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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7: 거룩한 침묵과 노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8 조회수5,267 추천수0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7) 거룩한 침묵과 노래


하느님과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한 고요함

 

 

침묵, 전례 거행의 바탕

 

침묵은 사랑의 언어다. 사랑하는 이들만이 침묵 안에서 서로 대화할 줄 안다. 수많은 말로 자신을 드러내고 치장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사랑하는 이의 말에 먼저 귀 기울일 줄 안다. 그리고 서로 마주한 그윽한 시선과 작은 몸짓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헤아릴 줄 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의 참된 일치는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더 잘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에서도 침묵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체험하고 심화하는 바탕을 이룬다. 흔히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침묵할 줄 모른다면, 기도는 일방적인 독백이 되어버릴 것이다. 전례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난다. 개인적인 기도와 인간적인 만남 안에서도 침묵이 이처럼 중요한데,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탁월한 장인 전례 거행 안에 침묵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과 소통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시지만, 실상 우리가 침묵하지 않는다면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적절한 침묵 없이 거행되는 전례는 온통 인간 행위로만 이루어진 어떤 생산적인 활동처럼 여겨지기 쉽다. 

 

거룩한 침묵은 미사 거행의 본질적인 요소이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5항 참조) 가톨릭 전례의 아름다움은 침묵을 제때에 지킬 때 잘 드러난다. 우선 미사 거행에 앞서 잠시 침묵을 지킬 필요가 있다. 외적이고 내적인 침묵의 순간을 통해 모든 거룩한 행위의 첫째 조건인 고요함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고요함 속에서 신자들은 거행될 신비에 경건하고 합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하고 다함께 영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갖추게 된다.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사제는 참회 행위와 기도의 초대의 말 다음에 신자들을 잠시 침묵하도록 이끈다. 이때의 침묵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고 모든 신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도록 도와준다. 침묵 가운데 부족한 죄인인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할 때, 또 형제들의 잘못을 들춰내거나 심판하지 않고 용서할 때, 침묵은 자비의 행위가 된다. 특별히 말씀 전례에서 독서와 강론 다음에 이루어지는 침묵의 순간은 매우 중요하다. 이때의 침묵은 마음을 모으는 데 방해되는 온갖 형태의 조급함을 피하고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행위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준다.(56항 참조)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머무실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할 때, 침묵은 믿음의 행위가 된다. 그것은 전례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겸손의 자세이기도 하다. 끝으로 영성체 다음에 우리가 받은 사랑의 선물에 대해 침묵 가운데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시간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때의 침묵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드리는 흠숭의 행위가 될 것이다.

 

 

노래하는 그리스도인

 

“미사 거행에서, 교우들의 특성과 전례 회중의 능력을 고려하면서 노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평일 미사에서는 그 성격상 노래로 불러야 하는 전례문을 반드시 모두 노래하지는 않더라도, 주일과 의무 축일에 지내는 미사에서는 봉사자들과 교우들의 노래가 빠지지 않도록 온갖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0항)

 

인간은 노래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노래로 삶의 기쁨과 희망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다. 그들은 노래하는 하느님의 백성이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행하신 놀라우신 권능 앞에서 모세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노래로써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었다(탈출 15,1-18 참조). 시편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했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이다. 이 노래들은 또한 그리스도인이 전례 안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새로운 노래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삶으로 노래하는 존재이다. 노래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자기 자신을 매일의 ‘알렐루야’, 곧 하느님께 바치는 찬양 노래로 봉헌하고자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의 노래는 성령의 움직임에 우리 자신을 맡겨드리는 행위이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을 찬양한 마리아의 모습처럼, 신앙인은 온갖 두려움에서 해방된 존재로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넘쳐나는 기쁨을 온 삶으로 노래한다. 그럴 때 전례 안에서 노래는 구원하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살아있는 사랑의 표현이 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른다.”고 말했고 옛 격언에도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두 배로 기도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미사 거행에서 노래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새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은 미사의 주요 전례문을 ‘노래로 바치는 미사’(Missa cum cantu)로 봉헌할 수 있도록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 따른 악보를 미사 통상문 안에 수록하고 있다. 주례자인 사제들이 먼저 이것을 잘 익히고 아울러 신자들이 노래로 바치는 부분도 숙지시켜서 특히 주일이나 대축일과 축일에 지내는 미사 거행에서 자주 활용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4월 8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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