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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주님, 제 인생의 저녁에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9-30 조회수2,125 추천수36 반대(0) 신고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대축일-마태오 18장 1-5절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사랑의 주님, 제 인생의 저녁에>

 

평소 존경하던 주교님, 기도 많이 하시는 주교님으로 널리 알려진 김창렬 주교님과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하고 너무 기뻤습니다.

 

작년 은퇴하셔서 제주도의 한 한적한 장소에서 기도에만 전념하면서 은수자처럼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주교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은 제게 강한 전율처럼 전해왔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더 좋아하신다는 걸 내가 알았어. 일은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해. 될 수 있는 대로 나가지 않는 게 좋다고 주님이 말씀하셔. <너는 여기서 가만히 기도만 하고 지내라.>"

 

"요즘 왜 그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교님 얼굴 뵙기가 힘드냐?"는 물음에 주교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을 때가 있으면 줄때가 있고, 능동적일 때가 있으면 수동의 때가 있다. 수동의 때가 덜 중요하냐 하면 그렇지를 않아요.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일하시고, 가르치시고 행하시고. 그러나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때리면 맞으시고, 침 뱉으면 맞고, 끌려가시고, 법정에 세우면 서시고, 조롱의 옷을 입히면 입으시고, 사형 언도를 받으시고, 당하셨어요. 거기에 1%도 당신이 행하신 게 없어요."

 

앞으로의 남아있는 개인적인 소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주교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기도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 그게 내 전부 같아. 마지막 소명은 기도하는 것, 다른 건 하느님께서 내게 기대하실 게 없어. 그저 ’넌 나하고 가까이 있어라. 난 그걸 원한다’(가톨릭 다이제스트 2003년 10월호 참조)."

 

주교님의 신앙고백을 읽으면서 주교님께서는 아마도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소화 데레사 영성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외적으로 두드러진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지요. ’이거다’ 할 만큼 거창한 그 무엇, 특별한 것, 대단한 것들을 추구하는 경향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경향인 듯합니다.

 

확대지향적 물질만능주의의 영향 아래 큰 것, 많은 것들에만 각별한 의미를 두는 이 세상에서 작은 꽃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 성녀가 오늘 축일을 맞는 소화 데레사입니다.

 

성녀는 이름 그대로 하느님 앞에 한 송이 작고 예쁜 꽃이었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작음의 소중함, 작음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보여준 성녀였습니다.

 

소화 데레사의 삶은 진정 한 송이 작디작은 풀꽃의 삶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야산(봉쇄 수녀회)에서 일생을 기도에만 전념하면서 사셨지요.

 

소화 데레사의 인생은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 잘나가던 인생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찌감치 봉쇄 수녀회에 입회함으로 인한 세상 것들과의 결별로 인한 고통, 약해진 건강, 관계 안에서 오던 스트레스, 그로 인한 건강의 악화, 24살이란 젊은 나이의 요절.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한 마디로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소화 데레사의 인생은 한 마디로 불꽃처럼 타올랐던 인생이었습니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요절한 소화 데레사였지만 80, 90을 산 사람보다 훨씬 강렬하게 주님을 만났었고, 온전히 주님의 품 안에 파묻혔기에 완벽한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더 이상 작아질 수 없게 되었던 소화 데레사, 마치 하느님의 손수건처럼 가벼운 존재가 된 소화 데레사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품에 안길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도 큰 사람, 너무도 높은 사람, 너무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 머릿속에 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너무 무거워서 하느님의 품에 쉽게 안길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버릴 만큼 버린 사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간 사람, 작아질 대로 작아진 사람,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구부린 사람은 그 무게가 너무나 가벼워서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 자비의 품안에 머무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제 인생의 저녁에 빈손으로 저는 당신께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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