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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생명의 빵이 되신 주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6,635 추천수0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생명의 빵이 되신 주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한때 크리스마스 카드에 “밥이 됩시다”, “제가 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문구를 즐겨 썼다고 한다. 그 문구에는 영혼과 육신이 허기진 이들의 ‘밥’이 될 만큼 자신을 내놓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나는 결코 너의 밥이 될 수 없다’며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오히려 타인을 ‘나의 밥’으로 삼기 위해 혈안이 된다. 김 추기경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 입을 열지 않았”(이사 53,7)던 고난 받는 종이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말없이 빵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먹히심을 기억하게 한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빵으로 오신 예수님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이스라엘 민족이 시나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차원이 다른 참된 양식이라고 밝히신다. 곧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인 것이다. 그리고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당신과 일치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빵’과 함께 ‘살’이 대비되어 나온다. 신약성경에서 몸[그리스어 소마(σωμα), 라틴어 코르푸스(corpus)]은 바로 그 사람 또는 존재를 뜻하고, 살[그리스어 사르스(σαρξ), 라틴어 카로(caro)]은 육체적 몸을 뜻한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마태 26,26; 마르 14,22; 루카 22,19; 1코린 11,24 참조) 성체성사 제정에 관해 이야기할 때 ‘몸’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요한 복음서에서는 특별히 ‘살’을 사용한다. ‘살’은 요한 복음서를 쓴 공동체에서 통용되던 용어라고 여겨지고, 아람어 성찬 기도문을 떠오르게 한다.

 

2세기 초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글(<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7,3)에는 성사적 의미로 ‘살’을 사용한 흔적이 있다. 성사적으로 육화(요한 1,14 참조)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희생한 수난을 드러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사람의 육을 취하게 하여 우리에게 보내셨으며,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려 희생 제물이 되게 하셨다. 이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요한 3,16)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 사랑이 성체를 통해 지속된다.

 

 

받아 먹고 받아 마시는 성체와 성혈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예수님께서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라고 하신 말씀을 영성체로 실행한다. 영성체는 예로부터 사제와 신자들 순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주례 사제는 조용히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뒤 성체를 경건하게 모신다. 성혈도 같은 방식으로 모신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살아가며, 신자들에게 당신을 양식으로 내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마음으로 참여한다”(<사제 생활 교령> 13항).

 

그런 다음 사제는 성합을 들고 신자들에게 성체를 조금 들어 보여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하며 성체를 분배한다.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믿음을 드러내고 성체를 받아 모신다. 4세기 이후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아니즘 이단에 맞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성체성혈도 지존하신 하느님의 몸과 피임을 역설하였다. 신자들은 성체성혈에 대한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에 경외심을 느껴 영성체를 차츰 멀리하였다. 결국 미사는 거룩한 식사라기보다 구원의 희생 제사로 인식되었고, 영성체는 대축일 등 특별한 날의 특별 행사로 간주되었다. 게다가 중세 중엽에는 마음과 정신으로 영성체를 해도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과 거의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여긴 ‘신령성체(영적 영성체)’ 사상이 실제적 영성체의 장애가 되었다.

 

교회는 이러한 관습이 옳지 않음을 깨달아 영성체를 자주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마침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동안의 가르침을 종합하여 “사제의 영성체 후에 신자들이 같은 희생 제사에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더욱 완전한 저 미사 참여는 크게 권장된다”(<전례 헌장> 55항)고 선언했다.

 

 

성체를 영하는 두 가지 방식

 

지금은 손으로 성체를 영하는 방식(손 영성체)이 일반화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천 년이 넘는 동안 입으로 성체를 영했다(입 영성체). 그러나 영성체의 초기 형태는 손 영성체이다. 유다인의 파스카 예식이나 종교적 회식, 최후의 만찬 등에서 모든 참석자는 빵이나 주님의 몸을 손으로 받아 모셨다. 예루살렘의 치릴로(313-386년)는 <신비 교리>에서 “이제 나아가서 … 왕을 모셔야 할 오른손을 위해 왼손을 어좌로 삼으십시오. …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집어서 받아 모시며 ‘아멘’이라고 말하십시오”(V. 21)라고 전한다.

 

6세기경의 문헌에서는 반신불수 등 손 영성체가 불가능한 신자들을 위해 예외적 방식으로 입 영성체를 언급했다. 9세기경부터는 입 영성체가 병자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손 영성체는 점점 사라졌으며, 루앙 시노드(878년)에서 평신도의 입 영성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입 영성체가 확산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신자들이 성체를 손으로 받은 다음 즉시 영하지 않고 집으로 모셔가서 미신 행위 등 부당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둘째, 서방 교회가 11세기경에 누룩 없는 빵을 사용하고 9세기경부터 균일한 작은 면병이 일반화되어 성체를 입으로 영하면 성체 부스러기를 땅에 떨어뜨릴 염려가 없어졌다. 셋째, 중세에 교회가 성직자 중심으로 변하여 성직자만 성체를 만질 수 있다는 사상이 강조되었다. 현재는 손 영성체와 입 영성체를 모두 허용한다.

 

영성체로써 그리스도의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기 이웃, 특히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빵을 먹은 사람이 이웃에게 생명의 빵이 되어 줄 때 영성체의 참뜻이 살아난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6월호(통권 471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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