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1 조회수1,457 추천수9 반대(0)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교구청 사목국에서 교육담당 업무를 하였습니다. 구역장과 반장을 위한 월례연수를 기획하였고, , 여 총구역장 피정을 준비하였습니다. 월례연수는 각 지구에서 있었기에 한 달이면 18번을 지구로 나가야 했습니다. 겹치는 날은 국장 신부님과 나누어서 나갔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에는 교구의 사목교서를 설명하고, 간단한 오락을 준비하였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에는 교구장님의 새해 인사를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주교님의 배려로 월례연수에 참석한 구역장과 반장들에게 묵주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마이크를 잡을 일이 많았습니다. 총구역장님들의 소개로 본당에서 대림, 사순 특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함께하는 여정의 봉사자 교육에도 함께 하였고, 성체분배자 교육도 함께 하였습니다. 사목위원 교육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사목위원들은 본당 사제와 자주 만나게 됩니다. 사목위원 교육을 하면서 본당 신부님의 유형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제가 보좌 신부로 모셨던 신부님들의 사목을 보면서 체험한 것들을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하는 사제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루에 4시간 이상 기도하셨습니다. 신부님의 기도 방에는 커다란 초가 있었습니다. 제방의 초는 1년이 지나도 거의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부님 기도 방의 초는 자주 바뀌었습니다. 초가 다 타들어가 재가 될 때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꽃의 향기가 발이 없어도 퍼지듯이 신부님의 기도는 본당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조용한 성당에서 기도하시던 신부님의 뒷모습이 생각납니다. 아이들과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가셨고, 보좌신부들과 함께 동네 산책을 하셨습니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가듯이, 본당의 일들이 막힘없이 진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정확한 사제였습니다. 신부님께는 시계가 따로 필요 없으셨습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산보를 하셨습니다. 영어, 독일어, 이태리어를 자유롭게 말씀하셨습니다. 건축, 미술,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셨습니다. 본당의 재정도 환하게 아셨고, 투명하게 운영하였습니다. 제게도 두 가지를 강조하셨습니다. 책을 늘 가까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 서양의 고전을 소개해 주셨고, 선물해 주셨습니다. 책을 읽고 신부님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감사할 일입니다. 재정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사제는 본당 신자들이 내는 헌금과 교무금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당 마당에 있던 감나무에서 익지 않았던 감이 떨어졌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감나무도 더 큰 감이 열리도록 불필요한 감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신부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경청하는 사제였습니다. 외국에서 유학하시고 돌아오신 신부님은 첫 본당 사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아셨지만 신부님은 늘 먼저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수녀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성당 마당에 텃밭을 가꾸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목회장님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셨습니다. 중요한 결정은 언제나 사목회장님과 먼저 상의하였습니다. 부족한 저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성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수녀님은 여성 구역장과 반장을 대상으로 성서공부를 하였고, 저는 사목위원들과 함께 성서공부를 하였습니다. 마르코 복음을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에 대해서 토론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예루살렘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와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가난한 이, 병든 이, 외로운 이, 고통 받는 이와 함께하는 권위였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다스림과 권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의 다스림과 권위를 비판하셨습니다. 그들의 다스림과 권위는 위선과 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지고 가야할 짐을 남에게 떠 넘겼기 때문입니다. 말은 있지만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조문은 알지만 율법의 정신은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은 양육강식,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다스림이 아니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묶인 이를 풀어주고, 갇힌 이에게 자유를 주는 다스림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까지도 찾아서 양 우리로 데려오는 다스림입니다. ‘다스림과 권위를 잘못 이해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다스림과 권위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사제, 투명한 사제, 경청하는 사제는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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