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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최후의 심판을 묵상하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4 조회수1,232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대학진학을 위한 수능 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 한 번의 시험으로 12년 동안의 결과를 검정 받는 날입니다. 대학 하나만으로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현 우리나라 실정으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시험을 치르는 고3 학생들은 하루를 매우 긴장하며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해온 모든 실력을 다 쏟아내는 기염을 토해내야 될 겁니다. 나름 열심히 구슬 같은 땀을 흘린 학생은 긴장은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열심히 공부해온 결과물에 대해 검증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담담히 시험에 임하는 친구도 있을 겁니다.

 

그동안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지 않은 친구는 요행을 바란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내심 요행을 바라며 시험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겁니다. 이제 시험이 끝나가는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간입니다. 시험이라는 건 하나의 어떤 곳에 가기 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만약 우리도 하늘나라에 입성하는데 즉 천국에 입학하는 데 이처럼 마치 조선시대 과거를 치르는 것 같은 시험은 아마 없을 겁니다. 오늘 학생들이 시험을 치는 수능시험처럼 그렇다면 우리도 만약 천국에 가는 데 자격을 검정하는 시험이 있다면 과연 그게 무엇일지 한번 상상해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나름 묵상 주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일천한 지식으로는 우리가 죽게 되면 심판이 있게 되는데 사심판과 공심판으로 나누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심판은 죽게 되었을 때 일종의 개인적으로 받게 되는 심판이고, 공심판은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천하만민을 심판하게 되는 그때의 심판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사심판, 공심판 이것을 일종의 천국문을 통과하는 관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때 세상에서와 같은 이런 시험으로 관문을 통과하는지 여부를 판가름할 잣대를 나름 뭐가 있을지 짐작을 한번 해보게 되면 뭐가 있을까요? 어디까지나 상상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성경상으로 보면 마태복음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내용만 가지고 봤을 때는 결국 이 세상을 살면서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과 불쌍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지로 결정되는 걸로 성경은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예전에 우리가 말하는 성경에 최후의 심판을 이렇게 서술한 것은 말 그대로 이게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기준을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때 세상 법정에서 법관이 죄인을 심판할 때 정상참작을 하는 것처럼 참작기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게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면 이상한 결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가령 성경에서 말하는 이런 게 그냥 세상에서도 종교를 갖지 않고 무신론자로 살면서도 사회에 자기 재산을 기부하며 베품의 삶을 산 사람도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와는 별개로 만약 그게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면 사람들이 구태여 성당에 다니며 나름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구속적인 틀에 매이지 않고 그냥 자유분망하게 생활하면서 나름 세상에 좋은 일을 하면서 살고 베풀게 된다면 이게 천국에 가는 기준인양 생각하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신앙생활의 틀을 벗어나 생활해도 천국에 갈 수 있을 수 있다는 이런 결론으로도 도출될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느 누가 성당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마태오복음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은 하느님께서 심판하시는 기준의 가장 전형이라고 할 수 있고 세상법으로 말하면 일종의 헌법과 같은 법 같습니다. 세상에도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근본조직과 틀을 개념적으로 제시한 법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고 기본이기 때문에 가장 상위법인 헌법의 근본 정신에 위배되지 않아야 되는 것처럼 우리가 나중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최후의 심판의 규정은 하느님께서 심판의 잣대가 되는 가장 중요한 근본 기준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의 법에도 헌법 밑에는 하위 법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런 하위법을 어기지 않아야 세상에서도 잘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위법과 같은 게 바로 성경엔 비일비재합니다. 그 모든 개념을 하나로 통칭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희생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고통은 겪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수능을 치는 학생들처럼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잠도 설쳐가며 졸음이 오는 것도 참아가며 고통을 이겨내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려는 극기의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게 그냥 단순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개념처럼 단순한 게 아닙니다.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되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결국은 이런 고통을 하느님을 사랑해서 얼마나 그걸 잘 참아 받아냈는지 이게 어쩌면 나중에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하나의 시험성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만 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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