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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삶의 청산과 퇴출의 명 - 얄미운 청지기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4 조회수1,540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4년11월5일(금) -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6,1-8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해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청지기 한 사람을 두었는데 자기 재산을 그 청지기가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청지기를 불러다가 말했다. ‘자네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짓인가? 이제는 자네를 내 청지기로 둘 수 없으니 자네가 맡은 일을 다 청산하게.’ 3)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4)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 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겠다.’ 5)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진 빛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6)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7) 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진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팔십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8) 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이렇게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복음산책]  삶의 청산과 퇴출의 명 - 얄미운 청지기


  오늘 복음은 부정직한 청지기의 약삭빠른 일 처리에 관한 비유를 들려준다. 그런데 복음의 비유는 주인이 청지기의 약삭빠름과 부정직함을 탓하고 있기보다는 그의 슬기로움을 오히려 칭찬하는 내용으로 끝맺는다. 예수께서도 아마 주인과 같은 입장에서 부정직한 청지기를 칭찬하려 하신 것 같다.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다. 다만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8b절)는 말씀은 빛의 자녀들이 이를 흉내 내지 말 것을 바라시는 뜻으로 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지기의 어떤 면이 칭찬 받을만한 지를 살펴보자.


  비유는 어떤 부자가 고용한 청지기가 부자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낭비(횡령)한 것이 드러나, 청산(淸算) 후 퇴출(退出)을 강요받는다. 그 동안 재무관리로 의자생활에 습관이 되었을 청지기는 앞이 막막했다. 하지만 그는 짧은 기간에 묘안을 생각해 내고 일사천리로 일을 해치운다. 묘안은 퇴출 후에도 자기를 후하게 대접해 줄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빚을 삭감해 주는 방법을 택했다.(5-7절) 마지막에 가서 주인은 청지기의 이러한 일 처리를 보고 약삭빠른 줄은 알지만 그 슬기로움은 칭찬한다.


  어제 복음에서는 우리가 ‘잃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각별한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 지를 배웠다. ‘잃은 양 한 마리’(15,4-7), ‘잃은 은전 한 닢’(15,8-10), 그리고 복음으로 듣지는 않았지만 ‘잃은 아들’(15,11-32)의 비유에서 잃은 것을 찾을 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는 목자와 여인, 그리고 유산을 미리 챙겨 떠나가서 방탕(放蕩)하기까지 한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만을 목 빼어 기다리던 아버지의 모습은 영락없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이다. 잃은 양과 은전의 비유에서는 잃은 것을 찾기 위한 주인의 노력이 부각되지만, 잃은 아들의 비유에서는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돌아오는 아들의 회개가 결정적이다. 따라서 ‘잃은 양과 은전과 방탕한 작은아들’은 바로 세리와 죄인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특히 돌아온 작은아들에게 심할 정도로 후한 대접과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에 대하여 불만을 품는 큰아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다. 그들의 눈에 빗나간 것으로, 잃었던 것으로 보이던 것이 그것을 찾는 주인의 품으로 돌아와 반전(反轉)의 기쁨을 누린다는 것은 우리가 봐도 얄미울 일이 아닌가 말이다. 얄미운 것은 오늘 복음의 청지기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낭비와 횡령에도 불구하고 약삭빠르게 일을 처리한 대가로 주인은 물론 예수님의 칭찬까지 받으니 말이다. 


  문제의 청지기는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깨닫고 자신의 미래를 구할 수 있는 절묘한 방책을 마련한다. 청지기는 비록 부정직한 방법을 택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법을 동원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청지기의 부정직하고 비양심적인 면은 덮어두고라도 그의 슬기로움은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걱정할 줄 알고, 이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다. 예수께서도 이 점을 칭찬하신 것이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가능하면 본받으라는 것이다. 임박한 심판 앞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걱정해야 한다. 그것도 영생(永生)을 판가름 짓는 심판이라면 그 절박함이 더욱 고조된다. 청지기가 당한 ‘청산 후 퇴출’이라는 실직(失職)의 위기처럼 최후의 심판을 눈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회개(悔改, Metanoia)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다. 이젠 머지않아 우리도 자신의 삶을 청산하고 이 세상에서의 퇴출을 명(命) 받을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회개의 삶으로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일 수도 있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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