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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르2,23-2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9 조회수1,08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19일 화요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르2,23-28)

 

 

1독서 <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히브6,10-20)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11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이 두 가지로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ㄴㄷㄹ-2.4-5.9와 10(◎ 5ㄴ 참조)

◎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 주님을 찬송하리라올곧은 이들의 모임그 집회에서내 마음 다하여 찬송하리라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그 일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네

○ 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당신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시고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

○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보내시고당신 계약을 영원히 세우셨네그 이름 거룩하고 경외로우시다주님 찬양 영원히 이어지네

 

복음<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마르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히브6,10-20)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13-15)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6장 9-12절에서 끝까지 믿음과 인내를 지켜 약속된 상속을 받으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어지는 히브리서 6장 13-20절에서는 이러한 목표를 세우고 추구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약속을 다룬다.

 

특히 이 단락을 시작하는 히브리서 6장 13-15절에서는 히브리서의 일차 독자들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 인내를 통해 약속을 성취 받았다는 사례를 제시하여 용기와 격려를 주고 있다.

 

본문에서 '약속하실 때'로 번역된 '에팡게일라메노스'(epanggeillamenos)의 원형 '에팡겔로'(epanggello) '공언하다', '약속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인간의 약속과 제의는 물론(2베드2,19; 마르14,4) 하느님의 약속에 대해서도 쓰였다(로마4,21).

 

저자는 본절에서 하느님의 약속을 근본으로 삼아 생활했던 아브라함에 대해 언급한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창세12,1-7;17,5-6;18,18; 22,16-18), 히브리서 저자가 염두에 둔 것(히브6,14)은 창세기 22장 16-18절의 내용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주실 때에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심으로써, 이것이 확실하고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임을 보증하여 주셨던 것이다.

'맹세하시면서'로 번역된 '오모센'(omosen)의 원형 '옴뉘오'(omnio)는 원래 성전의 뿔이나 제단과 같은 거룩한 대상들을 '굳게 잡다'라는 뜻을 나타내었으나 후에 '맹세하다'는 의미로 발전되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 은총의 맹세로서 그 효력이 끝없이 미친다. 절대로 변함이 없는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은 모두 축복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육적 이스라엘을 가리키지 않고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말하며(갈라4,7),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브라함의 후손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축복을 이어받는다.

 

한편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는 것은 당신 자신을 담보로 하여(카타; kata ; by) 맹세의 약속을 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께서 담보로 내어놓으신 당신 자신은 얼마나 믿을 만하겠는가!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아니시므로 식언하지 않으시고(민수23,19) 거짓말하지 않으시며(히브6,18) 변함이 없으실(야고1,17) 정도로 믿을 만하다. 이보다 더 믿을 만한 맹세의 담보는 없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담보로 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는 것은 그 약속이 천지가 진동하더라도 지켜질 것임을 말한다.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정녕코'로 번역된 '에이 멘'(ei men)은 '참으로', '확실히', '틀림없이'라는 뜻으로 서약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틀림없이 어떤 것을 이루어주시겠다고 맹세로 약속하셨는데,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22장 17절을 70인역(LXX)에서 인용한 말씀이다.

 

신구약 성경을 모두 알고 있는 우리는 그분의 이 약속이 이사악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갈라3,16; 4,26.28 ;사도3,25).

 

한편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너를 복 주고 복 주며)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동사 구문법에서 강조를 나타내는 형식으로 '틀림없이 복을 줄 것이다' 란 의미가 된다. 영어로 하면, 'I will surely bless you,and I will surely multiply you.' 이다.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로 번역된 '플레튀논 플레튀노'(pllethynon pllethyno)에서 본문에 두 번 쓰인 동사의 원형 '플레튀노'(pllethyno)는 '가득 참'(fullness)을 의미하는 '플레튀스'(pllethys)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가득하게 하다', '번성하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은 본래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창세22,17)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2인칭 단수 대명사 '쎄'(se), 즉 '너'(you)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나타내는 비유법적 표현(제유법; 사물의 한 부분으로 전체를 또는 한 말로 그와 관련되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이 약속은 이사악이나 이스라엘 시대에 성취되지 않고,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인 신약 시대의 교회를 통해 성취되고 있다(갈라3,9).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끈기있게 기다린 끝에'로 번역된 '마크로튀메사스'(makrothymesas)는  '마크로튀메오'(makrothymeo)의 과거분사이며, '마크로튀메오'는 '인내하다', '오래참아 기다리다'는 뜻이다.  이 단어속에는 '질긴 기질'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마크로튀메오'는 '(무엇을) 묵묵히 기다리고자 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끝에'에 해당하는 '후토스'(hutos)는 '이같이'(so)라는 뜻을 강조의 의미로 쓰인것 같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이 당장 성취되지 않는다 하여도 체념하지 않고, 믿음으로 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으므로, 하느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었다.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에서 '받았습니다'로 번역된 '에페튀켄'(epetychen)은, '얻다','도달하다'를 뜻하는 '에피튕카노'(epitingchano)의 부정 과거로서 결과를 나타낸다.

물론 아브라함이 사는 날 동안에 그 약속의 성취가 있었지만, 그 기간에는 매우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가 죽어서 천국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동안, 이 약속은 신약 시대의 교회를 통해 더 많은 성취를 맛보고 있다.

그의 약속은 점점 더 충만하게 성취되었는데메시아의 강생과 그의 영적 후손의 번성이 그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참된 것이었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충실했으므로 이같은 놀라운 일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하느님의 약속은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법이 없다.

그분은 언제나 성실하시며(2티모2,13), 변함이 없으시므로(야코1,17) 그분의 입으로 내신 모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이사55,10-11).

설사 그 약속의 대상인 인간의 성실성에 문제가 있을지라도, 주님의 약속이 무효가 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연중 제2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2,23-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27~28)

 

마르코 복음 2장 27절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라는 구절은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2장 1~8절이나 루카 복음 6장 1~5절에는 없는 내용이다.

아마도 마르코 복음사가가 다른 복음사가가 전승된 내용들 중에 간과한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빠트리지 않고 기록한 것 같다.

 

그리고 이 구절의 메시지는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관한 39개 세부 조항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단죄하고 힘들게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안식일의 참된 의미가 오히려 사람들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셨다.

 

또한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호스테'(hoste; therefore)도 병행구절에는 없고 마르코 복음에만 있는 단어인데, 앞문장과 뒷문장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여기서는 앞문장을 받기보다는 안식일에 대한 전체의 논쟁을 결론짓기 위해 도입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바리사이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데에는 열심이었지만, 안식일이 왜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깨닫지 못했고, 그 결과 그들은 사람들에게 안식을 제공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단죄와 억압, 죄의식의 굴레만을 덧씌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분명한 의미와 안식을 사람들에게 되찾아 주셨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님이야말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는 표현인 것이다.

 

마르코 복음 2장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죄사함의 권한 있으시고(10절),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며(17절), 혼인 잔치 집의 신랑(19절)이실 뿐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28절)까지 되시는 분으로서 나온다.

즉 이 네 편의 논쟁은 모두 예수님의 신적(神的)인 권위에 도전하려는 바리사이들이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인위적 규범을 근거로 제시하며,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시도를 다루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도전에 대해 바리사이들이 반론을 펴지 못할 정도로 각각의 명쾌한 답변들을 일일이 제시하였다(10,17.22.28절).

그런데 그 답변들을 살펴보면, 어떤 분야에 대한 질문이든지 하나의 공통된 관점들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답변자이시고 논쟁을 일으킨 행위의 중심 자체가 되시는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점진적 계시이다.

 

예수님은 바로 '땅에서 죄를 사하시는 권한을 가지신 분'(10절)이시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17절)이시며, '새 포도주, 즉 새로운 질서로서의 복음을 가져오신 분'(22절)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28절)이시라는 것이다.

 

 

연중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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