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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2) 주교님들께서는 주춧돌을 세워 주세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15 조회수1,078 추천수16 반대(0) 신고

2005년1월15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ㅡ히브리서4,12-16; 마르코2,13-17ㅡ

 

                주교님들께서는 주춧돌을 세워 주세요.

                                                                      이순의

 

 

한국 가톨릭 교회에는 대신학교가 7개 이고, 남자 수도회가 40여개이며, 여자 수도회가 90여개가 있다. 그 중에는 각계각층에서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또 몇 곱절로 주님의 소임을 맡고 계신다. 옆 사람이 예쁜지 미운지도 모르게, 하루가 어떻게 가시는지오시는지도 모르게 바쁜 일과에 충실하고 계신다. 그런 원동력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교회는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살아있는 교회라고 자부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부산 가톨릭 대학의 박상대 신부님께서 굿뉴스의 우리들의 묵상방에서 열심히 소임을 해 주셨다. 자의건 타의건 박상대 신부님의 묵상글은 신학자들의 위치에서는 어찌 평가 하실지 모르나, 나의 소견으로는 유익한 힘이 되었다. 매일미사에 봉독되는 복음적 해석과 학술적 이해는 일상을 사는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물론 다른 분들의 묵상도 그러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이 글을 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지난 년 말을 기점으로 박상대 신부님께서는 이별을 고하시고, 새로운 소임에 충실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수고가 넘치셨으며, 신부님께 계속된 건필을 부탁한다는 것은 너무 송구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의 수고에 감사하며 건강과 행복을 기도해 드릴 수 밖에 없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여기는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터넷 매체이다. 그 중에서도 심오한 이름표를 달고있는 우리들의 묵상이다. 모두들 각자의 방법대로, 각자의 모양대로, 각자의 솜씨대로 묵상을 써서 봉헌한다. 그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며 보시기에 좋으실 것이다. 쓰는 사람은 쓰는 사람의 모습대로,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의 모습대로, 모두가 각자의 하느님을 안고 그 안에 존재하시는 아버지를 만나는 신비를 누릴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기둥은 그대로 있는데 기둥을 세울 뿌리가 빠져버렸다는 허전한 마음이 든다. 매일독서를 대하며, 아쉬움이 설때는 신부님의 글을 열어 보았었다. 신부님의 묵상은 매일 충실히 올려주시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학적 측면을 쨟고 쉽게 다루어 주시는 묵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여론은 모르나 묵상방의 많은 벗님들께서도 그점에 대하여는 느낌이 일맥상통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새해 1월1일부터 성서의 매일 복음을 해석, 지도 해 주시는 묵상이 빠져버렸다. 신부님 한 분께서 빠지신 것이 아니었다. 사제로부터 전해오는 복음적 메세지가 상실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다른 분들의 묵상도 충실하고 알차다는 것을 인정하며, 뜸뜸히 올려주시는 신부님들의 묵상이 결코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매일의 성서를 학자적 관점에서 다루어 주셨던 박신부님의 빈 자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나는 박신부님께 돌아 오십시오. 라고 말하지는 못 한다. 그러나 묵상이라는 주제를 놓고 목마름에 대하여 요청할 수는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요청하는 글을 쓴다. 교회에는 수 없이 많은 평신도도 많지만 의견을 놓고 고민을 수렴하시는 주교님들도 계시며, 그 고민에 응답하시는 사제와 수도자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나의 요청이 꼭 성사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평신도로서 묵상을 쓰며 아쉬움을 건의 드리는 바이다.

 

주교님들께

먼저 주교님들의 건강과 한국교회의 은총을 기원드립니다.

저는 굿뉴스의 한 구석방에서 개인묵상을 쓰는 부족한 평신도 입니다.

묵상을 쓰며 행복하고, 묵상을 읽으며 행복한, 그저그런 가족입니다.

얼마 전까지 부산교구의 박상대 신부님께서 우리들의 묵상방에 매일의 글을 올려 주신바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소임을 맡으시면서 묵상방을 작별하셨습니다.

저는 박신부님을 돌아오시도록 청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굿뉴스가 계속 된다면 묵상방의 중심이 되시는 매일복음을 사제의 위치에서 학자적 기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박상대 신부님께서 써오신 본을 기준으로 하여 그 고리를 이어주시기를 청합니다.

각 대신학교에는 수 백명의 학자 신부님들이 계시며, 수도회별로 연구 학습하시는 수사님과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상당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과중한 연구 활동과 소임으로 묵상방에 오시는 것이 부담이 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청을 자발적 의지가 아닌 요청에 의해서 응답해 주실 성직자나 수도자가 계실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 굿뉴스가 한국의 가톨릭 인터넷 교회의 중심이라면, 주춧돌이 될만한 묵상의 중심은 세워 주셔야 기둥들이 바로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떠나신 박상대 신부님께서 시간을 초월하여 지켜주신 그 빈 자리가 아쉽습니다.

그러므로 주교님들께서는 이 작은 사람의 의견을 협의해 주시기를 간청하옵니다.

7개의 대신학교와 40여개의 남자 수도회와 90여개의 여자 수도회에서 굿뉴스의 우리들의 묵상방에 주춧돌이 되어주실 수사님이나 수녀님, 신부님들을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지원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굿뉴스의 지속성을 감안하여, 순번제를 협의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몇 년을 써 오신 박상대 신부님의 독자적 행보는 무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터넷 매체의 연속성과 위력을 감지 하시고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젠가 너무 몰라서 우수웠던 일화가 있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는 성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바늘을 들고 무엇을 꿰맬때 마다 낙타가 그 구멍 속을 들어 갈 일을 생각하며 천국은 포기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낙타를 물에 녹여서 바느질 하는 바늘귀에 집어 넣더라도 천국에 도착해 보지도 못 하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런데?!

성서 공부를 하는데 바느질 하는 바늘 귀가 아니고 이스라엘에는 낙타들이 드나드는 성문이 있고, 낙타들이 다니지 않을 때는 성문을 잠궈두고, 사람만 다니도록 큰 성문 옆에 바늘 귀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낙타를 녹여서 천국에 보낼 연구를 하던 저는 당장 낙타를 토막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몇 토막을 치지 않았는데 낙타는 그냥 천국으로 직방이었습니다.

얼마나 신이 나든지요.

그 천국문이 얼마나 커 보이든지요.

토막친 낙타를 그렇게 넓은 바늘귀 문으로 막 던져 넣었습니다.

몽땅 다 천국에 보내 주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

<수녀님께서 낙타를 보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야한다고 하시며 저의 기쁨을 박살을 내셨지만........ 히~~! >

그날 생각했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죄에 대하여 평신도 보다 너그러웠던 이유를.......

 

존경하는 주교님들!

박상대 신부님의 묵상글은 우리들의 묵상방에 바느질 하는 바늘귀가 아니라 바늘귀문을 가르쳐 주시는 등대였습니다.

박신부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제 요청의 본론은 끝이 났습니다.

한없이 나약한 저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은 제 마음이 이런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으니 썼을 뿐입니다.

또 이루심과 거두심은 주님이시라고 믿습니다.

외람되고 버릇이 없으나 제 생김이 이러하니 너그러히 보아 주십시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톨릭 교회를 사랑하며, 또한 주교님들을 사랑합니다.

알렐루야!

아멘!

 

   2005년1월15일 인터넷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그중에 기둥 하나 이순의 제노베파 올림

 

ㅡ"나를 따라 오너라!" 마르코2, 1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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