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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9.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09 조회수1,60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9월 9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콜로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복음 루카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이제 막 운전을 시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는 꽤 되었지만,

이제는 꼭 운전해야 하는 상황에

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운전을 잘하는 친구에게

주행연습을 할 때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친구는 흔쾌히 허락하고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불안한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익숙해졌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도

별 이야기 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한참을 이렇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소리를 지릅니다.
“라이트 켜!”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해가 쨍쨍 내리쬐는 벌건 대낮에

왜 라이트를 켜야 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는데 졸다가 눈을 떠보니

너무 어두워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초보라서 터널에 들어와도 라이트를

켜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렇다면 나의 색안경 색깔은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안경의 색이 어두울수록 세상은

 전부 어둡고, 칙칙하게 보일 것이고,

안경 색이 분홍빛이면 세상은

분홍빛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 안경 색이 우리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마음의 색깔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뀝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실 기적은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도

마음을 돌이켜 믿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기적의 힘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색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것도 어둡고 칙칙한 색안경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어서 기적을

보고서도 믿지 못하고,

흠집을 찾기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날로,

당연히 좋은 일을 해야 하고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색안경

때문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손을 뻗는 것은 아주 평범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는 손뿐 아니라 마음이

오그라든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색안경을 끼고서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오그라든 마음을 뻗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데

주저하게 만드는 오그라든 마음을

활짝 뻗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분명한 것은 오그라든 손을 뻗듯이,

오그라든 마음을 쭉 뻗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성경은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목적을 제시하는 책이다.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심)


가까운 사람에게 더욱더 관심과 사랑을...

“편지를 쓸 때는, 상대방이 나보다

조금 아랫사람일 경우에 가장 잘 써진다.”
평생 많은 편지를 썼던 것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입니다.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윗사람에게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이면 단어 하나에도

신경 써서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길어지고 문장 역시

평소보다 더 많아집니다. 하지만 친구나

후배들에게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편안하고 또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수다를 떨 듯이 글을 쓰게 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윗사람에게는 신경 써서 쓸 글을

보내고 나서도 후회가 들 때가 많고,

편한 사람에게 보낸 글에 대해서는

별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나빠질 때

잘 알던 사람인가요, 아니면 전혀

모르는 사람인가요?

분명히 잘 알았고 또 친했지만,

어떤 말과 행동으로 인해

틀어지지 않았습니까?

바로 나 자신이 상대방을 무조건 편하고

 쉽게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시작되는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친하고 편한 사람이라고 해도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더 관심과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께도 관심과 사랑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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