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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3.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1 조회수1,93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3월 21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예레 17,5-10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복음 루카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처음 갑곶성지에 부임했을 때,

‘갑곶성지에는 아무것도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성당이 없었고 따라서

순례객이 와서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했습니다.

더군다나 성지의 위치도

외곽에 있어서 어두워지면

사람들의 인적이 완전히

끊기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그마한

소리에도 민감해지더군요.

지금은 하지 않는 대남방송도

선명하게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약간 쉰 목소리처럼 들리는 ‘와~~악’하는

소리였습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 어둠만이 있는 곳에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요.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고라니의 울음 소리였습니다.
고라니의 모습을 잘 아실 것입니다.

사슴과에 속하는 포유류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라고 하지요.

그 모습은 아주 귀엽습니다.

그러나 그 겉모습과 달리 내는

소리는 듣기에 거북할 정도로

상당히 경망스러운 울음소리였습니다.

하긴 고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왜가리가 어떻게 우는지 아시지요?

‘왜~~왝’하고 웁니다.

전혀 겉모습을 통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울음소리입니다.
겉모습과 실제는 이렇게 다릅니다.

하지만 이 겉모습을 보고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판단합니까?

겉모습이 반드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 역시

 이렇게 겉모습만을 보면서

살았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자기 집 대문 앞에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는

 가난한 이에게 자선을 베풀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아무런 힘도 없이 비참하게

 누워 있는 라자로가 대단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이득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자는 땅에서 잔치를 즐겼었지만,

라자로는 그 영혼이 아브라함 품에서

쉬며 하늘에서 잔치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라자로에게

물 한 방울, 빵 한 조각 주지 않은

부자가 지금은 제발 물 한 방울만

달라고 애원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겉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돈 많이 벌라고,

높은 지위에 오르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늘 나라의 삶에 집중해야 합니다.

분명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길이 펼쳐집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의 어떤 선행도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선행은

또 다른 선행으로 이어진다.

(아멜리아 에어하트)

(치명자산 정상의 성모상과 십자가)

 어느 암환자의 고백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 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았던

불안감의 바다가 라진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맞습니다. 끝이라고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전동성당 실내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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