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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 미안하지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1,269 추천수17 반대(0) 신고

2004년11월3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기념ㅡ필립비2,12-18;루가14,25-33ㅡ

 


           미안하지만

 

 

위령성월의 첫 글을 시작하면서, 200회라는 장르를 열면서, 짧지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어떻게 했는가?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묵상을 쓰러 왔을 때는 병색이 짙었고, 토혈을 하던 기척이 갈색으로 남아 묻어났고,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고, 약 봉지들이 쌓여있었고, 외로웠고, 슬펐고, 아팠고, 쓸쓸했고, 자식 때문에라도, 짝궁 때문에라도, 가족 때문에라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큰맘을 먹고 짝궁이 컴퓨터를 사 주었다. 인터넷을 배우느라고 아들의 구박을 견디어야 했고, 썼던 글을 한꺼번에 날리고 망연자실하여 울었던 경험들도 좋았다. 닫아버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다스리지 못해서 병이 되어버렸던 심신의 치유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노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영께서 인도하시는 요구를 따르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읽기를 바래서 가 아니라 내가 나를 세상으로 나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생명의 관점에서 죽이는 절망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결심 하나를 세웠을 뿐이다. 살리는 글을 쓴다는 맹세였다. 그것이 살린다는 희망이었다.

 

삶이 변한 것은 별로 없다. 그대로 방이 두 칸에 남아있는 빚더미와 아직도 등짐 져있는 십자가는 그대로다. 그러나 토혈이 멈추었고, 약 봉지도 줄었고, 혈색은 탱글하며, 재미나게 살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이름뿐인 많은 친구들이 있다. 주님의 이름을 빌어 나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창을 열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내가 창을 열면 만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미안하지만 내가 한 것은 창만 열었을 뿐이다. 나는 어떻게 했는가?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 것도 없이 창만 열었다 닫았다 했더니 얻은 것은 너무나 많아져 있다. 그 값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내가 심신의 병이 들었을 때는 모든 것을 다 버렸었다. 종교의 모든 활동을 접었고, 인연이 된 모든 인간관계를 청산했으며, 발을 딛고 다니던 모든 땅을 거부해 버렸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것들을 회복시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절망이었다. 나만이 세상에서 도태되어버린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지구는 잘도 돌아가는데 나만 돌지 않는 사각의 지구에 가친 것 같았고, 모두는 희희낙낙 한데 나만 우울의 성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고, 인생은 대로의 아스팔트인데 나만이 절벽의 험난한 바위산에 서있었다.

 

그래도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늘의 노여움이 천벌을 내린다 해도 그대로 지옥을 살아버릴 것이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나에게 용서라느니, 화해라느니, 따위의 어떠한 언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정말로 미안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관계 안에서의 종교는 버려버린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진정한 종교는 관계가 아니라 비움이었던 것이다. 인간관계 안에서의 종교는 신앙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이기심을 이해받고 이해해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수단들의 결집이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이 모여서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이기심을 형성해 가는 응집력! 그것이 모두를 위한, 더불어 사는 구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닌 사람이 나였던 것이다. 종교는 끼리끼리 모여서 사교적 활동을 이루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틈바구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에 대하여 답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미안하지만 회복하고 싶지 않은 상처들이 썩어죽게 내버려 두기에는 주님의 마음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컴퓨터를 사 주시고, 관계 안에서의 종교를 걸러주시지 않았는가 싶다. 여기서는 나이의 벽도 없다. 능력의 벽도 없다. 수준의 벽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골라서 선택할 수 있는 벽은 더욱 없으며, 또한 싫은데 붙들려서 있을 이유는 더더욱 없어진 것이다. 내가 얽히고 있던 모든 것을 단절하고야 말았던 이유였나 보다.


비로소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고 내 몫의 십자가만 지고 있다. 200번의 묵상을 쓰고 얻은 자유인 것이다. 누가 볼까? 누가 읽을까? 상관없이 오직 주님 한 분께 쓰는 연애편지의 결실이 나에게 준 것은 평화로움이었다. 내 가슴을 내가 펼쳐놓고 한 줄 한 줄 읽어볼 수 있었던 용기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나에게서 진정한 자유가 박탈되고 없었을 때는 나의 가슴을 내가 읽게 될까봐 두려워질 때였던 것이다.


이제는 나의 허물을 벗어버린 느낌이다. 가볍다. 개운하다. 몹시 청명하다.

어머니께서 폐지를 주우셔도 걱정이 되지를 않고, 두 칸 방에서 좁게 누워도 행복하고, 짝궁의 식견이 무지해도 세상에는 그만큼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없어졌다. 묵상은! 내가 쓰는 묵상은 주님 안에서 내가 나를 읽어가는 과정이었다. 미안하지만 누구를 성찰시키고자 한 목적이 아니라 내가 나를 성찰 시켜온 참회였던 것이다.

 

ㅡ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루가14,3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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