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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나병 환자 치유 (마르1,40-4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4 조회수1,45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14일 목요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나병 환자 치유 (마르1,40-45)

 

1독서<"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히브3,7-14)

형제 여러분, 7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반항하던 때처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화답송 시편 95(94),6-7ㄱㄴㄷ.7-9.10-11(◎ 7과 8)

◎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 사십 년 그 세대에 나는 진저리가 나서 말하였다.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다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화가 치밀어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지 못하리라.”

 

복음<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마르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히브3,7~14)

 

 형제 여러분,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 (7~8)

 

히브리서 3장 1~6절에서는 진리 자체이시고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권면과 더불어 예수님의 존재론적 우월성과 그 사명의 우월성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와 견주어 설명한 바 있다.

 

이제 이어지는 히브리서 3장 7~19절은 히브리서 3장의 두번째 단락으로서, 모세 당시 이스라엘의 사례를 통한 불신앙의 결과에 대한 경고 및 복음의 진리를 견지할 것에 대한 권고이다.

이 가운데 히브리서 3장 7~11절에서는 우선 모세가 활동하던 시기, 즉 출애굽 이후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말씀은 시편 95장 8~11절인 이 인용구를 제시하기에 앞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라고 표현한 것은, 인용된 시편 말씀이 성령의 영감(Inspiration)으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도구로 사용받은 인간 대신에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령을 직접 성경의 저자로 언급함으로써, 구약 성경이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라고 번역된 '카토스 레게이 토 프뉴마 토 하기온'(kathos legei to pneuma to hagion; as the Holy Spirit says)에서,  성령에 대한 표기로서 본절에서처럼 일반적으로 '거룩하다'라는 뜻의 형용사 '하기온'(hagion)이 사용되지만, '영'이란 뜻의 '프뉴마'(pneuma) 한 단어만으로도 성령을 지칭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구약 시대에도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게 역사(役事)하셔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 기록하게 하셨다.

또한 본절에서 '말씀하시는'으로 번역된 '레게이'(legei) 원형 '레고'(lego) 일반적으로 '말하다', '이야기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에서 기록된 말씀들과 성령의 관계를 알 수 있는데, 성령께서는 주님의 입이 명하신 것들을 예언자들의 영과 가슴에 말씀하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것들을 모아서 인간 저자를 통해 기록으로 남겨 주셨다. 말하자면, 인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인간 언어로 기록하게 하신 편집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신 셈이다.

 

특히 본문에서 '레게이'(legei) 직설법 현재 시제로서 '말하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말씀하셔서 기록된 성경 말씀이 시대를 초월하여 항상 현재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성경 시대에 예언자를 통하여 혹은 성경 기록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신 성령께서 오늘날에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든'


이 구절은 시편 95장 8절의 인용인데, 이 시편은 광야의 출애굽 1세대가 걸어간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본절에서 '오늘'로 번역된 '세메론'(semeron)이 서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세메론'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서는 '하이욤'(haiyom)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종종 '오늘' 이나 '이날', '어떤 특별한 날'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때로는 하느님에 의해 회개가 권고되고(시편95,8), 하느님에 의해 구원이  부여되거나(시편118,24), 양자로 채택되는(시편2,7) 구원의 때를 나타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이 하느님의 주도적 권세와 관련된 수많은 신학적 주제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본서 저자 이러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단어를 과거 구약적 상황에서 신약적 상황으로 옮겨 사용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대사제이시라고 한 고백을 확고하게 다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대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독자들이 자기 당대에 듣게 될 '그분의 목소리' 모세를 통해서 들려주신 지난 날의 음성과 대조가 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해 들려오는 오늘의 음성이다.

 

본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행해야 하는 현재적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서 '세메론'이라는 단어를 채택하였음이 분명하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에 우리와 만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신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음성은 대부분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심령과 영혼에 울려퍼진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진하던 도중에 르피딤에 진을 쳤을 때에 있었던 사건과 관련된 진술이다.

이스라엘은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자 모세와 다투고 주님을 시험하며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하며 의심하기까지 했었다(탈출17,1~7).

 

'반항하던 때처럼'으로 번역된 '호스 엔 토 파라피크라스모' (hos en to parapikrasmo)의 의미를 알아보자. 이 단어의 원형 '파라피크라스모스'(parapikrasmos) '격분','반역','반항'을 뜻한다. 히브리서 맛소라 본문에서는 '므리바'(mriba)로 되어 있다.

 

'다툼', '논쟁'으로 번역되는 이 히브리어 명사는 '싸우다', '다투다', '경쟁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리브'(rib)의 파생어인데, '리브'(rib)의 일차적 의미는 육체적 의미에서의 '싸우다'이다. 

이것이 후에 '말다툼'이라는 의미로 변화되었고, 더 나아가 법률적, 사법적 의미까지 취하게 되었다. 또한 흔치는 않지만 '불평하다'(complain)라는 의미로도 나타나는데, 특히 이것은 본문의 맥락과 관계된 이 동사의 핵심적 의미가운데 하나이다.

 

르피딤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그들이 모세와 육체적으로 치고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격렬하게 따졌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떄문이다. 그들이 취한 이러한 행동은 하느님을 향한 격분, 하느님께 대한 반역과 반항으로 규정되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과 순종인데, 그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기들을 구원하신 그분을 분노케 했던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이러한 태도 모반(rebellion)으로 받아들였다. 

당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모세를 방해하고 해하려 한 일체의 행위들을 당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반역으로 받아들이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불순종 역시 그렇게 받아들이신다.

 

즉 본서 저자는 그리스도를 버리고 과거 유대교로 돌아가는 행위가 하느님께 대한 반역임을, 본서의 일차적 수신자들인 당시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이러한 과거의 사건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카타 텐 헤메란 투 페이라스투 엔 테 에레모; kata ten hemeran tu peirasmu en te eremo; the time of testing in the desert)에서 '시험하던'으로 번역된 '페이라스무'(peirasmu) 원형 '페이라스무스'(peirasmus)는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서는 '마싸'(massa)로 되어 있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건의 질을 검토하거나 또는 누군가를 믿지 못해 시험해 보는 것을 의미하는 '나싸'(nassa)에서 유래하였다.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와 연관된다.

 

이스라엘이 르피딤에서 취한 행위는 하느님께 대한 시험이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건지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신 전능하신 분임을 체험했으면서도, 일시적으로 당하는 어려움 가운데서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고 시험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구원자 하느님께 대한 모독과 다름이 없었다.

 

'므리바' '마싸'의 두 지명은 인간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면, 하느님의 임재와 축복을 상실하고, 마음이 완고해져서 멸망하고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실증된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마라'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시험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해졌기 때문이었다. 본서 저자는 현재 히브리서 독자들 역시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메 스클레뤼네테 타스 카르디아스 휘몬'(me sklerynete tas kardias hymon; do not harden your hearts)이 본문인데, 여기서 '굳게하다' 뜻하는 '스클레뤼노' (skleryno) 가정법 부정어 '메'(me)와 함께 쓰여 금지 명령법 구문을 이룬다.

 

'스클레뤼노'가 본절에 인용된 시편 95장 8절의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는 '타크슈'(thakshu)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원형 히브리어 '카샤'(qasha)는 완고하고 고집이 세어 하느님의 인도하심(신명10,16; 2열왕17,14; 느헤9,16)이나 성령의 인도(시편7,51)에 대해 무감각했던 이스라엘의 심령 상태를 나타낼 때에 쓰인 말이다.

 

본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경계하기를, 마음에 하느님 모시기를 싫어함으로써 그 마음이 완고하게 되는 불행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일의 위험성은 '마음'으로 번역된 '카르디아스'(kardias) 원형 '카르디아'(kardia)의 의미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일반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생명의 중심을 지칭하며 인간 전체 지적, 영적 중심 자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대응어인 '레브'(leb)도 마찬가지다.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복음(마르1,40~45)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4)

 

여기서 '모세가 명령한 예물'이란, 모세의 율법에 부정한 이가 정결함을 입었을 경우에 사제에게 가서 바쳐야 할 제물들을 가리킨다. 

정결례에 관해 기록된 레위기의 규정을 보면, 이것은 살아있는 정결한 새 두마리, 향백나무, 다홍실, 우슬초였고(레위14,4), 다시 여드레째 되는 날에 바쳐야 하는 것으로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 곡식 제물로 바칠 기름 섞은 고운 곡식 가루 십분의 삼 에파와 기름 한 록이었다(레위14,10).

 

또한 마르코 복음 1장 44절 전반부에 기록된 것처럼, 그 제물을 바치기 전에 자신이 병이 나았음을 먼저 사제에게 보이고 정결한 이로 선언을 받아야 한다(레위13,16.17).

 

사실 예수님께서는 제사가 바쳐지던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시고(마태12,6), 당신 자신이 임금같은 대사제인 멜키체덱의 반열을 따르신 대사제이시므로, 반드시 구약의 제의적 행위를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니다(히브6,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치유받은 나병 환자에게 율법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당신이 율법을 폐지하거나 부정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케 하고 완성하러 오셨다(마태5,17)는 사실을 확인하여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치유의 완전성을 보여 준다. 당시 나병 환자의 완치를 공적으로 확인해 주던 사제에게 보여도 아무런 하자가 없을 정도로 예수님의 치유는 완벽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환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유대인 공동체 안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우리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아무런 하자없이 그리스도의 왕국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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