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당당한 직면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8-12 조회수2,301 추천수29 반대(0) 신고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마태오 18장 15-20절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당당한 직면>

 

수감된 형제들, 그리고 소년원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절실히 다가오는 한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저렇게 마음씨 착한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하는 느낌입니다. "저렇게 단순하고 순수한 아이가 과연 무슨 일로..."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지요.

 

그들과 대화를 풀어나가다 보면 다들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수감생활의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내심 부족", "한 순간의 실수"입니다.

 

다들 어찌 의리 있고 듬직한지 모릅니다. 다들 어찌 잘 생겼고, 또 어찌 그리 마음 씀씀이가 관대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욱" 하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사서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담장 바깥에 있는 우리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지요. 너나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성격적 결함 중에 하나가 한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스스로를 잘 컨트롤해나가던 우리지만 단 한번에 점수를 다 깎아먹지 않습니까? 평소에 그리도 여유 있어 보이고 유유자적하던 우리지만 단 한 순간에 내적인 상태가 돌변하는 체험을 하지요.

 

딱 1분만 참았어도 되는데 그 순간을 못 넘깁니다. 한번 비위가 상하고 마음이 틀어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얼굴은 즉시 싸늘한 냉기를 띱니다. 머리 위에서는 연기가 무럭무럭 나기 시작합니다. 라면이라도 끓일 수 있을 정도로 열을 받습니다.

 

그 상태는 비정상 상태이지요. 아이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여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 상황에서는 무조건 입 꼭 다물고 시간을 버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걸 또 못합니다.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게 되고, 주변에 누가 있건 말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따놓은 점수 완전히 다 까먹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 인간의 약점을 잘 간파하고 계셨기에 뚜껑이 왕창 열리는 긴박한 상황 앞에서도 한 템포를 늦출 것을 요구하십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논리적, 이성적으로 접근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나를 핍박하는 사람, 내게 몹쓸 말을 하는 사람, 기본이 안된 사람, 눈꼴사나운 사람, 덜 되먹은 사람, 한 마디로 얍쌉하고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분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단 목소리부터 가다듬어야겠지요. 심호흡을 몇 번 하면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면 좋습니다. 최대한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꺼내면 좋습니다. 그것도 조용히, 그리고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혹시 오늘 시간 좀 있으세요?" "오늘 내가 술 한잔 살까?" "내가 커피 한잔 살게."

 

그리고 차분하게, 그러나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 순간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지요. 상황을 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참으로 소중한 덕입니다.

 

이웃을 부족함이나 약점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직면하는 노력, 이보다 더 큰 형제애는 다시 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이 지닌 한계를(특히 스스로 바라보지 못하는 취약점) 정확히 바라볼 수 있도록 지적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형제에게 충고하는 과정에서 대체로 미성숙한 대화기법이나 대화문화로 인해 의외로 많은 경우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성숙한 대화 문화-바로 예수님의 대화기법-가 필요한 것입니다.

 

논리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접근, 진정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경으로 한 형제적 충고가 필요합니다.

 

공동생활 안에서 상처는 필연적이라고 보면 정답입니다. 괴로운 것이 상처지만 결국 상처를 통하지 않고서는 서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공동체 안에서의 상처는 상호성장의 장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상처는 상호 성화를 실현하는 장입니다. 성령께서는 상처와 고통을 당신의 활동장소로 선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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