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1-09-15 조회수2,041 추천수20 반대(0) 신고

언젠가 바티칸 광장 앞을 거의 매일이다시피 가로질러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내키면 베드로 대성당 안에도 가끔씩 들어가보곤 했었는데, 그 때 마다 관광객들의 발길을 가장 많이 멈추게 하던 곳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피에타상 앞이었습니다.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1475-1564, 이탈리아)의 초기 작품인 동시에 르네상스 전성기의 대표작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을 무릎 위에 얹은 어머니 마리아는 조용히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성모님의 한없는 슬픔과 고통을 가장 잘 내면화 시킨 작품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조용한 평일 오전, 다시 그 자리에 들렀을 때, 홀로 그 앞에 서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게 왠 떡이냐?" 하면서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마냥 피에타상 앞에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한 어머니의 아픔이 천천히 제게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 겪으셨던 성모님의 갖가지 고통들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슬픔 중에 가장 큰 슬픔은 아마도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슬픔일 것입니다. 이제 잊을 만 했는데, 다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고 화를 내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참으로 잊기 힘든 기억 중에 하나가 씨랜드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넋 나간 모습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형민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으로 해서 엄마의 인생도 여기서 끝났다는 것뿐이다. 아직도 아이는 유치원 버스에서 뛰어내려 안길 것 같고, 휴대폰으로 <아빠, 햄버거 사오세요>라고 외칠 것만 같다."

 

"비가 오면 나현이의 노란 우산이랑 장화가 생각나고, 베란다에 서면 가현이랑 나현이가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던 그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나현이·가현이 쌍둥이 자매를 한꺼번에 잃은 엄마는 딸애가 통 꿈속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못내 야속해서 운다."

-이제는 해가 솟는 넓은 세상에서 살아라, 넥서스출판사-

 

오늘은 성모통고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 아들 예수님으로 인해 겪으셨던 갖가지 고통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성모님은 언제나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의 현장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침묵과 기도와 눈물로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셨습니다. 마침내 고개를 떨어뜨린 예수의 시신을 당신 품에 안으시는 극한의 고통을 겪으십니다. 처참하게 부서진 예수님을 팔에 안으셨던 성모님의 마음은 씨랜드 화재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견뎌냄의 달인이신 성모님은 기꺼이 그 고통을 이겨냅니다. 왜냐하면 고통 그 너머에 자리한 하느님의 얼굴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모님은 극도의 고통을 이겨낸 예수님의 얼굴을 팔에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손길은 상처로 얼룩진 예수님의 얼굴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한평생 인내와 겸손, 침묵과 수용으로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통을 견뎌낸 여행길이 바로 성모님의 생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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