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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곱의 우물(7월 3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살신성인의 길)♣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5-07-03 조회수951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살신성인의 길)♣


      그때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조심 하여라.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잡혀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주실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 이시다.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또한 제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17-­22)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시며 성인으로 추앙되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충청남도 당진군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김제준 이냐시오, 어머니는 고 우술라였으며 삼남매 중 맏아들이었습니다. 1827년 정해 교난이 일어나자 박해를 피해 집안이 경기도 용인군 골배마실로 이사 와서 살았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사위가 관가에 밀고를 하여 잡혔습니다. 아들을 국경 넘어 신학생으로 보냈다 하여 국사법으로 다루어져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 서소문 밖에서 목이 잘려 순교하셨던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신학공부를 하는 중에 여러 번 고국에 입국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습니다. 프랑스 함대의 통역관으로 들어오려 하기도 했으며, 의주 변문을 통해 잠입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경원지방으로 입국할 통로를 찾기도 했고, 부제품을 받은 후에는 다시 압록강으로 입국하려 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김대건 신부님은 꿈에도 그리던 고국 입국에 성공하셨습니다만 그 이후에도 주교님을 모셔오기 위해 배 한 척을 마련하여 심한 풍랑과 갖은 고초를 헤치고 상해로 가시기도 했습니다. 신부님은 밤낮으로 신자들을 위해 일하고, 외국으로 국내 교회 사정을 알리며 활발히 활동하던 중 2년도 채 안 되어 붙잡혔습니다.

      신부님은 옥중에서도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는 편지로 격려를 하시다가, 1846년 9월 16일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국교회는 이만큼 크게 자라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짧지만 온 생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불사르신 살신성인의 길을 가신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빛이십니다.
      강신숙 수녀(성가소비녀회 광주대교구 비아 분원) ^^^^^^^^^^^^^^^^^^^^^^^^^^^^^^^^^^^^^^^^^^^^^^^^^^^^^^^^^^^^^^^

      (소스입니다) <br><UL> <br><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299.GIF></br> </br></UL> <BR><BR></UL><PRE><UL><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005e77> <B>♣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살신성인의 길)♣</B>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B> <B> </B><FONT style ="FONT-SIZE: 10pt" color=red> <P> <BR>그때에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조심 하여라.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U>그러나 잡혀갔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U>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주실 것이다. </BR> <BR>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 이시다.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또한 제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BR> (마태 10,17-­22)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green ace="돋음체"> 『야곱의 우물』《매일성서묵상》 <FONT style="FONT-SIZE: 11pt" color=darkviolet ace="돋음체"> <BR>◆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시며 성인으로 추앙되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충청남도 당진군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김제준 이냐시오, 어머니는 고 우술라였으며 삼남매 중 맏아들이었습니다. 1827년 정해 교난이 일어나자 박해를 피해 집안이 경기도 용인군 골배마실로 이사 와서 살았습니다. </BR> <BR>오늘 복음 말씀처럼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사위가 관가에 밀고를 하여 잡혔습니다. 아들을 국경 넘어 신학생으로 보냈다 하여 국사법으로 다루어져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 서소문 밖에서 목이 잘려 순교하셨던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신학공부를 하는 중에 여러 번 고국에 입국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습니다. 프랑스 함대의 통역관으로 들어오려 하기도 했으며, 의주 변문을 통해 잠입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BR> <BR>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경원지방으로 입국할 통로를 찾기도 했고, 부제품을 받은 후에는 다시 압록강으로 입국하려 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김대건 신부님은 꿈에도 그리던 고국 입국에 성공하셨습니다만 그 이후에도 주교님을 모셔오기 위해 배 한 척을 마련하여 심한 풍랑과 갖은 고초를 헤치고 상해로 가시기도 했습니다. 신부님은 밤낮으로 신자들을 위해 일하고, 외국으로 국내 교회 사정을 알리며 활발히 활동하던 중 2년도 채 안 되어 붙잡혔습니다.</BR> <BR>신부님은 옥중에서도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는 편지로 격려를 하시다가, 1846년 9월 16일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국교회는 이만큼 크게 자라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짧지만 온 생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불사르신 살신성인의 길을 가신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빛이십니다.</BR> 강신숙 수녀(성가소비녀회 광주대교구 비아 분원) <IMG src="http://akijaki.pe.kr/endam/sg/1998070002.jpg"> <Bgsound blance=0 loop=infinite src=http://sungga.catholic.or.kr/asf/1998070002.asf volum=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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