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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한국의 위령기도7: 선교 방법으로서 장례 봉사와 위령기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7 조회수6,506 추천수0

[한국의 위령기도] (7) 선교 방법으로서 장례 봉사와 위령기도


교우의 장례를 내 일처럼 함께하는 모습에 선교 열매 맺기도

 

 

천주교의 장례봉사

 

오늘날 한국교회의 장례 봉사는 곳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개 본당 연령회와 해당 지역 교우들을 중심으로 수행한다. 박해시대의 조선교회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서로 돕고 함께 헤쳐 나가는(患難相救), 주님 안에서 형제적 사랑으로 살았으므로 이웃 교우가 선종하면 그 장례는 남이 아닌 바로 내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로 알고 함께 모여 위령기도를 바치고 장례에 필요한 모든 일에 힘을 모았다. 

 

그래서 천주교와 천주교 신자에 관한 편견과 불편이 여전한 상황에서도 개종자까지 생길 정도로 외교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텬쥬셩교례규」 ‘상장규구’의 “교우의 장사를 만나매… 시체는 이 오주 예수의 지체(肢體)이요 성신(聖神)의 궁전이었음을 깊이 생각할 것이니라”와 “교우 죽으매 각처 교우들이 다 인애(仁愛)하는 덕을 채우고, 또 성교회의 실(實)됨을 널리 펴기로 마땅히 많이 모일 것이요, 각각 형세(形勢)대로 상가에 긴히 쓸 것을 가지고 와 부조(扶助)함이 좋으니라”는 규정을 따라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시신을 정성껏 모셨으며, 교우 장사에 최선을 다해 봉사하였다. 또한 “모여 공번되이 송경(誦經)할 때에 상가에 모인 교우는 일제히 와 한가지로 송경할 것이요, 하나(라)도 밖에 따로 있어 외교인과 같이 담배 먹으며 웃으며 지껄이지 못할 것이니…”라는 규정도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상여계, 상장계로부터 연령회까지

 

1886년 한불조약을 계기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이후에 지역교회가 시행한 장례 사업이 선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891년경에는 전주 전동본당에 연령회가 조직되었다. 1910년대의 교회 상장례와 관계된 상여계(喪輿契)나 상장계(喪葬契) 같은 단체는 금전적인 부조나 기도, 미사 봉헌 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선 사업과 봉사 활동도 함께하였다. 1912년에 발족한 천주교중보험회(天主敎中保險會)는 오늘날의 보험처럼 회원을 모집하여 회비를 거둔 뒤에 회원 가운데 상을 당한 이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 주었다. 몇몇 본당 연령회는 해마다 회비를 적립하여 회원이 선종하였을 때 그리고 매년 그의 기일(忌日)에 미사를 봉헌하였다. 1920~1930년대의 대부분 본당 연령회는 상가 봉사와 금전적인 부조, 위령 기도와 미사 봉헌 등 오늘날 본당 연령회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전 교회 차원의 보편적인 단체로까지 확산되지는 못했다.(방상근, 「연령회」, 교회와 역사, 2001년 1월호 참조)

 

1970년대가 되면 대도시에 인구가 급증함으로써 천주교 신자들도 갑자기 늘어났다. 대도시 본당들은 급격하게 늘어난 신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부득이 본당을 분할해야 했고, 자본당(子本堂)들은 교회 묘지를 확보하는 문제와, 여러 지방에서 새로 유입되어 서로 잘 알지 못하는 교우들의 장례를 감당해야 하는 문제 등이 심각하게 부각됐다. 본당들은 기존 연령회를 활성화하거나 새로 연령회를 조직하여 교우들이 선종했을 때 수행해야 할 갖가지 업무들을 본격적으로 맡기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연령회는 지난날의 연령회와 겉모습은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이지만 역할은 더 많아지고 전문화하였다. 임종 전부터 하관 이후까지 바쳐야 할 기도, 예식 준비와 참여 같은 신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물론 경황이 없는 유족을 대신하여 상가등(喪家燈)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뒤치다꺼리와 장례 기간에 필요한 업무 처리, 장의사(葬儀社)가 취급하던 염습까지 손수 하는 등 오늘날 상조회사의 업무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일들을 담당하였다. 

 

이처럼 일정한 시기까지는 염습이나 사후 행정 처리와 같은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는 일이 연령회원들의 중심 업무였기 때문에 염습을 능숙하게 하는 이를 우대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대부분 고인이 살던 집이 아닌 장례식장이나 요양원에서 장례를 거행하고, 매장보다 화장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정도로 장례 환경이 달라졌다. 따라서 연령회원들은 이전의 장례 실무보다는 위령 기도, 예식 준비와 참여, 환자 호스피스, 진정한 형제애에서 우러나오는 유족 돌봄 등과 같은 신앙적이고 내면적인 역할을 우선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여전히 복음 전파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장례봉사, 신앙 선조들의 선교는 말보다 행동으로 

 

이처럼 오늘날 장례 봉사와 위령기도는 거의 연령회가 전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주님 안에서 같은 형제자매들에 대한 장례 봉사와 위령기도가 이들만의 몫일까? 물론 현대 사회는 잠시도 틈을 낼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일해도 살기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한 시간 정도 상가에서 위령기도를 바치거나, 장례미사를 봉헌할 틈마저 낼 수 없을까? 값싼 관도 구입하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 몇 푼도 부조할 수 없을까? 신앙의 선조들은 극심한 박해 때도 목숨 걸고 교우들의 시신을 수습했으며, 가난한 교우의 장례는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돈을 모아 유족들이 부끄럽지 않게 정성껏 치러 주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선교는 말보다 행동, 그보다 불굴의 신앙과 끝없이 넘쳐 나는 주님과 이웃 사랑 정신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크고 단단한 선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12월 16일, 박명진(시몬 · 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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