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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따로"면서 "하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3-08-11 조회수1,356 추천수5 반대(0) 신고

8월 11일 성녀 글라라 동정 기념일 말씀(신명 10,12-22: 마태 17,22-27)

 

오늘 복음은 성전세를 거두어들이는 문제에 관해 초대교회의 입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예수께 와서 묻지 않고 베드로에게 물었다는 것을 눈여겨보자. 마태오 복음이 쓰여지던 당시는 이미 예수님도 안계시고 모든 결정은 교회의 수장(베드로의 후계자)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문제에 대답을 내려줄 의무와 권한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이 쓰여진 것(80-90년경)은 이미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된 이후(70년경)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성전을 위해 거두어들이던 성전세(두 드라크마)는 이미 용도가 파기된 세금이었다. 그런데 성전 파괴 이후에도, 로마는 이 세금을 그대로 거두어 자신들의 신전인 유피테르(Jupiter) 신전을 관리하는 세금으로 용도 변경하였다.

 

자, 그렇다면 유다인들 입장에서 이 세금은 대단히 애매하고 껄끄러운 문제였던 것이다. 세금을 내자니 로마의 신전에 바치는 것이 될 것이고, 세금을 안내자니 실정법에 걸릴 일이었다. 물론 유다인들은 민족적 감정으로나 신앙상으로나 마음에 걸리면서도 대부분 세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입장이었을까?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 문제에 관한 답을 듣는다. 마르꼬 복음에서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세금에 대해 예수께서 대답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먼저 근본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두 번째는 현실적인 해결은 어떠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가르쳐주신다.

 

먼저 세상 임금의 자녀들이 세금에서 자유롭듯이 하느님의 자녀도 성전을 위한 세금에서 자유로운 입장임을 분명히 한다. "세상에 신도 많고 주도 많지만 너희 주 하느님이야말로 신이시오 주이시다."는 오늘 독서의 말씀처럼 세상에는 자신이 神이라고, 主라고 말하는 신이 많지만 정말 神은 아닌 것이다. ’경외하고 충성을 다하고 섬길 분은 주 하느님’, "찬양할 이는 그분 뿐"이라는 것.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는 그분께만 충성을 다하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들려주시는 변화될 수 없는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방향이다.(25-26절까지의 말씀)

 

그렇다면 세금을 내지 말고 로마와 적대시하며 버티라는 것인가? 아니다. 그 근본방향은 분명하지만 예수께서는 곧이어 현실적 해결책 하나도 내어주신다. 로마나 그밖의 어떤 정치 세력과의 불목이나 불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내라는 것이다. 그들의 정치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들의 신을 인정해서는 더더구나 아니고 단지 불목함으로써 박해의 구실을 주지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세금을 내는 동기만 바뀌었을 뿐이다.

 

세금을 내는 것은 같을지라도, 공동체가 처한 이런 까다로운 정치 사회 현실의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으로써(베드로라는 교회 수장의 입장 표명으로써) 이제 그리스도인은 세금의 속박(민족적, 종교적 양심의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세금을 낼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마태오 복음만 전해주는 ’물고기 입에서 꺼내온 은전으로 세금을 바치라는’ 특이한 이야기는 또 무슨 이야기일까? 해석이 분분하지만,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처럼(물고기 배에 보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흔한 민담이다) 단순하게 보면, "내 몫과 네 몫으로 갖다 내어라"는 예수님의 풍자적인 말씀이 핵심일 것이다.

 

즉 예수님과 베드로는 이제 일심동체(한 물고기 안에 든 한 개의 은전)로서 교회의 처신에 관한 베드로의 결정에 당신이 함께 해주시겠다는 연대감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제 마태오 18장부터는 교회에 대한 가르침(공동체 설교)이 연이어 나온다.

 

우리도 다원화된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어떤 가치를 따라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세상의 가치’ 따로 ’하느님의 가치’ 따로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칼로 자르듯 따로 따로는 아닌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던, 때론 세상과의 불목과 불화를 피하기 위해, 이웃 사랑의 차원에서 함께 참여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근본적인 방향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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