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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영성체 예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1-10 조회수12,001 추천수0

[겨자씨 한 알] 영성체 예식 (1)

 


영성체 예식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영성체 예식은 축성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며 주님과 하나 되고 신자들과도 한 몸을 이루는 예식입니다. 이 예식의 라틴어 명칭 ‘꼼무니오(communio)’는 공동 참여, 함께 나눔 등을 뜻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거나 이에 함께 참여함을 뜻하지요. 바오로 사도도 영성체 예식을 ‘그리스도의 피와 맺는 친교’ 또는 ‘그리스도의 몸과 맺는 친교’(1코린 10,16 참조)라고 했습니다.

 

이 친교는 단순한 일치를 넘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내어놓은 주님과 인격적으로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도 일부 부유한 신자들이 먹을 것을 장만해 오지 못하는 가난한 신자들을 외면하고 자기네끼리만 식사를 하는 코린토 교회의 관행을 꾸짖었습니다(1코린 11,20-22 참조). 또한, 교우들이 경건하게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실 준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했습니다. “각 사람은 먼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8).

 

 

영성체 예식은 왜 ‘주님의 기도’로 시작하나요?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마태 6,9-13 참조)로, 초대 교회 때부터 전례나 개인기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답니다. 세례 성사를 받은 모든 교우들은 날마다 세 번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는 가르침을 받았지요. 교부들도 주님의 기도 안에 들어있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표현을 일상생활에 필요한 양식 이외에도 성체와 연결시켜 묵상하기도 했답니다. 이러한 교회의 전통 안에서 주님의 기도는 가장 적합한 영성체 준비기도로 간주되었고 4세기경 동·서방 미사전례에 모두 도입되었답니다. 성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5~240)도 말했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간청을 영성적으로 알아들읍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명이고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구절도 합당한 영성체를 위한 훌륭한 간구로 여겨졌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와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구절 또한, 끊임없이 악의 유혹을 받고 죄를 지을 위험을 안고 사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간구입니다. 이러한 모든 면에서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영성체 준비기도이며 성체를 영하는 모든 예식(환자 영성체, 병자성사, 노자성체)을 위한 핵심적인 준비기도가 됩니다.

 

 

‘주님의 기도’에 이어 사제가 바치는 기도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주님의 기도 후에, 사제는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악에서 구하소서’를 이어받아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로 시작되는 기도이지요. 인간은 마지막 날까지 하느님이 알려주시는 진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시련과 혼란을 겪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사제는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특별한 보호와 은총을 다시 한 번 간구합니다. 한평생 평화롭게 해 달라고 청하며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희망을 안고 세상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사제의 기도는 이렇게 주님의 기도에 연결되어 있기에 부속기도(Embolismus)라는 명칭으로도 부릅니다. 이 기도의 마지막은 주요 기도의 마지막을 영광송으로 끝맺는 교회의 전례전통에 따라 영광송으로 마무리합니다.

 

 

영성체하기 전 평화의 예식은 무엇을 기원하나요?

 

영성체 전에 이웃과의 화해와 평화를 표시하는 평화 예식은 이미 2세기경부터 미사전례에서 행해졌습니다. 평화의 예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고 이룩하신 평화를 청하고 있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과 부활 후에 알려주신 인사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샬롬, Shalom)는 단순히 전쟁이나 투쟁이 없는 그런 평화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수난과 부활로 완성하신 그 구원에서 흘러나오는 평화, 하느님과 인간 또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평화를 기원하는 인사를 했으며 교우들은 사랑과 화해의 표시로 서로 입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예식은 교우 상호간에 진정한 사랑과 화해의 표시가 되는 기쁨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나눔의 소공동체, 2018년 1월호, 도희주 기자]

 

 

[겨자씨 한 알] 영성체 예식 (2)

 

 

사제는 왜 축성된 빵을 쪼개고 성작에 넣을까요?

 

평화의 예식 후에, 사제는 축성된 빵을 들어 성반 위에서 나누고 그 작은 조각을 성작 안에 넣으면서 조용히 기도합니다.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유대인들은 식사 때에 가장이 둥글고 큰 빵을 들고 찬양기도를 드린 다음 떼어 나누었지요. 이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사랑과 일치를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사도시대 교회에서도 성찬례 전체를 ‘빵 나눔’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빵을 나누는 예식은 그리스도를 모시는 영성체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룬다(1코린 10,17)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8-9세기부터 전례에서 일반 빵이 사라지고 성찬용 작은 빵이 등장하면서 빵을 떼어 나눌 필요는 없어졌지요. 그러나 교회는 미사에 참석하는 모든 이가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고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빵을 쪼개고 그 조각을 성작에 넣습니다. 성작 안에서 성체와 성혈은 주님의 몸과 피의 일치, 살아 계시고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표시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사제가 축성된 빵을 쪼개고 성작에 넣는 동안 성가대나 해설자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먼저 노래합니다. 신자들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두 번 응송하고 마지막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라고 마무리합니다. 이 노래는 7세기경에 세르지오 1세 교황(Sergius I, 687~701년)이 동방교회에서 도입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께 붙힌 칭호이며(요한 1,29.36),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죽임을 당하고 자기 피로 값을 치러 만백성을 구원한 어린양의 찬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묵시 5,8-12). 바오로 사도도 그리스도를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희생되신 분’이라고 설명했지요(1코린 5,7 참조). 이렇듯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지고 쪼개지는 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파스카의 어린양으로서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어린양께 묵시록의 원로들처럼(묵시 5,8) 찬양을 드리면서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고 그리스도를 모실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영성체 전, 사제는 어떤 기도를 바치나요?

 

사제는 성체 성혈을 합당하게 모시기 위해 손을 모으고 조용히 개인 기도를 바칩니다. 두 가지 양식이 있는데 한 가지를 선택하여 바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양식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셨나이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가 언급한 ‘그리스도 찬가’(필리 2,6-11)와 비슷하며 성체성사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또한, 죄와 악이 없어야 하기에 은총으로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길 함께 기도합니다. 두 번째 양식은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1코린 11,28)라는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제는 다시 한 번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기 전에 심판과 책벌이 아니라, 주님의 몸과 피가 지닌 사죄와 자비의 은총을 간구합니다.

 

 

영성체 전, 신자들은 무엇을 기도하나요?

 

사제는 성체를 들어 올리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들은 복되도다”라고 합니다. 이 초대의 말은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 대한 행복선언이 되며,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에 대한 행복선언도 됩니다(묵시 19,9 참조). 신자들은 이어서 주님께 종의 치유를 간구했던 백인대장의 고백을 함께 합니다. 성체를 바라보며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는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지존하신 주님을 모실 자격은 없지만, 병든 이를 낫게 하고 죽은 이도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는 간청했지요(마태 8,8 참조). 이 기도는 사제와 교우들을 포함하는 공동체 전체가 드리는 기도이며 깊은 겸손과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충만히 담고 있습니다. [나눔의 소공동체, 2018년 2월호, 도희주 기자]

 

 

[겨자씨 한 알] 영성체 예식 (3)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영성체를 하여야 할까요?

 

미사전례에서 주님의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 모시기 위한 준비 예식이 모두 끝나면, 사제의 영성체를 시작으로 신자들의 영성체가 이어집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으로 이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성체와 성혈을 영합니다.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영하며 자신을 음식으로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게 됩니다(「사제 교령」, 13항).

 

신자들도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며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그분의 희생에 동참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살아 있는 양식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신자들이 미사 중에 축성된 성체를 영하여 그리스도의 제사에 완전하게 참여하도록 적극 권장 한다”(「전례 헌장」, 55항)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죄를 지었거나 오랜 시간 냉담했던 신자는 먼저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용서를 받고 성체를 영하여야 합니다.

 

 

성체를 입으로 받아 모시기도 하는데 맞는 방법인가요?

 

지금은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형식이 일반화 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까지만 해도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방법이 보편적이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의 파스카 예식, 예수님이 함께 한 최후 만찬, 초대교회 사람들은 모두 손으로 빵을 나누었고 받아먹었지요. 그러나 9세기경부터 병자들을 중심으로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방법이 교회 안에 퍼지기 시작했고 정착되었답니다.

 

신자들이 성체를 손으로 받은 다음 바로 영하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서 미신행위 등, 잘못된 목적을 위해 사용하거나, 성체를 손으로 받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강조된 결과였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부터 손 영성체의 형식이 다시 요구되었고, 교황청은 1969년에 지역 주교회의가 이를 결정하게 했습니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대부분의 지역교회가 손 영성체 형식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사람은 입으로도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습니다.

 

 

영성체는 하루에 몇 번까지 가능하며 공심재(空心齋)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경건하게 받아 모시는 영성체는 신자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의 고백이며 은총이 됩니다. 20세기에 이르러 교회 안에서는 하루에 한 번 영성체 하는 것이 관습으로 자리 잡았지요. 1983년에는 이와 함께, 미사에 온전하게 참여하기만 하면 하루에 두 번까지도 영성체를 할 수 있다고 허용하였습니다(교회법 917조 참조).

 

공심재(空心齋)는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영성체를 하기 위하여 일정한 시간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공복재(空腹齋)라고도 하지요. 교회는 3세기경부터 공심재의 정신을 살려나가기 시작했으며, 중세 후기에는 엄격하게 강화하였지요. 1964년 바오로 6세(1897~1978년)에 의해 사제와 신자 모두 음식이든 술이든 상관없이 영성체 전 한 시간까지 공심재를 지키도록 결정하였습니다. 현행 교회법은 병자나 노약자나 간병인에게는 공심재를 면제시켰고 모든 신자들도 순수한 물은 언제라도 마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심재의 기본 정신은 성경의 말씀처럼 깨어 기도하는(루카 21,36 참조) 가운데 거룩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자는 초대입니다.

 


성체 분배자로 임명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정규적으로 성체를 분배할 의무를 지닌 자는 주교, 사제, 부제입니다. 신학생, 수도자, 평신도로 이루어진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정규 분배자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지요. 교회는 미사 중에 신자수가 많을 때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권고합니다. 평신도에게 부여된 성체 분배권은 2년마다 갱신하여야 하며, 연장할 때는 교육 후 소속 교구장으로부터 다시 분배권을 받습니다(「천주교 수원교구 전례규정」, P.54 참조).

 

성체 분배자로 임명된 평신도들은 전례와 성체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며 윤리와 도덕에 흠이 없는 이들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교회에서 봉사하는 이들의 자격에 대해 알려줍니다. “품위가 있고 술에 빠져서도 안 되고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도 안 됩니다”(1티모 3,8). 성체 분배자는 자주 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를 하는 등 성체 신심을 돈독하게 유지하여 교회 공동체의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하여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나눔의 소공동체, 2018년 3월호, 도희주 기자]

 

 

[겨자씨 한 알] 영성체 예식 (4)

 

 

영성체 성가와 영성체송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영성체 성가는 예루살렘의 치릴로(315~387년), 밀라노의 암브로시오(337~397년)와 같은 4세기 교부들의 저서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주 불렀던 성가는 시편 34장과 145장 등 시편 성가가 대부분입니다. 성가대가 영성체 성가로 시편을 부르면, 교우들이 성서 구절을 후렴으로 화답하던 전통에서 나온 것이 영성체송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영성체 성가로 불리던 시편 앞으로 영성체송이 나오게 되었고, 10-11세기에는 확실하게 앞부분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영성체송이 되었습니다. 시편 자리에는 다양한 성가가 차츰 불리게 됩니다.

 

사제와 신자들이 영성체를 하는 동안 미사에 참여하는 공동체는 영성체 성가를 함께 부릅니다. 사제가 성체를 영하면 성가를 시작하고 신자들이 영성체를 할 때까지 계속합니다. 영성체 성가로는 주교회의나 교구장 주교가 승인한 시편모음, 성가집에 나오는 시가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영성체 성가는 영성체하는 이들의 영적인 일치를 드러내고, 마음의 기쁨을 표시하며 영성체 행렬의 공동체적 특성을 더욱더 밝혀 준다”(「미사 경본 총지침」, 86항)라고 교회는 알려줍니다.

 

 

성체를 받기 전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제는 성체를 나누어 줄 때, 성체를 들어 보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신자들은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며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아멘(Amen)은 히브리어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그 때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에 동참한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또한, 성체를 받아 모시며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먹는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7-5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체는 현세의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하는 내적인 힘이 됩니다. 이러한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습관적으로 받아 모시지 말고 늘 마음의 준비를 하여 ‘아멘’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영성체 후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 이유가 있나요?

 

영성체가 끝난 후 사제와 신자들은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미사에 참여한 모든 이가 깊은 침묵 안에서 영성체의 은총에 감사하고, 우리 안에 오신 주님과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침묵의 시간은 소중하기에 생략하거나 너무 짧게 가지지 않기를 권고합니다. 또한, 신자들이 단순한 고요함 속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이 시간을 통해 우리들의 몸과 마음 안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그분과 일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침묵 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제대로 가서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칩니다. 교부 히뽈리토(175~235년)의 저서 「사도전승」에서도 영성체 후에 주교가 영성체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거룩한 생활을 위해 간청을 드렸다고 전해 줍니다. 영성체 후 기도는 영성체를 통해 받은 은총과 미사 전체에 대한 공적인 감사의 기도입니다. 또한, 미사의 신비가 실생활 중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기를 간구합니다. 신자들이 미사의 은총을 통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이 기도로서 영성체 예식이 마무리되고, 성찬의 전례도 끝나며 마침 예식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나눔의 소공동체, 2018년 4월호, 도희주 기자]

 

 

참고 문헌

 

「왜 저렇게 하지? 전례의 표징」 (김종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 전례」 (이홍기, 분도출판사)

「미사참례 하는 사람들의 일상 살기」 (도미니그라시 · 조파프로키 공저,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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