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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해욱 신부의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후속] 20.내 맡김의 영성은 관상과 활동의 온전한 일치
작성자정민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20 조회수1,380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후속> 20.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관상과 활동의 온전한 일치 (2010, 4, 18)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38-42)


 "관상이냐 활동이냐, 관상과 활동이냐?"
활동 없는 관상, 관상 없는 활동은 모두 절름발이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상"이라는 말의 어원을 굳이 끌어오지 않아도 우리는,
관상이란 "하느님을 바라봄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잘 알아듣고 있습니다.


흔히 루카 복음 말씀 중에서 예수님 발치의 마리아를 "관상생활"로,
마르타의 예수님을 위한 시중을 "활동생활"로 표현들 하고 있습니다.


관상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일"이
어디 영화 "위대한 침묵"에 비춰졌던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들처럼
어느 특수계층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일이겠습니까?


관상을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관계되는 말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좋은 몫인,
"하느님과의 일치"는 하느님을 신앙하는 모든 사람들이 결코
빼앗겨서는 안 될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관상 없는 활동을, 활동 없는 관상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관상 있는 활동을, 활동 있는 관상을 원하십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관상과 활동을 동시에 온전히 충족시키는
매우 탁월한 영성입니다.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그분과 일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겠다는
"굳은 결심의 봉헌"으로 하느님과 일치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럼으로써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맡김으로 삶이 곧 활동이 되는 삶,
삶 속에 하느님이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관상이요 활동인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누구에게나 열려진 참으로 현대적인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생활 속에서 "수도자 아닌 수도자의 삶"을
살 수 있는 영성입니다.
수도자적인 평신도의 삶, 세상 속의 수도생활이 바로
"내맡김의 삶"인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이들은
어떤 제복을 입고 사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뜻"을 제복으로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http://cafe.daum.net/likeamaria/


(소리로 듣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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