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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기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4,015 추천수0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기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의 아름다운 경험을 이야기한다. 상대방은 그 이야기를 듣고 함께 아름다운 모습을 연상하며 자신도 경험했던 유사한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그러한 일에는 유사한 감정이 있다고 말한다. 서로 공통된 화제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주고받음으로써 자신들도 같은 기쁨을 경험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 이 두 친구는 자신들의 아름다운 삶을 서로 공유하게 된다.

 

웃어른이나 선배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자신의 삶에서 여러 가지 경험한 바를 이야기한다. 이러이러한 것은 참 좋았고 기쁜 것이었다고, 또 저러저러한 것은 슬프고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그러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도 그러한 일에는 유사한 느낌을 가졌다고 하며,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덧붙여 설명하기도 한다. 또 그런 일에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또 다른 느낌이 있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대화를 나누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교환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자신의 느낌과 감정, 덧붙인 해석이 뒤따른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심거리를 이야기하고 같은 화제를 나눌 때 대화가 성립된다. 요즈음 유행하는 ’사오정 시리즈’는 같은 관심과 화제를 벗어난 엉뚱한 대답이나 다른 화제를 불현듯 끄집어내는 유머이다. 어찌 보면 선문답 하듯 한다. 오늘날 우리 세태를 반증하는 해학이지만, 진지한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유머가 되지 못한다. 해학도 그 자체가 대화로 이루어지며, 그 근원이 원래 이미 서로가 공유하는 공감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화는 이야기로 구성되며 그 이야기는 담론으로서 확대된다. 기본적으로 같은 관심사와 유사 또는 상이한 느낌의 교류가 대화로 이루어진다.

 

기도도 대화이다. 일상의 담론이 사람들 사이의 대화라면,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이다. 아주 친밀한 대화이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므로 동일한 관심사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과 가깝게 만든다. 기도는 하느님과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든다. 내 생각은 이러이러한데 하느님 생각은 무엇인지 묻는다. 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귀담아듣는다.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자리가 된다. 기도는 이렇게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하게 만든다. 곧 하느님과 같은 생각, 같은 느낌, 같은 관심사를 갖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기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무엇일까? 단연 ’주님의 기도’이다. 이것은 일찍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여쭈었다.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었는데, 자기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다(루가 11,1-4 참조). 제자들이 기도할 줄을 몰라서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유다인들은 어느 누구나 다 기도를 잘하였다.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신앙고백문(쉐마)’을 외웠고, 또 덧붙여 하루에 세 번씩 ’18개의 축복 기도문(쉐모네 에스레)’을 외웠다.

 

예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날마다 기도를 부지런히 바쳤기에, 제자들이 기도할 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예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그것은 자기들의 공동체가 이스라엘 공동체와 구별되는 어떤 기도를 요구한 것이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과 대화하는 데 특별히 구별되는 기도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대 공동체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이 ’주님의 기도’를 하루에 세 번 외웠다. 이스라엘 백성이 외던 기도를 대신하여 바쳤다. 이 기도로 그들과 구별되는 그리스도 공동체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셨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더없이 아름다운 기도임을 잘 알 수 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과 더욱 가깝고 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같은 느낌과 같은 관심사를 갖도록 만들어준다.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아빠)라 부른다. 우리와 차원이 다른 분이시지만("하늘에 계신"), 감히 ’아빠’라고 하느님을 친하게 부르고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기보다는 우리 이야기만 늘어놓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에서, 전반부는 아버지의 의지를 먼저 기억하고, 그 뜻하심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후반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과 도움을 청한다.

 

이제 미사에서 영성체를 시작하기에 앞서 주님의 기도를 함께 드린다. 영성체는 성찬례(미사)에서 절정에 속한다. 곧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앞서 주님의 기도를 외는 것은 영성체를 준비하는 것이다. 주님께 감사드리고 우리를 주님과 더욱 가깝게 일치시킨다. 주님과 하나 되는 자리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라 부르면서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성대하게 미사를 봉헌하면 많은 경우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부른다. 그래서 이 노래는 흔히 가장 아름다운 선율과 가락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노래에 우리의 마음을 실어 하느님과 같은 관심사, 같은 생각,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해보자. 그러면 영성체로 주님과 이루는 일치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울 것이다.

 

[경향잡지, 1998년 10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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