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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용서 (루카 17,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1 조회수1,524 추천수0 반대(0) 신고





 

지혜서의 저자는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정의를 사랑하고 주님을 찾으라고 한다. (지혜 1,1-7)
1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의를 사랑하여라.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
2 주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지 않는 이들을 만나 주시고  당신을 불신하지 않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
3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의 권능을 시험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로 드러난다.
4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5 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은 거짓을 피해 가고  미련한 생각을 꺼려 떠나가 버리며 불의가 다가옴을 수치스러워한다.
6 지혜는 다정한 영, 그러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그 말에 책임을 지게 한다. 하느님께서 그의 속생각을 다 아시고 그의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보시며  그의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7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은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로서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안다.

 

화답송 시편 139(138),1-3.4-6.7-8.9-10(◎ 24ㄴ 참조)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 제 말이 혀끝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당신은 이미 다 아시나이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저를 감싸 주시고,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으시나이다. 너무나 신비한 당신의 예지, 저에게는 너무 높아 닿을 길 없나이다. ◎
○ 당신 숨결을 피해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얼굴을 피해 어디로 달아나리이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당신이 계시고, 저승에 누워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
○ 제가 새벽놀의 날개 달아, 바다 끝에 자리 잡아도, 거기서도 당신 손이 저를 이끄시고,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드시나이다. ◎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신다. (루카 17,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2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4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제1독서 (지혜1,1-7) 

"지혜는 다정한 영, 그러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그 말에 책임을 지게 한다.

 하느님께서 그의 속생각을 다 아시고, 그의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보시며,

 그의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온 세상에 충만한 영을,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로서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안다."  (6-7)

 

지혜서 1-5장 지혜서의 제1부로서 정의와 불멸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지혜서 1장 1-15절 시작 권면의 부분인데, "정의를 사랑하여라." (지혜1,1)라는

초대로 시작하여 "정의는 죽지 않는다." (지혜1,15)라고 하면서

정의를 사랑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 마친다.

 

구체적으로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주는 권면으로 시작되지만, 이 권면은

자신의 종교적, 문화적 전통을 벗어나 이방인들의 사고와 행위를

받아들일 위험이 있는 젊은 유다의 지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권면을 감싸고 있는 지혜서 1장 1절과 15절 '정의' 혹은 '의로움'이라는 용어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그 관계에서 흘러 나오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리키는 넓은 성서적 의미로 사용된다.

 

'정의'의 의미는 지혜서 1장 1절의 두 개의 병행구절, 즉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 에 의해 명확히 설명된다.

 

죄를 짓고 하느님을 시험하며 하느님께 신뢰를 두지 않는

불신자들(지혜1,2) 정의도 하느님도 찾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의 지혜와 죄는 공존할 수 없다.

 

한편, 지혜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어가거나"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지혜1,4).

 

다른 한편, "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은 불의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 철학의 용어인 '영혼', '육신', '영'은 전문적인 철학 용어라기보다는

전체로서의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윤리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는 뜻에서

'다정한 영', 또는 '인간을 사랑하는 영'이다(지혜1,6ㄱ).

지혜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들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을 수 없다(지혜1,6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은 이 구절들에서 혀로 짓는 죄들을

가리키는 것 가운데 첫째가는 것이다(지혜1,8-11).

하지만 지혜를 가리키는 '다정한 영' 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사실 지혜 "주님의 영"이며,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지혜1,7)라는 점에서

그리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세계 영혼과 동일한 기능을 행사한다.

 

그러나 저자는 지혜의 우주적 차원에 머무르는 대신에 곧바로 방향을 돌려

"불의한 것을 지껄이는 자들"과  "간계를 꾸미는 자들"(지혜1,8-9)의 윤리를 경고하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열성스러운 귀는 모든 것을 다 들으니"; 지혜1,10)과

"거짓을 말하는 입은 영혼을 죽인다." (지혜1,11)는 것을 일깨운다.

 

지혜서 1장 10-11절에서 "투덜거리는 소리"를 언급하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평한 것을 상기시키며,

구체적으로는 지혜서 1장 6-11절에서

비종교적인 것으로 비판받는 말을 가리킨다.

 

지혜서 1장 12-15절에서 권면은 죽음과 불멸성으로 방향을 돌린다.

'정의'는 하느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삶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정의는 죽지 않지만"(지혜1,15), 그릇된 삶의 길("그릇된 생활")을 택하고

"자기 손의 행위들로" 죽음을 불러들일 수도 있다(지혜1,12).

 

'자기 손의 행위'라는 말은 아마 지혜서 13-15장의 주요 관심사인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것을 처음으로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죽음은 하나의 가능성일 수 있지만, 저자는 지혜서 1장 13-14절에서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다."라는 사실을 즉시 지적하여,

죽음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창세기 3장을 암시한다.

 

<인격적 지혜>는 오늘 독서에는 하느님의 마음이요, 성령님처럼 계시된다.

 

1)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4)

 

간악한 영혼은 착하지도 순수하지도 않고, 하느님의 권능을 시험하거나 비뚤어진 생각을 가진 자,

하느님을 불신하는 자인 것 같다.(1,1-3참조)

동시에 4절을 보면, 죄짓는 자를 말한다.

요한 복음 1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aletos)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dolos)"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희랍어 돌로스(dolos)란 단어는 영어로 guile(가일),subtility(서틸러티), deceit(디시트)로 번역되는데,

교활<狡猾-간사(奸邪)하고 음흉하다>, 엉큼, 간교, 기만, 책략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나타나엘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안에 갈고랑이같은 낚시바늘이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순수한 것을 좋아하시고 섞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2) 지혜는 <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으로 계시된다.(5) 

그 영은 진실만을 찾으며, 어리석거나 둔하거나 융통성이 없지 않고, 정의만을 추구한다.

 

3) 지혜는 <다정(多情)한 영>이지만, 신성을 모독하는 자를 내버려두지 않고 책임을 물으신다.  

 

4) 지혜는 <온 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영>으로 계시된다.

 이것은 아니 계시는 데 없이 곳곳이 다 계신 편재성(遍在性)과 무량(無量: Infinitas,ubiquitas)을 드러내며,

동시에 모르는 것이 없이 사람의 은밀한 생각까지 다 아시는 전지(全知:omniscientia) 를 말한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모두에게 순수한 진실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주소서.

오소서! 성령님! 저희 모두에게 주님께 대한 두렵고 떨리는 외경심과 사랑도 허락하소서.

 

 

 

 연중 제32주간 월요일복음(루카17,1~6)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1ㄴ~2)

 

루카 복음 17장 1~10절루카 복음 9장 51절~19장 27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후기 활동 가운데 예루살렘을 향한 최후의 순회 선교 여행을 떠나시기 직전(17,11) 베레아 지방의 활동(14,1~17,10)의 마지막 시점에 일어난 일들을 다룬다.

 

그리고 17장 1~10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1~4절까지는 성도들의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이웃과 수평적 관계에서 가져야 할 기본 덕목에  대한 교훈이 들어 있고, 5~10절까지는 하느님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한 교훈이 들어 있다.

 

또한 이 가운데에서 1~4절의 전반부형제를 죄짓게 하는 일에 대한 경계(1~3ㄱ절)와 형제간의 상호 용서에 관한 교훈(3ㄴ~4절)이 나오며, 5~10절의 후반부 진실한 믿음에 관한 교훈(5~6절)과 겸손한 봉사에 관한 교훈(7~10절)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베레아 지방 활동을 마감하시며, 주님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주요한 덕목들을 다시 한번 강조하시면서, 루카 복음 15장, 16장에 나오는 비유들을 총정리하시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임을 밝히신다.

 

한편 루카 복음 17장 1~2절 마태오 복음에서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고 배척하는 이야기와 내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마태18,1~7).

 

하지만 마태오 복음에서는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함으로써 그를 죄짓게 하는 것으로 상황이 설정되어 있지만, 루카 복음에서는 소외되고 멸시받는 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 그를 죄짓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동일한 교훈을 여러 장소에서 여러 번 주셨기에 이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두 개의 부정적 의미를 지닌 단어'아넨덱톤'(anendekton; impossible)'스칸달라'(skandala; offences)를 사용하셔서 강조하시고자 하는 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내신다.

 

새 성경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일'로 번역된 '스칸달라'(skandala)의 원래 의미는 '덫'(trap)이나 '장애물'로서 '올무', '부딪히는 돌', '거리끼는 것'으로 성경에 번역되어 있다. 

이것은 형제를 유혹에 빠뜨리거나 교리 혹은 가르침 등으로 잘못된 믿음으로 이끄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며, 세상에 죄를 짓게 만드는 요소가 늘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계신다.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아넨덱톤'(anendekton)'가능하다', '허락하다'뜻이 있는 '엔데코마이'(endechomai) 동사에 부정 접두어 '아'(a)가 결합동사에서 유래했는데, '불가능하다', '절대 허락할 수 없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다시 부정 불변사인 '메'(me)와 연결되어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라는 강한 긍정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면서, 그러한 유혹이 반드시 그리스도인에게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더욱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현실 극복에 대한 강인한 지향이 있어야 됨을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강조 어법으로 제자들에게 촉구하시고 있는 것이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8장 6절마르코 복음 9장 42절에는 '연자매'해당하는 '뮐로스 오니코스'(mylos onikos; a millstone)가 나온다.

 

여기서 '연자'에 해당하는 '오니코스'(onikos) '나귀'(루카14,5)를 뜻하는 '오노스'(onos)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따라서 '연자매', '연자 맷돌'해당하는 '뮐로스 오니코스'(mylos onikos)'나귀의 힘에 의해 돌리는 커다란 맷돌'을 말한다.

 이것은 집안에서 사용되는 손으로 돌리는 작은 맷돌과는 달리 많은 곡식을 한꺼번에 빻기 위해 사용되는 큰 맷돌이었다.

 

루카 복음 17장 2절에는 '리토스 뮐리토스'(lithos mylikos; a millstone)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맷돌에 속하는 돌'이라는 뜻이다. 

이것의 용도는 곡식을 가는 것인데, 때로 이방인들은 이것을 형벌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의 로마 처형법 중에 하나는, 이 돌의 구멍에 목을 매게 해서 바다에 가라앉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처형 방법은 영적 세계에 무지한 이교도들이 바다에서 죽은 자들은 사자(死者)들이 머무는 세계로 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데서 나왔다. 

그들은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의 영혼은 그들이 죽은 물 위에서 영원히 방향도 없이 떠돈다고 생각했다.

 

보통 맷돌에 사람을 묶어 바다에 던져도 가라앉는데, 하물며 대형 맷돌에 목을 매어 빠뜨리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음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연자매에 목을 매어 죽임을 당하는 죽음은 장례를 지낼 수 없는 죽음으로써 최악으로 여겨졌다.

 

한편, '걸고''내던져지는 편'으로  각각 번역된 동사 '페리케이타이'(perikeitai; that were hanged; that were tied)'에르맆타이'(erriptai; be thrown; be cast)는 중간태 내지는 수동태로서, 남을 죄짓게 한 당사자가 제3자,사법당국에 의해서 수장되는 형벌을 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따라서 걸리어지는 '그 목'은 죄짓는 작은 이의 목이 아닌, 작은 이를 죄짓게 한 당사자의 목이며, 그 목에 연자매를 매고 바다에 던지는 주체는 형벌을 집행하는 사법당국이다.

 

그리고 '낫다'에 해당하는 '뤼시텔레이'(lysitelei; it would be better)본절에서 '더 좋다'(it is better)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원래는 '세금을 지불하다'는 뜻으로서 의무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작은 이들 중에 하나를 죄짓게 하면,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것과 같은 준엄한 형벌이 반드시 주어짐을 전제하는 동시에, 차라리 이러한 형벌이 더 낫다는 이중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니까 '작은 이'(one of these little ones), 연약하고 상처입기 쉬운 이들 중에 하나를 죄짓게 해서 내세에서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는 것보다, 바다에 수장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그 개인에게 낫다는 의미이다. 

내세에서의 형벌의 막중함은 연자매에 달려 수장당하는 형벌에 비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은 남들이 보잘것 없게 여기는 작은 이, 소외된 이웃이나 스스로 힘으로 설 수 없는, 믿음이 연약한 이들 하나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당시 로마 사회에서 흔히 시행되던 가혹한 형벌을 언급한 것은 형제를 죄짓게 하는 일을 애타는 심정으로 막고자 하기 위한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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