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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카르투시오 수도원 체험담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7-01 조회수2,101 추천수1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제가 수도자가 되는 길에 대해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중간에 제가 굿뉴스에 글을 올리는 게 수도원에서 알게 되셔서 폰을 수도원에 반납을 해야 돼서 소식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공식적으로 오늘 확인한 사실 하나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굿뉴스에 글을 올린 후에 한 자매님께서 고민 끝에 오늘 수도원에 50만원을 후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분을 잘 모르지만 이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사실을 아는 분입니다. 정말 이분의 삶에 십자가가 이분에게는 너무나도 큰 십자가를 가지고 계신 분인데도 50만원을 후원하셨다는 사실에 감동입니다.

 

이 사실을 다른 수도원에 계신 신부님께 말씀을 드리니 하시는 말씀이 이분의 50만원 후원금은 5000만원의 가치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분의 실명을 밝힐까 하다가 이분이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셔서 밝히지는 않습니다. 제가 굿뉴스에 올린 글을 보고 아마 문의전화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뜻이 있는 분들이 계셔서 후원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그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2일에 수도원에 들어가서 28일 밤까지 고민을 하다가 모든 걸 버리고 수도원에서 살아보자는 결심을 하고 이런 사실을 제 축일인 29일에 밝혔습니다. 저는 사실 일주일 만에 이런 결심을 밝힌 것에 대해 수도원에 계신 분들이 아주 호의적으로 생각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근데 그런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아침 공동체 미사 후에 원장 신부님께서 오셨습니다. 제 독방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질문이 제가 인터넷에 올리는 글을 어디서 볼 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먼저 하셨습니다. 일단 한국 수사님께 메모를 해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굿뉴스에 글을 올리는 사항에 대해 조목조목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저는 이 수도원에 자격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글 쓰는 달란트를 발전시키는 게 더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수도원에 들어와서 살게 되면 그 달란트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고민이 되지만 그 달란트를 살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제가 기회를 한 번만 주십사고 했지만 계속 그 달란트를 발전시키는 게 더 좋겠다고 하십니다.

 

이곳은 기도와 노동을 하는 곳인데 노동을 해도 육체적인 노동보다 머리를 사용하는 쪽으로 노동을 하는 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에 맞지 않을까 하시면서 고민을 해봐야 되겠지만 지금으로선 세상에서 이런 방향으로 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우리 나라에 진출한 어떤 단체를 하나 소개시켜주셨습니다.

 

가톨릭 단체이면서 엘리트 집단이라고 하시면서 스페인에서 진출한 것이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이 단체 때문에 교회법을 변경하시면서까지 만드신 단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회원인 한 자매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의사였습니다.

나중에 통화를 해 보고 또 이곳을 설립한 신부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보니 이분이 아마 의대 교수님이신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의사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중에 교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이 길은 아니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제가 그런 분들과 소통을 할 만한 그런 지적인 사람이 아니고 또 레벨이 저 같은 사람과는 맞지 않아서 단념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후에 나왔습니다. 월요일은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축일입니다. 수도원은 일과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평일, 주일과 축일, 그리고 매주 월요일에 있는 산책을 하는 날에 대한 일과 이렇게 세 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날은 축일이라서 공동체가 식사를 한 후에 공동체가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제 방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셔서 끝난 후에 세 분의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일종의 작별의 시간이었습니다. 다큐에서 나오는 신부님 비오 신부님이 계십니다.

 

미사를 집전하시는 그분은 보니 눈치가 제가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사고 하니 원장 신부님께 같이 한번 식구로 생활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원장 신부님은 고민은 되지만 지금으로써는 글 쓰는 달란트를 발전시키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완강한 태도로 일관하셨습니다. 초대 원장님이셨던 프랑스에서 오신 수련장 신부님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세 분이 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수련장 신부님께서도 저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반응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다른 분을 통해서 들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 권한은 원장 신부님 소관이라 일단 원장 신부님의 의견에 다른 신부님들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종적으로 이 길이 아니라고 단념을 그 순간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노릇입니다.

 

제가 글쓰는 달란트는 아마추어 수준이고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필을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런 게 발목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이런 뜻을 말씀하신 분들의 뜻에 순명을 해야 돼서 일단은 그렇게 잠시 대화를 최종적으로 나누고 난 후에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마지막까지 크로티아에서 오신 비오 신부님은 차까지 배웅을 해 주셨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왔지만 이렇게 무너지니 정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이젠 세상일에 열심히 하고 세상에서 열심히 다시 살아야 되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미련과 아쉬움이 남아서 원래 작년에 제가 갔던 수도원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고 하신 아빠스님의 말씀 때문에 다음날 어제 화요일에 고성 올리베따노 수도원에 가서 아빠스님을 잠시 만나뵈었습니다. 다른 손님과 약속이 있어서 토요일 날 오전에 수도원에 다시 만나자고 해서 그때 오기로 하고 수도원을 나왔습니다.

 

수도원에서 아빠스님을 기다리면서 다른 수사님과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성소를 담당하시는 수사님이십니다. 수사님과 잠시 동안 이런 저런 성소에 관련된 수도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도 들었습니다. 제가 카르투시오 수도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도원에서 6년 생활을 하고 나가신 분이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른 수도원도 아니고 그런 수도원에서 6년을 생활을 했으면 그건 대단한 인내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니 수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수도생활 40년을 하고도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올리베따노 수도원은 아닙니다. 다른 수도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 정도면 세상적으로는 이미 죽을 나이나 마찬가지이고 40년이라는 수도생활을 한 게 완전 물거품이 되는 그런 상황처럼 느껴져서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때 전에 한 6년 전에 이 수도원에 계신 발렌타인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수도 생활은 관 뚜껑 닫기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수도생활이 힘들다는 단적인 면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수도생활은 살아봐야만이 알 수 있는 거지 수도생활이 어떤 것이라고 말만을 해서는 도저히 모르는 생활이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자기가 경험을 하지 않고서 그냥 외부적으로 보는 모습은 환상적인 모습이 될 수가 있지만 실제 살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항구하게 가진다는 게 생각보다 엄청 어렵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하느님만을 찬미하려고 수도원에 들어가지만 살다보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처음 그 마음이 희석이 되고 무디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 수도생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되고 고민이 되다 보면 자칫 잘못하면 수도자의 길을 포기하는 결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는 과정이 수도생활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빠스님과는 약속을 했지만 수사님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지만 그냥 다시 아빠스님께 말씀을 드릴 생각입니다. 제가 운전을 하면서 물론 힘은 들지만 카르투시오 수도원에 대한 갈망이 더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젠 고성에 있는 수도원은 단념하기로 했습니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파킹을 한 후에 이젠 세상 모든 것을 다 포기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아시는 신부님이 작년에 말씀을 해 주신 게 있었습니다. 그땐 신부님이 스페인에서 제게 메일로 전해주신 내용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악인의 천막에 있는 것보다 하느님 집 문간에 사는 게 더 좋다고 하시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땐 머리로만 이해를 했습니다. 근데 참 묘합니다. 파킹을 하고 나서 이 말씀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집 문간이 더 좋다고 하는 다윗왕의 그 말이 가슴으로 와 닿았습니다.

 

일주일간의 체험이었지만 기도와 미사를 라틴어 위주로 하고 약간의 한국말이 있고 또 영어로 일부하기는 하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은 의미는 잘 모르지만 뭔가 모르는 끌림이 있고 아침과 저녁에 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세상에서 들을 때는 그냥 새소리로 들렸는데 수도원에서 들을 때는 그 새소리도 새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새소리 같다는 생각을 하니 시편에 나오는 하느님 문간에 살고 싶다는 내용이 더더욱 제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주에 계신 신부님께 이런 내용을 말씀드리면서 이젠 세상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가 있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자문을 구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수도원에 기회를 주십사고 간청을 하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한번 더 해봐라고 하셔서 수도원에 저의 이런 의도를 말씀드렸습니다.

 

어제는 간단하게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젠 또 성경에 나오는 재판관에게 끊임없이 청하는 과부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포기를 했으면 절대 수도원에서 기회를 주시지 않겠지만 수도원에서 no를 했기 때문에 그 과부처럼 끈질기게 하면 귀찮아서라도 또 제가 하느님 집 문간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전하면 하느님께서 원장님의 마음을 변하게 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오늘 하도 가슴이 답답해서 교구청에 사목국장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저희 본당을 사목하신 신부님이고 해서 신부님께 자문을 구하려고 갔습니다. 신부님께서 다큐를 다 보셨더군요. 신부님께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린 후에 신부님께서 수련장 신부님께 메일로 지금의 심정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하지 말고 좀 더 시간을 두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상황에서도 이런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다시 한 번 더 그분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아서 일단 시간을 두고 저도 한번 좀 더 제 마음이 항구하게 지금의 제 마음을 계속 유지를 하는지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사실 어제 다른 수도원에 계신 신부님이 다시 수도원에 노크를 한다는 사실은 혹시 굿뉴스에 글을 쓸 때 언급을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가 혹시나 다칠까 봐서 그렇게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냥 저는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사 사람들이 비웃고 조소를 해도 감수하려고 합니다. 신부님은 저를 위해서 해 주신 말씀이지만 저는 이런 거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 집 문간에서 살 수가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원장 신부님과 면담을 하면서 여러 가지 가 있지만 아주 인상적인 내용이 하나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오셨으니 많은 수도자를 봐왔고 또 마지막을 지켜보신 분이라 이 길을 끝까지 가신 분들을 보면서 한평생 이 길을 가신 분들이 만약 후회를 한다면 딱 한 가지 하는 게 있다고 합니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이 생활이 고달픈 생활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에 대한 응답으로써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나 감동이 되었습니다.

 

제가 일주일 정도 생활하면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생각한 게 이 생활이 인간세상에서 이보다 더한 보속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며칠만 이 수도원에서 생활해보신다면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런 말씀은 아마도 그런 힘든 수도생활에서도 부르노 성인이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평화를 느낄 수가 있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걸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걸 만약 체험을 한다면 그 감미로움에 아무리 이 생활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맛을 체험한 이상은 하느님을 포기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정말 이게 제가 갈 길이 아니라고 하는 판단이 설 때까지는 계속 이 길만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성모님께 의지하면서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내일은 다른 이런저런 수도원에서 보고 느낀 감동적인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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