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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3 조회수1,461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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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 

 

 

 

지혜서의 저자는, 임금들의 권력과 통치권은 주님께서 주셨다며,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한다. (지혜  6,1-11)
1 임금들아, 들어라. 그리고 깨달아라. 세상 끝까지 통치하는 자들아, 배워라.
2 많은 백성을 다스리고 수많은 민족을 자랑하는 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3 너희의 권력은 주님께서 주셨고 통치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셨다. 그분께서 너희가 하는 일들을 점검하시고 너희의 계획들을 검열하신다.
4 너희가 그분 나라의 신하들이면서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6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7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8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9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10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화답송 시편 82(81),3-4.6-7(◎ 8ㄱ)
◎ 일어나소서, 하느님, 세상을 심판하소서.
○ 힘없는 이와 고아의 권리를 찾아 주고, 가난한 이, 불쌍한 이에게 정의를 베풀어라. 힘없는 이와 불쌍한 이를 도와주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어라. ◎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사람들처럼 죽으리라.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쓰러지리라. ◎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나,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13 그들은 멀찍이 서서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지혜6,1-11)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만물의 주님께서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시고,

 누가 위대하다고 하여 어려워하지도 않으신다.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그러나 세력가들은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그러니 군주들아,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6-9)

  

지혜서 6-9장은 전체 지혜서의 2부에 해당되며, "지혜"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지혜서 6장 1-11절 시작 권면으로서 세상 임금들에게 주는 말씀이다.

 

이 책이 세상의 임금들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지혜1,1-15참조)

제1부 '정의와 불멸성'(지혜1-5장)에 관한 가르침을 마무리하고,

이어지는 "지혜"에 관한 제2부 가르침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불법과 악행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일 것을 임금들에게 호소한 뒤에

(지혜6,1-2; 5,23참조), 저자는 그들에게 권력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엄격한 심판을 요구할 것임을 상기시킨다(지혜6,3-8).

 

통치자들은 자기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 통치자들을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을 엄정하게 심리하신다.

  

하느님께서 통치자들을 엄하게 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지혜서 6장 9-11절에서 그들이 지혜를 배우도록 초대하신다.

 

항상 그렇듯이 지혜서에서 가르치는 지혜는 올바른 삶과 거룩함과 연결되어 있다.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  (지혜6,10).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지혜의 본성에 관한 본격적인 가르침이다.

  

  

연중 제32간 수일 복음 (루카17,11-1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5~16)

 

여기서 '병이 나은'에 해당하는 '이아테'(iathe; he was healed)의 원형

'이아오마이'(iaomai)'치료하다', '회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이아오마이'(iaomai)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한 치유

관련되어 사용되었는데, 특히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이루어질 치유의 역사를

보여 주는 단어로서, 구약 예언의 성취를 보여 주는 동사이다(이사35,3~6; 61,1).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든 치유의 본질이 기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 있는 말씀으로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여신 치유자 예수님께 있음을 암시한다.

 

열사람의 나병 환자들은 눈으로 아무런 증거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제들에게 검증받기 위해(레위14,2) 가던 도중에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루카 복음 17장 15절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보았다고 말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단순히 가시적으로 나타난 치유 기적을 이 한 사람만이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나병 환자만이

자신의 치유자가 바로 예수님임을 깨닫고 감사하려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나병 환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치유 기적의 배후에

하느님께서 계셨고, 그분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깨달았기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하며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왔던 것이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인B.C.722년 북부 이스라엘의 아시리아에 의해 함락된 이후에

그들과 혼혈이 되어 혈통의 순수함이 변질되고, 아시리아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야훼 유일신 신앙마저 변질시켜 혼합 종교를 섬기던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혈통의 순수함과 야훼 유일힌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여겨져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꼐 은혜를 입고 돌아와 무한 감사를 표시

반면에, 선민으로서 다른 민족에 비해 하느님의 살아과 축복을 더 많이 받았던

유대인으로 여겨지는 나머지 아홉은 오히려 자신의 몸이 깨끗해진 사실에만

기뻐할 뿐, 최소한의 어떤 감사도 표시하지 않았다.

 

루카 복음사가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더 합당한 삶을 산다는 모습을 통해서,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과 이름만을

소중히 여기며 교만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엎드려'에 해당하는 '에페센 에피 프로소폰'(episen epi prosopon;

he threw himself; he fell down his face)은 직역하면

'그는 얼굴을 떨어뜨렸다'이다.

 

어떤 사람의 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떨어뜨려 땅에 대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존경과 경배의 표시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을 치유한 예수님께 최고의 존경을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감사를 드렸다'로 번역한 '유카리스톤'(euchariston; thanked;

gave thanks)의 원형 '유카리스테오'(eucharisteo)는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와 성찬례 축복 기도를

가리키는 용례로 쓰였다.

 

예수님께 대한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 행위에 이 용어가 쓰인 것은,

그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치유에 대해 하느님께

돌리는 것과 같은 감사의 표현을 했음을 나타낸다.

 

다시말해서, 그는 자신의 치유를 통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인식하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님께 감사를 표시한 것이다. 

 

  

루카 17,11-19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감사하는 마음 자세! | 블로그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십니다.”(17,14)

그런데 그들이 사제에게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17,14)

이렇게 하느님께서 하시는 치유는 인간이 정해 놓은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치유 받으려는 이의 지향과 순수한 사랑의 갈망과 믿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치유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의 유대인은 주님께서 주신 해방의 선물을 자기것으로 소유하는 악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 선물을 주신 주님을 곧바로 잊어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 한명은 병이 낫자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17,15-16) 치유와 해방의 선물을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선이신 그분 안에 끝까지 머문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예수님의 치유로 민족적, 종교적인 적대감과 증오심까지 치유받습니다.

우리도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경계를 지나시며 사마리아인을 치유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문화와 이념, 민족과 종교가 다르고 신분과 빈부에 차이가 있다 하여도 열린 마음으로 모두를 사랑해야겠습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조건 없이 자신을 내놓을 줄 아는 너그러움이 치유와 해방을 불러옴을 기억해야겠지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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