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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17 주일. 2019년 7월 28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19 조회수1,369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7 주일. 2019728.

루가 11, 1-13.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의 제자 한 사람이 기도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청하였고예수님은 기도의 내용과 기도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치십니다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합니다목욕재계(沐浴齋戒)로 준비하라는 말씀도 없고제물(祭物)을 먼저 바치라는 말씀도 없습니다기도를 위한 자세도, 기도를 위한 복장도 없습니다기도를 위한 특별한 장소에 대한 말씀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기도의 내용을 말씀하십니다우리가 오늘 주님의 기도라고 부르는 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하느님을 부르면서 기도는 시작합니다우리가 하느님을 부르면, 하느님의 시선이 우리에게 오고,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들을 보살피듯이, 사랑하고, 베풀고, 용서하며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아버지가 함께 계셔서 자녀들이 안심하고 살며 행복하듯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리스도신앙인도 행복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생명을 베푸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우리를 배려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남성 위주의 가부장(家父長)적 옛날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에는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역할도 당연히 함께 들어있습니다하느님은 우리 생명의 기원이시며, 우리를 위해 배려하시는 분이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분의 생명을 이어받아 살겠다는 결의(決意)도 들어 있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자비로우시며, 우리를 고치고 살리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여러분도 자비롭게 되시오.”(루가 6, 36)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하느님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를 우리가 배워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오늘의 기도는 이렇게 이어집니다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느님에게 가져와 말씀드리고 그것의 성취를 비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면, 우리 안에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게 되고, 그 실천으로 아버지의 나라가 이 세상에 온다는 말입니다그것이 하느님의 자녀 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하는 항목입니다성숙한 자녀는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자녀는 먼저 부모의 뜻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질 것을 빈 다음, 기도는 이어집니다.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노동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위선적 기도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아버지이신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자각한 우리는 우리가 노동으로 얻은 일용할 양식을 보아도베푸시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분이 은혜롭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기도입니다그리고 기도는 계속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보아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이 생각난다는 말입니다이 말은 우리가 용서를 실천할 때만, 하느님도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가 실천하는 용서가 하느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전제조건이 아닙니다하느님이 용서하시는 분이라,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면서 아버지의 은혜로우심을 이웃과 함께 기뻐한다는 기도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는 말로써 오늘의 기도는 끝납니다.  유혹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살겠다는 마음입니다유혹에 빠진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행동합니다. 게쎄마니에서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시오.”(루가 22, 40).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를 부르면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원하신다면 이 잔을 거두어 주소서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42).  유혹은 하느님을 생각하지도, 부르지도 않는 삶입니다유혹에 빠진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자기 행동의 유일한 기준입니다게쎄마니에서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혹에 빠져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행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잠들었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각자 살기 위해 도망칩니다.

 

이렇게 기도의 내용을 가르친 예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설명하십니다친구를 졸라대는 사람이 친구에 대해 가진 신뢰심과 같은 신뢰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긍정적 신뢰심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이렇게 선언하신 다음예수님은 제자들이 알아듣게 다시 설명하십니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설명하고, 선언하고, 또 설명하는 예수님의 자세입니다. 그분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게 깊은 신뢰를 가지라고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갇혀서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제대로 된 자녀는 부모를 신뢰합니다노예나 종은 주인을 신뢰하지 않고, 주인의 마음에 들어서 혜택을 누릴 궁리만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청할 것은 성령이라는 말씀으로 끝맺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분의 숨결인 성령이 우리 안에 일하십니다오늘의 복음은 우리가 하느님에게 구하고, 문을 두드려서 얻어내어야 하는 것은 성령이라고 말합니다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고아버지의 나라가 오며,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 이 모든 것이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일어나는 일입니다하느님은 우리가 큰 신뢰로써 다가가야 할 분입니다그분은 우리의 소원을 성취해주는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인색하던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갖고명예와 허례허식(虛禮虛飾)을 탐하던 우리가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인간은 학문과 예술을 익히기 위해 피 말리는 노력을 합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배우는 것은 하느님의 생명입니다우리는 하느님이 아니기에 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하느님의 일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무릅쓰면서도 하느님을 배우겠다는 우리의 마음 안에 성령은 숨결로 살아계십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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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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