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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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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23 조회수38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5월 23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제1독서 사도 18,23-28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23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복음 요한 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갑곶성지 초창기에 난방을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의 꿈을

떠올리며 화덕 난로를 설치했습니다.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장작을 때는 벽난로가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벽난로는 설치비가

만만치가 않아서 근처 철공소에서

제작한 화덕 난로를 사서 설치했습니다.

무엇보다 성지 뒤에 산이 있어서

나무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나중에 그 산이 우리 산이 아니기에

함부로 나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정도로 무식했던 저였습니다).
설치 후에 할 일이 생겼습니다.

 난로에 넣을 수 있는 크기로

나무를 잘라야 했습니다.

창고를 보니 손도끼가 있어서,

열심히 이 손도끼로 장작을 팼습니다.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쓰는 모습을 본 순례를

오신 형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무겁고 큰 도끼를 써야 편합니다.”
내 손에 딱 맞는 손도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크고 무거운 도끼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님은 “장작은 도끼가

패는 것이지, 사람이 패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저 거들 뿐이지요.”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철물점에서 큰 도끼를 사온 뒤에

이 말씀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작은 도끼가 패는 것인데,

 제가 패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 고생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나는 그저 거들 뿐인데,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쓰지 않아도 될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옆에서 그분을 거들 뿐입니다.

이러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교만의 길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 겸손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것을 중심으로 기도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하는 것’은 우리의

복된 삶과 구원에 관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주님께

모든 주도권을 맡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기도를 바친다면

주님께서는 분명히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을 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함을 드러내는 것을 암시합니다.

청하는 이들의 기도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사람이시기에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고 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 주도권을 맡기는 기도를

바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주님을 거들 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나를 달리게 하는 것은

들판이 아니라 들판에 대한 상상.

(이제니)

가식으로든 진실로 하든….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아프면 아프다 했지/

슬프면 슬프다 했지/

 화나면 화를 냈지.
나 그렇게 살았었지,/

내 본능이/ 원하는 대로/ ...
힘들면 미소짓지/

서러우면 허허 웃지/

수틀리면 하하하 호탕하게
점점 가식이 늘어갔지./

내 안의 그리스도/

바라시는 대로/ ...
기쁨이 넘쳐 눈물짓고/

은혜에 겨워 흐느끼고/

감사에 벅차 통곡하고
이런 날도 오더라./

본능과 가식과 꿈이/

한통속이 되는 때가 오더라/ ...
차동엽 신부님의

유고시집에서 뽑은 시입니다.

 병세가 깊어지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런데도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셨습니다.

많은 글을 쓰시고,

당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으시면서

강의하셨습니다.

신부님의 이 열정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신부님 힘의

근원은 주님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있기에 희망이 있고,

그 희망으로 기적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17년 전, 갑곶성지를 처음 시작할 때의 경당 모습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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