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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당에서 정신질환자를 고치시다.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1 조회수827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하느님께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히브리서 2,5-12

5 하느님께서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곧 앞으로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 두신 것이 아닙니다.

-. “앞으로 올 세상은 모든 원수로부터 해방되는 새롭고 영원한 천상 세계로서,후기 유다교가 가르치던 메시아 왕국이 바로 그러한 세상이다.

 

6 어떤 이가 어디에선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 인용문의 발설자와 책 이름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이 말씀이 널리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필로 등 당대의 저자들이 성대한 증언을 시작할 때에 즐겨 쓰던 표현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를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7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괴의 관을 씌워 주시고, 8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 시편에서는 사람”,“사람의 아들을 일반적인 뜻으로, 곧 위대함과 비천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히브리서 저자도 같은 뜻으로 이 단어들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참 사람이신 예수께 적용하고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인자)”은 그 의미가 다르다.

 

시편에서는 잠깐라는 말을 조금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여 사람의 아들 신분과 연결시키나,여기서는 짧은 기간을 뜻하는 시간적 의미로 사용한다. 천사들은 칠십인역 표현이고 히브리어 원문에는 하느님으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칠십인역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잠시 천사들보다 낮은 피조물인 사람이 되셨다가 다시금 영광스럽게 되셨음을 설명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만물을 그의 지배 아래 두시면서, 그 아래 들지 않는 것은 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기에는 만물이 아직도 그의 지배 아래 들지 않았습니다.

-. 시편에서는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통치권을 예수께 적용하여,그분이 천사를 포함한 만물의 지배자이심을 밝힌다. 그러나 그분의 완전한 통치는 1고린15.25-28; 에페1,20-22에서도 증언하듯이 종말에야 이루어질 것이다.

 

9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 앞의 시편 내용을 직접으로 예수와 연결시킨다, 예수께서는 육신과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사람으로 사셨고 특히 고통을 받고 죽음까지 체험하시는 등 천사들보다 일시적으로 낮아지셨다.

 

10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 하느님은 만물의 기원이며 최종목적이시다. 그리스도께서도 하느님의 아들로서 만물의 기원이고 상속자이며 완성자이시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 “거룩하게 해주시는 분은 문맥상 아들이며, “거룩하게 된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임이 확실하다.

 

12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시편 22,23. 이 시편은 박해와 고통을 겪는 어느 의인이 하느님을 신뢰하면서 그분의 구원을 미리 내다보고 하는 고백이다. 이 말씀에는 인간을 형제로 살고 수난까지 마다하지 않으신 극진한 사랑이 들어 있다.

 

 

 

마르코 복음 1,21-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1,21-39를 일컬어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라 하는데,예수님이 실제로 그렇게 하루를 보내셨다고 볼 것이 아니라, 마르코가 몇 가지 단편 사료를 모아서 꾸민 일지로 봐야 한다. ,사실보고가 아니고 의도적 서술이라 하겠는데 그 줄거리는 이렇다.

 

앞서 선정한 네 제자를 데리고 카파르나움으로 가서 안식일 낮에는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이튿날 새벽에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고 이어서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그런데 그분의 가르침이 청중과 목격자들은 놀란 나머지 이게 웬일이냐?”고 큰 반응을 나타낸다.

 

아울러 그분의 명성이 카파르나움 읍내와 갈릴래아 지방에 널리 퍼지니 무수한 사람이 예수께 모여온다. 또한 그분은 당신 신분을 숨기고자 하셨기 때문에 귀신들의 입을 틀어막으신다. 그러니까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에는 마르코의 예수관이 집약되어 있는 셈이다. 마르코는 우선 예수님의 일과를 서술하여 장차 그분이 어떻게 활약하실 것인지 미리 알려준다. 그러므로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는 예수 활약 전체의 본보기인 셈이다.

 

마르코는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를 겪으면서 먼저 당시 신도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구마사화를 채집.수록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용어, 문체, 사상에 따라 더러 개작했다.

구마사화는 3.1과 비슷하게 본디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그들의 회당에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 하나가 있었다.” 유다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신앙고백.기도. 모세 오경과 예언서 봉독, 설교 순으로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했다. 예수님도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셨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그리스 구마사화를 보면 귀신이 쫓겨나지 않으려고 구마자의 신분을 폭로하는 방어사가 있다. 우리 구마사화의 이야기꾼은 그 영향을 받아 방어사를 만들었는데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를 상대로 항변한 말을 참고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은 내 죄를 일깨워 주고 아들을 죽게 하러 오셨습니까?”(1열왕 17.18)

 

방어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러운 영은 자신을 일컬어 우리라 하는데 귀신은 그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귀신들의 두목이 사탄이다. 여기서 귀신은 이렇게 항변한다. 예수는 거룩한 신계에, 자기네는 더러운 사탄계에 속하여 엄연히 소속이 다른데 무슨 상관이냐. 왜 자기네를 거세하려 하느냐. 당신 신분을 나는 파악하고 있다라고.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나지르를 의역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 했다. 그래서 구마사화를 전한 이야기꾼은 나자렛 사람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풀이했던 것이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꾸짖으시니,

-. 우리 복음서의 첫 함구령. 이것은 구마사화에 흔히 나오는 소재다. 그러나 마르코는 자신의 메시아 비밀사상에 따라 그 함구령을 재해석하여,예수님은 평소에 당신 신분을 숨기려 하셨기 때문에 함구령을 내리셨다고 보았다. 귀신에게 내린 함구령이 1.34;3.12에도 있다.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자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구마사화와 치유이적사화는 으레 목격자들의 반응으로 끝맺는 법인데, 흔히 여기서처럼 경탄사를 발한다. 다만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만은 마르코가 덧붙인 것 같다. 그는 구마행위를 가르침으로 평가했다. , 구마행위는 하느님의 왕정이 마력을 물리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드러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뿐 아니라 구마행위로써 하느님 왕정의 위력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 처사를 일컬어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라 한다.

 

예수시대 사람들은 귀신이 무수히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귀신이 존재를 불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구마사화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들은 정신병자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마행적은 정신력으로 환자를 고치는 일종의 정신요법이라 할 수 있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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