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전례/미사

제목 [전례] 전례 톡톡: 미사와 음악 - 오르간도 좋지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29 조회수6,476 추천수0

[전례 톡톡] 미사와 음악 - 오르간도 좋지만

 

 

성음악 총회Congresso di musica sacra 때문에 신문 지상에서 설전이 벌어졌어요. 성당에서 현대적인 노래와 악기를 사용한다는 비판 때문이었어요. 이런 것에 관한 규정이 있나요? 그리고 신자들은 참여도 못하는데 그런 ‘아름다운 음악’을 우대해도 되는 건가요? - 바리에서 코시모 -

 

 

시간적 간격을 두고 보면 평가 내리기가 훨씬 쉬워요. 산타 체칠리아 협회(Associazione Santa Cecilia)가 주최한 성음악 총회 중 하나를 놓고 봐도 그래요. 언론에 실린 기사들이 전부도 아니고 정확하지도 않아요. 왜 전부가 아니냐면 미사 음악이라는 주제를 아주 구체적으로 다룬 발표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 아무런 기사가 없었기 때문이죠. 또 왜 정확하지 않냐면 로씨니와 모차르트의 음악이 차지하는 자리가 너무 부각됐기 때문이죠. 위대한 예술가들이 전례를 위해 작곡한 풍부한 성음악 유산이 무시될까 총회는 염려했겠죠. 하지만 사람들이 피부로 와닿는 현실은 성찬 거행에서는 더 이상 그런 음악을 연주할 자리가 없다는 것, 연주는 다른 때 가능하다는 거에요.

 

 

회중이 먼저다

 

전례가 바뀌면 음악도 바뀌어야 해요. 음악은 장식물도 아니고 덧붙이거나 덧씌워진 요소도 아니죠. 음악은 전례의 뼈대를 이루는 요소에요. 최근 대도시 어느 성당들에서 시작된 관행인데, 성찬 거행을 하면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콘서트나 미사를 진행하는 일이 있습니다. 성찬례를 벽걸이 내지는 병풍처럼 만들어버리는 이런 짓은 미사와 참석한 신자들에 대한 모욕이자 스캔들이죠. 왜냐하면 정상적인 예식 진행을 가로막고 기도하러 모인 하느님의 백성의 참여할 권리를 짓밟기 때문이랍니다.

 

아마도 ‘성’(聖)이란 수식어를 바꾸어야 되겠어요. 음악가들과 전례학자들로 구성된 국제협회인 ‘만민 찬양(Universa Laus)’이 오래 전부터 이를 지적해 왔지요. 음악이 그 자체로 거룩한 게 아니죠. 전례 거행을 목적으로 할 때 거룩한 거지요. 그래서 ‘예식’ 또는 ‘전례’ 음악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겠네요. 음악이 전례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고, 어쨌든 항상 전례 자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니까요.

 

미사에 국한시켜 보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으로 회중이 예식 처음부터 끝까지 양도할 수 없는 첫째 자리를 다시 차지하게 됐어요. 사제는 거기서 주례자인 거죠. 회중의 참여를 없애는 건 부당해요. 사제와 주고받는 대화를 없애거나 혹 그 사이에 뭘 끼워넣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음악 또는 노래와 관련된 여러 전례적 봉사나 직무들을 수행하는 사람들, 즉 선창자, 성가대, 오르간 반주자 같은 사람들도 각자 자기 맘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 뜻대로 행동해서는 안 되죠. 모두가 다 함께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기 위해 전체 회중에게 봉사하는 거에요.

 

예식의 전체 구조에서 우선적으로 진행 책임자는 주례자인 사제입니다. 따라서 지침은 사제가 기도하거나 말하는 동안에는 다른 기도나 노래로 사제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도 연주하지 말아야’(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2항 참조)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회중 안에는 합창단 또는 ‘성가대’(schola cantorum)도 포함돼요. 그 임무는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부분을 노래하고 ‘신자들이 노래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위의 책 103항) 주는 거에요.

 

성가는 전례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옛말에도 있듯이,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두 번 기도하는 것’과 같고 노래로써 마음의 기쁨을 표현하기 때문이에요. 공동체 성가는 마음과 목소리를 일치시키게 도와주죠. 이 때문에 예식서 지침을 보면 노래로 부를 대목과 본문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느 순간에 누가 노래하는지 분명하게 규정이 돼있어요. 따라서 문제는 미사 ‘중에’ 노래하는 게 아니라 미사를 ‘노래로 한다’는 거에요. 기도하는 여러 순간들과 여기에 해당되는 기도문들에 음을 달고 음악을 만들어서 예술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제인 거죠.

 

악기들, 특히 오르간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한 규정은 없어요. 하지만 오르간이 성가 반주에 쓰이고 어떤 경우에는 독주도 한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겠죠. 듣는 것도(하지만 이런 순간은 드물고 짧지요!) 참여와 기도의 한 형태랍니다. 침묵도 마찬가지에요. 전례 거행 순간과 별 관계도 없는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하기보다는, 고유 예식문(예를 들어 입당송과 영성체송 시편, 인사말과 대답, 특히 환호하는 부분들)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전례와 음악이 잘 어우러질 수 있게 앞으로 작곡할 음악들을 예식의 모든 때와 잘 적응시켜야겠죠.

 

 

적응 가능성

 

전례 음악에 대한 권위 있고 분명한 지침이 존재해요. 즉 전례 음악의 예술적 아름다움은 전례 거행의 구성과 목적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전례 개혁은 적응도 규정하고 있어요. 심지어 토착화까지 하라고 하죠. 백성들의 문화와 각각의 회중들의 감수성과 능력을 고려한, 노래, 악기, 음악을 선택할 자유가 넉넉하게 허락돼 있어요. 어린이 미사나 청년 미사를 대중 미사나 소수의 노인 미사와 똑같이 거행한다면 맞지 않는 일이죠.

 

우리 시대의 음악 언어도 과거의 음악 언어와 마찬가지로 표현될 권리가 있어요.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음악 예술 스타일이란 건 없어요. 그렇다고 무엇이든 맘대로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요. 획일화와 고정불변화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중앙 권위는 개입하지 않아요. 이런 일은 나라별 주교회의나 교구 당국에 청원하면 되는 거죠. 1983년 이탈리아 주교회의는 미사경본 제2판을 발간하면서 부록 ‘세부규정’ 2항과 13항에서 정확하고 유연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규정들을 직접 만들어 넣었어요. 무엇보다 교구에서 성가 목록을 정하도록 권고하면서 전례에 오르간 뿐 아니라 다른 악기들도 쓸 수 있다고 허락하고 있어요.

 

(R. Falsini, La liturgia. Risposta alle domande più provocatorie, San Paolo, Cinisello Balsamo 1998, 42-45)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가을호(Vol. 39), 번역 최종근 빠코미오 원장수사(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