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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의 숲: 감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2 조회수5,306 추천수0

[전례의 숲] 감실

 

 

미사에서 영성체가 끝나면 남은 성체는 보관합니다. 보관된 성체로 미사 밖에서 영성체를 하고, 보관된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성체는 보통 성합에 넣어 감실에 모십니다.

 

감실은 작은 상자 형태의 궤로서 성당에서는 벽에 많이 설치합니다. 따라서 미사를 거행하는 모든 성당에는 감실이 있습니다. 성혈은 남겨 보관할 수 없습니다. 제대에서 사제나 다른 봉사자들이 모두 마셔야 합니다.

 

감실은 “천막”을 뜻하는 라틴어(tabernaculum)를 옮긴 말입니다. 12세기부터 교회가 성체 보관 장소와 관련하여 사용하였습니다(처음에는 성합을 보호하고 장식하는 천을 가리킴). 이 말의 어원은 “임시 거처”로써 움막집 또는 천막집으로, 군인들을 위한 이동 막사를 뜻했습니다. 라틴말 성경은 구약 특히 탈출기에 나오는 “거처”(성막)를 이 낱말로 옮겼습니다.

 

성막, 곧 만남의 천막은 사막에 세운 “이동 성소”로서 하느님의 거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이집트를 탈출한 뒤 떠돌이 생활을 하며 신앙생활의 심장으로 여겼습니다. 하느님은 멀리서 내려다보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걷는 분이심을 깨달았던 것입니다(루카 24, 13-35 참조). 성막은 다음 시대에는 성전으로 대체됩니다. 그러므로 감실은 빵의 모습으로 사람들 가운데 머무르시는 하느님의 거처를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초 세기에도 성체를 보관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 모습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자들이나 은수자들이 성체를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보관하는 방식입니다. 아마포로 감싸서 또는 알맞은 함이나 그릇에 넣어 보관하였습니다. 날마다 미사를 드리는 관습이 퍼지지 않은 시대에 성체를 자기 집이나 거처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 식사 전에 먹었습니다.

 

3세기 문헌은 이러한 관습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모든 이는 비신자나 쥐나 다른 동물이 성체를 먹는 일이 없도록 하고, 어떤 부분도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체는 신자들이 모셔야 할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사도전승 37). 신자들 집에 성체를 보관하는 관습은 5세기까지는 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 중요하고 지속적인 방식은 성당에 보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단 가까이 있는 사제의 거처 또는 제의실에 보관하였습니다. 성체를 작은 궤에 넣어 이 방에 모셔 두었습니다. 보관된 성체는 필요할 때, 특히 병자들 임종하는 이들에 분배해 주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성체를 신자들 집에 모시는 관습이 사라지면서 9세기부터 성당에 모시는 관습이 굳어졌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주 제대 위에 감실 두기 시작

 

중세에는 성체 안에 주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믿음이 커졌기 때문에 영성체보다는 성체를 바라보고 공경하는 새로운 신심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성체를 보관하는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단순한 보관을 넘어 경의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13세기 성 프란치스코는 권고합니다. “교회의 명에 따라 성체를 소중한 곳에 모시고 자물쇠로 잠가 두어야 하며, 더없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옮기고 다른 이들에게 신중히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성체를 보관하는 방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전체적으로 통일된 관습은 없었습니다. 보통 다섯 가지 방식을 구분합니다(M. 리게티).

 

△ “속죄 함”(Propitiatorium)이라고 하는 보석함 또는 금고 모양의 상자에 성체를 모신 성합을 넣어 제대 위에 모시는 방식입니다. 라틴말 “속죄 함”은 구약에 나오는 “속죄 판”과 같습니다.

 

△ 성체를 알맞은 궤에 넣어 제의실에 보관하였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있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까지 지속되었던 방식입니다.

 

△ 금속으로 비둘기 형상을 만들어(성령을 상징) 거기에 성체를 모셨습니다. 보통 제대 위나 곁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 제대 가까이 있는 벽에 감실을 설치하여 성체가 든 성합을 보관하였습니다. 안전하고 편리했기 때문에 13세기부터 널리 퍼졌습니다(로마 성 클레멘스 성당). 17세기부터 “제대 감실”이 퍼짐에 따라, 벽 감실은 성유를 보관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 탑 형태로 만든 용기로 제대 가까이 두었습니다. 금속 보호대를 넣어 유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성체를 영속적으로 현시하는 “성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성체 보관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16세기는 개신교들이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교리를 부정하던 때였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가톨릭교회는 성체 안의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강조하기 위해서 주 제대 위에 감실을 두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관습은 사목자들의(베로나의 지베르티 주교, 밀라노의 성 카롤로 보로메오) 노력으로 일반화되고 마침내 교회 규범으로 변하였습니다.

 

 

감실은 거룩함이 모독될 위험이 결코 없도록 닫아 두어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을 통하여 주 제대 위에 감실을 두는 관습은 원칙적으로 폐기되었습니다. 미사 거행 자체가 주님 현존의 시작이자 근본이고(전례 7) 보관되는 성체는 그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단의 중심은 감실이 아니라 거행의 기둥인 제대와 독서대와 주례석입니다. 한편, 공의회 뒤에는 사제는 회중을 바라보고 미사를 봉헌하기 때문에 감실은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에 배치되기 어려워졌습니다.

 

성체는 감실에 넣어 보관해야 합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감실은 성당의 한 부분에, 곧 제단 안이나(미사를 거행하는 제대 위가 아닌), 성당에 붙은, 기도와 조배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총지침 315).

 

아울러 감실의 재질과 관리에 대해서도 지켜야 할 규정이 있습니다. “감실은 보통 하나이고 붙박이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불투명 재질로 만든다. 그리고 거룩함이 모독될 위험이 결코 없도록 닫아 두어야 한다.”(총지침 314).

 

그리고 그 안에 계시는 성체께 드리는 정성의 표시로 감실은 고상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총지침 315). 마지막으로 감실 곁에는 주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그분께 공경을 드리는 뜻으로 언제나 특별한 등불을 켜 놓아야 합니다. 지침은 등불을 밝히는 재료로 기름이나 초를 쓰라고 말합니다(총지침 316).

 

성체를 보관하는 근본 목적도 성체 공경보다는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교우들에게 성체를 분배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하고 그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모시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미사 밖에서도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어떤 이유로나 죽을 위험이 있는 모든 신자는 미사 밖에서 노자성체를 영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을 위험이 길어질 때에는 여러 번 성체를 모실 것을 권장합니다(교회법 921조).

 

마찬가지로 사제들은 정당한 이유로 미사 밖에서 영성체를 청하는 교우들에게 거절할 수 없습니다(성체 신비 33).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도 영성체를 통하여 주님의 제사에 참여하고 교회 가족에 결합되어 형제적 사랑을 누리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배려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4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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