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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세례 축일]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1,7-1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0 조회수1,20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10일 주일

[주님 세례 축일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1,7-11)

1 월 11 일 주님 세례 축일

1독서<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이사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내가 선택한 이내 마음에 드는 이다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화답송 시편 29(28),1과 2.3ㄱㄷ과 4.3과 9-10(◎ 11)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주님께 드려라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주님의 소리는 힘차고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2독서<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사도10,34-38)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복음<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1,7-11)

그때에 요한은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백) 주님 세례 축일 -1월 09일 월요일

 

주님 세례 축일 제1독서(이사42,1-4. 6-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내가 선택한 이내 마음에 드는 이다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1)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2~4)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갇힌 이들을 감옥에서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6~7)

 

'위로의 책'(이사야서 40~55)의 첫 대목은 '위로하여라위로하여라나의 백성을'(40,1)로 시작된다이 시작말은 히브리 예언 역사의 전환점을 알리는 말씀이다.

이전의 예언자들은 전쟁과 기아역병으로 대표되는 징벌의 신탁을 선포했으나이후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다.

 

바빌론 유배가 끝났음을 알리는 이사야서 40장 2절은 후반부에서 역사적 상황을 명시하는 유일한 곳이다.

'위로의 책'(40~55)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네 개의 노래로 되어있는 '야훼의 종'(Yawhe ebed; 야훼 에베드또는 '주님의 종'에 관한 신탁이다(42,1-9; 49,1-7; 50,4-11; 52,13~53,12).

 

여기서 주님의 종이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비빌론을 멸망시키고 유배자들을 풀어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숱한 고난을 이겨낸 이상적 이스라엘 백성(이사41,8~10) 또는 소수의 경건한 남은 자들모세이사야예레미아와 같은 예언자요시아여호야킨즈루빠벨 같은 유다 왕족아니면 무명의 제이사야서 저자 등 다양한 대상이 제시되었지만본문 자체로는 확실하게 규명하기 힘들다.

 

또한 네 노래가 동일한 대상을 묘사하는지아니면 저마다 다른 대상을 묘사하는지도 판가름하기 어렵다.

약 성경 저자들은 한결 같이 예수님을 '주님의 종'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일단바빌론을 멸망시키고 유다인들을 풀어 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로 '주님의 종'을 이해하고구약은 신약의 예표요 암시요 약속이므로이 '주님의 종'을 '예수님'께 적용하기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북방에서 새로운 정복자를 일으켰고이 좋은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할 사자(使者)를 파견하라고 이스라엘에 명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셨다(이사40,1~9).

그 다음에 하느님께서는 이 정복자를 당신의 종으로 소개하신다즉 당신의 천국 법정의 판결을 민족들에게 집행할 '주님의 종'이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내가 선택한 이내 마음에 드는 이다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40,1)

 

그는 이 일을 조용하고 은은하고 섬세하고 온화하게그러나 단호하게 수행할 것이다그는 이 일이 '세상에이루어질 때까지지치거나 기가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42,2~4)

 

하느님은 이 종을 불러 그를 '백성을 위한 계약과 민족들의 빛'으로 임명하신다그는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 줄것이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갇힌 이들을 감옥에서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42,6~7),

 

이사야서 42장 1절 이하에서 천국 법정의 사자로 '주님의 종'이 소개되었다.

그는 천국 법정에서 내려진 판견들을 이방 민족들에게 통지하고세상에서 그 판결들을 이행할 자이다.

우상들과 우상 숭배자들의 주장을 심의한 재판에서 드러난 이 공의는 이사야서 401~5절과 9~10절에서 예고된 공의다.

 

이사야서 42장 1~4절에서 '공정'(mishipath; 미쉬파트)라는 단어는 3번 나오는데이 단어는 정관사가 없을 떄 '공의'(justice)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훨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이 단어는 '증인들 앞에서 천국 법정에 의해(즉 주님에 의해내려진 판결'을 의미한다.

 

이 판결은 정책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관심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키루스는 이 판결을 실행하기 위한 '주님의 종'(사자대행자)으로 선택받았다주님은 당신의 종(사자)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시고그를 '붙들어 주신다그리고 당신 자신의 '영을 그에게주셨다(이사40,1).

 

이 '주님의 종'이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의 성실성은 이사야서 40장 2~3절에 잘 표현되고 있다.

이 판결(공정정의)은 민족들(40,1)과 세상과 섬들(40,4)에 반드시 알려지고확립되어야 한다.

여기서 섬들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리라는 주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예루살렘의 이웃들을 말한다.

'민족들'과 '세상'과 '섬들'이라는 말은 '주님의 종'의 권위가 다윗이 행사한 권위와 같이 더 넓은 팔레스티나에서 행사될 것임을 나타낸다.

 

이사야서 40장 4절이 '그의 가르침'에서 '가르침'(교훈; torah; 토라)이라는 단어는 후에 모세오경을 나타내는 문적인 용어가 되었다.

토라(모세오경)는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이전에 에즈라에 의해 바빌론에서 완성되고복사되고가르쳐지고권위가 주어졌다.

 

이사야서 42장 6~7절은 주님께서 키루스에게 직접하시는 말씀이다. '부르다붙잡다빚어 만들어 되게 하다 (세우다)' 라는 말은 주님의 종인 키루스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나타낸다주님은 궁극적 목표(구원)에 있어 키루스의 후원자이시다.

키루스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그는 '백성을 위한 계약'과 '민족들의 빛'으로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백성들에게 통치와 공의와 질서를 베풀 책임이 있다.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풀어 주는 일'은 하느님의 백성과 관련된 그의 역할이다이스라엘은 해방을 받고복권되어야 하며그들의 성전이 있는 성()은 재건되어야 한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

주님이 세례 받으셨을 때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고하늘에서 들려온 말씀이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1,11)이다.

오늘 독서의 이사야서 40장 1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내가 선택한 이내 마음에 드는 이다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의 말씀이 복음의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세례 사건에서 실현되고 성취된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시작으로하느님 나라를 위한 공적 활동(공생활)을 시작하신다.

죄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단순한 겸손의 모범도 아니고요르단 강(자연수)을 거룩하게 축성하시기 위해서도 아니다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요한14,6) 예수님께서는 세례가 인간 구원의 절대 필수 조건임을 계시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주님의 간택을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으니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례 때죄와 죄 짓게 하는 악의 세력(사탄)을 끊어 버리고신앙의 진리대로 살겠다고 약속을 했다그러니 다시 되찾은 '주님의 자녀'라는 품위와 지위와 신분의 소중함을 깨닫고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이 '거룩한 은총의 품위'를 잘 지켜 나가자.

 

 

 

 

 주님 세례 축일 복음(마르1,7~11)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10~11)

 

마르코 복음 1장 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를 받으셨다'에 해당하는 '에밥티스테'(ebaptisthe)의 원형 '밥티조'(baptizo)는 '물에 담그다'(2열왕5,14)는 뜻 뿐만 아니라 '물로 씻는다'(루카11,38)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세례는 물속에 들어가 씻기우는 의식으로서 죄씻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례를 믿는 이들 역시 모두 다 받는다는 측면에서 신약의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를 상징한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3~4)

이것을 구약의 제사 제도의 차원에서 보면, 완전한 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동참하여 죄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 1장 8절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계시 되었던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으로서는 아무런 죄가 없으므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마르코 복음 1장 9절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모순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바로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있는 것이다.

즉 그분은 모든 인간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영광의 하느님'이실 뿐만 아니라 죄인인 모든 인간들과 동일시되어 세례를 받으시는 육화(강생)하신 '겸손한 인간',이시라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몸소 세례 의식에 동참하심으로써, 그것으로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예표하시고, 세례가 인간 구원의 절대 필수 조건임을 드러내심과 동시에, 죄씻음의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새로운 의미를 더하셨다.

 

한편 마르코 복음 1장 10절에 나오는 '하늘'에 해당하는 '투스 우라누스' (tous ouranous; the heaven)는 복수형이므로 직역하면 '그 하늘들'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언급하는 '샤마임'(shamaim)과 동일한 형태로써 하늘이 삼층천(눈에 보이는 하늘, 물을 담아둔 곳, 천국)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우주관에서 기인한 표현이다.

그리고 '갈라지며'에 해당하는 '스키조메노스'(schizomenos; opend)의 원형은 '스키조'(schizo)인데, 마태오나 루카 복음사가는 '열다'라는 뜻의 '아노이고' (anoigo)라고 기록한 반면, 마르코 복음사가는 '찢다'(tear) 또는 '가르다' (split)라는 뜻의 '스키조'(schizo)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수세(水洗)를 통한 천상의 변화를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했다.

 

성경에서 하늘이 갈라지는 현상은 주로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를 나타내기 위한 묵시문학적 표현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세례가 의미하는 그의 죽음과 부활은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며,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막혔던 세상과의 친교를 허락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내려오셨다는 것은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며,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합쳐진 세례성사의 완전한 모습과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또한 '성령의 내려오심'에 해당하는 '카타바이논'(katabainon; descending)는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을 위한 '기름부음'이라는 의미가 있다(이사61,1).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성령으로 도유된 자'라는 뜻이며, 구약에서는 왕, 사제, 예언자들에게 '기름부음'을 통해 직책이 주어졌듯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내려오심은 바로 이 삼중직에 대한 공적 인정이며, 위임의 뜻이 있는 것이다.

 즉 만왕의 왕, 우주의 왕, 영원한 대사제,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시며 참된 예언자시라는 당신의 지상 사명이 이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더 알아야 하는 것은 루카 복음 3장 21절에 따르면, 예수님께 성령이 내려오신 것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부 하느님께 바친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는 하느님 음성의 메아리나 인간의 음성이 아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 되심을 성부 하느님께서 확인하시는 성부 하느님의 직접적인 음성이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장 11절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에서 '이다'에 해당하는 '에이'(ei)는 현재 직설법이고, 그러나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의 '내 마음에 들다'에 해당하는 '유도케사'(eudokesa)는 부정 과거 직설법이다.

 전자의 문장은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정확히 묘사하는 구절로서 하느님과 예수님의 부자 관계가 영속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현재형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후자의 '마음에 들다', '기뻐하다'라고 번역된 '유도케사'(eudokesa)의 원형 '유도케오'(eudokeo)는 '마음에 들다'는 뜻과 더불어 '동의하다', '결정하다'는 뜻도 있다.

 

여기서 이 단어가 부정 과거형으로 쓰인 것은 성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세우신 사건은 세례를 받으신 당시에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이것은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되어 과거에 결정된 일이었고,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단지 그 사실을 확인하는 공적 절차였을 뿐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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