으로 이사온지 딱 일년 되는 동안 
남편은 아예 무봉산지기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학기 중에는 도무지 시간이 안나서 같이 못 다니고
방학 중에라도 같이 산에 다니려고 합니다


 

남편은 골수깊은 신자도 아니고,  영세받은지도 오래되지 않아서
성당의 일에는 거의 무심하다시피 합니다
그래도 성서봉사하러 멀리 다닐 때.. 5년 이상을 태워다 주었고
이젠 신학교까지 보내주니 고맙기만 합니다

이곳에 이사와서는 둘이 덩그러니 살고 있는데
남편 얼굴보다 컴터 화면을 더 오래 보고 있는 적이 많습니다
같은 거실에서 마누라는 모니터에, 남편은 TV에 각자 시선이 팔려 있는 것이
자주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도 한번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남편이 들어오면 책이나 컴터나, 혼자서 하는 일은 안하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합니다
그래도 과제물이다, 강의록이다, 카페 운영이다
어쩔 수 없는 날도 물론 많았지요.

그래서 방학엔 아예 남편이 집에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컴터를 안켜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컴터를 켜놓은 상태로 두면 나도 모르게 자꾸 보고싶어지기 때문이죠
이런 것이 인터넷 중독이죠? ㅎㅎ

어느 날, 아침...
인터넷 채팅 중독으로 바람난 여자들 이야기가 TV 아침 프로에서 나왔습니다
괜시리 ''나는 그런 중독은 아니라''는 변호를 해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난 아니라구" 하는 것도 웃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마침 그 날.
어떤 첨 보는 형제님이 카페에 새로 올려놓은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카페에 들어온 지 2년여의 세월동안 당신의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인생의 대한 실의로 알콜과 자포자기로 소일하던 세월,

마지막 소원이라며 아내가 피정을 권유했고

그 피정을 다녀온 후, 인생의 뜻을 찾기위해 성서를 읽기 시작했고

성서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던 중 제 카페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묵상글, 자료실을 샅샅이 돌며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성서의 깊이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후,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직장 동료들의 놀라움 속에서 이젠 그들의 상담역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과 무엇보다 아빠를 보면 슬슬 피하던 아이들의 변화를 술술 풀어내 주셨습니다.

 

아들 한명이 군대 가기 전에 8박 9일 피정을 가겠노라고 지원했는데

그 아들에게 진심어린 아빠의 염려와 사랑을 담은 편지까지 올려놓으셨습니다

장문의 회고록이었지만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뜨거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이버 세상에서도 활동하시는 성령 하느님의 현존에 새삼 감격하였습니다

 

전 암말 않구 그 글을 인쇄해서 남편에게 디밀었습니다

남편은 다 읽고 나서 암말 않구 옆에 내려놓구 출근했습니다
('누가 뭐랬어?' 하는 듯한 울 남편의 표정  ^^)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에서 이런 유익한 일을 한다해도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외롭지 않게 말동무도 하고 놀아줄(?) 것입니다
아무리 깊은 묵상 거리가 머리에서 맴맴 돌고 있어도...
아무리 신묘한 영성이 가슴에서 솟아나는 그 순간이라도... ^^
늙어가면서 서로 외롭지 않고, 그립지 않게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역쉬 늘 곁에 있는 사람이어야합니다

 

그 형제님도 예수님의 말씀 속에 묻히면 묻힐 수록

가정의 소중함과 가정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었듯이

저도 마찬가지로 가정이 튼튼해야 그에 뿌리를 둔 나의 삶도 허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 일은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학기 동안엔 학교에서, 성당에서, 군중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모셨던 그 눈길을
방학 중엔 내 안에서, 내 집, 내 부모에게서, 내 가까운 친척과 친지들에게서
찾고 모시렵니다.

下學而 上達...
유교에서 배운 진리입니다
건달산 자락에 있는 신학교를 다닐 동안은 상달에 관심을 두고
무봉산 자락에 있는 집에서 쉴 동안은 하학에 촛점을 맞출랍니다

방학은 역시 안으로 침잠하고 충전하며 내 안의 하느님, 나와 가깝게 계시는 하느님을 찾아뵙는 시기겠지요?
개학하면 또 다시 밖으로 전해져오는 하느님을 맞으러 나가렵니다

그리고 외부로 그분을 전달하려 나가렵니다

하느님의 내재성과 초월성!
그렇게 내 안에서, 그리고 나의 밖에서 조화롭게 체득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생각들로 몇시간 동안 산을 누볐고
한번은 진하게 울 가족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고
한번은 진하게 기도해줘야할 사람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마지막 묵주기도 한바퀴는 온 세상의 화해와 상생를 위해 바쳤습니다
이 거창한 기도의 화두는 아주 기묘한 인연(?)으로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겨울이라 일찍 산에 어둠이 찾아왔고,
만의사까지 내려왔을 때는 어스름 저녁 놀도 거의 끝날 무렵
청회색에서 회색, 이윽고 검은 색으로 세상이 변할 즈음이었습니다.

대웅전(단청없는 목조건물로 참 작고 소박합니다)의 불빛만
창호지 밖으로 환하게 뜰을 비추고 있고.

병풍처럼 둘러선 舞鳳山의 능선엔 보름달이 휘영청 걸쳐있더니만

범종과 목탁, 독경 소리에 점점 두둥실 두둥실 떠올라 어두운 산사를

시시각각 밝혀주는 풍경이 이상한 매력으로 발걸음을 잡아끌어

그곳에서 한참 머물었습니다

교교한 뜨락에는 사람하나 없고
방금 전인듯 정갈하게 마당을 쓸어내고
소임을 다한 빗자루는 행랑방 옆에 다소곳이 비켜서 있었습니다
그 겸손한 빗자루가 기대 서 있는 행랑 문설주에는
어설픈 붓글씨로 적힌 법문이 보란듯이 달빛에 드러났습니다

"온 우주가 한 가정"
"온 중생이 한 가족"
"원수는 갚지 말고"
"은혜는 갚아라"

진리는 역시나 단순 소박합니다

스님은 대웅전에서 불경을 읽고
저는 뜨락에서 탑을 돌며 묵주를 돌렸습니다
그분은 부처님의 불법이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했을 것이고
저는 보름달 훤한 달빛 아래서,
태양보다 더 밝으신 분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분의 예고를 노래하는 즈가리야의 찬미가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온 중생이 한가족인가요?
온 우주가 한 가정인가요?
의견과 종교와 사상이 달라도 새해에는 제발
서로 서로 원수지지말고, 서로의 은혜를 갚으라고 탑돌이를 했습니다

삼라만상, 만인을 저 병풍처럼 둘러선 산자락처럼
모두 품어 안으시는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사랑과 넓으신 품을 전하며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바로 당신의 오심이 그러한 뜻이었기에....

성탄절 저녁에 산사의 탑을 돌며...
메리크리스마스!

 

(성가정 축일에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하며...어제 써 놓은 글의 주제와 맞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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