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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전례주년의 정점 파스카 성삼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24 조회수7,009 추천수0

[전례 생활] 전례주년의 정점 파스카 성삼일

 

 

파스카 성삼일은 언제부터 시작하는가?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힌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은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시작하여 파스카 성야에 절정을 이루며 부활 주일의 저녁 기도로 끝난다”(19항).

 

본디 성삼일은, 일찍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했듯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삼일”을 가리킨다.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 묻히심,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성금요일, 성토요일, 주님 부활 대축일인 것이다.

 

성목요일의 주님 만찬 미사는 이 파스카 성삼일의 신비를 예식적 차원에서 미리 밝혀 준다고 할 수 있다. 수난 전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최후의 만찬에서 몸소 제정하신 성체성사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목요일의 이 미사를 가리켜 ‘예식의 파스카’라고 불렀으며, 본격적인 파스카 성삼일의 신비로 들어가려는 탁월한 준비의 시간으로 여겨 왔다.

 

파스카 성삼일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전례주년의 정점이다. 어떤 마음으로 이 성삼일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까? 옛 그리스도인들은 이 거룩한 삼 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4세기 말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에게리아’라는 이름의 서방 교회 출신의 한 여성 순례자가 있었다. 그녀는 삼 년 동안 머물면서 그곳에서 거행된 전례의 생생한 모습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성지 순례기」(Itinerarium Egeriae)라는 이름으로 전해진 이 값진 증언을 통해서 오늘날 거행되는 파스카 성삼일의 전례 거행의 정신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보자.

 

 

성목요일, 예식의 파스카

 

「성지 순례기」에 따르면, 4세기 말 예루살렘에서는 성주간 목요일에 두 대의 미사가 봉헌되었다. 오늘날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에 해당할 두 번째 미사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경당에서 거행되었다.

 

에게리아는 “연중에 이 날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이 장소에서 성찬례를 거행하지 않는다.”고 밝힘으로써 이 성찬례 거행의 특별함을 강조했다.

 

더욱이 이 성찬례가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장소(Caenaculum, 큰 이층 방)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자리인 십자가 경당에서 거행되었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다. 십자가의 희생 제사와 성찬례의 희생 제사 사이의 내적인 결속을 더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낸 성목요일의 특징적인 다른 요소는 밤샘 기도이다. 이날 두 번째 성찬례를 봉헌하고 난 다음에 주교를 비롯한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은 주님께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신 수난의 여러 장소들을 이동하며 밤샘 기도를 바친다.

 

성목요일 저녁부터 성금요일 아침까지 이어지는 이 집중적인 밤샘 기도에서 봉독되는 독서와 복음들은 예수님께서 보내신 수난의 순간을 묵상하도록 이끈다. 밤샘 기도의 전반부는 올리브산의 ‘엘레오나’(Eleona) 성당에서 진행되는데, 이곳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뒤에 제자들과 마지막 담화를 나눈 장소로 여겨져 왔다.

 

밤샘 기도의 후반부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장소로 알려진 ‘임보몬’(Imbomon)과 겟세마니를 거쳐 다시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경당까지 이동하면서 진행된다. 모든 예식은 각 장소와 시간에 알맞은 시편, 후렴, 독서, 복음의 봉독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오늘날 주님 만찬 저녁 미사를 마치고 성체를 옮겨 모시고 난 다음에 드리는 성체 조배 시간에 해당한다.

 

 

성금요일, 십자가 신비의 기념

 

성금요일 전례는 「성지 순례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이에 따르면 성금요일 전례는 크게 십자가 경배 예식으로 이루어진 오전 예식과 말씀 전례를 중심으로 한 오후 예식으로 나뉜다. 십자가 경배 예식은 이시부터 육시(오전 8시-12시경)까지 전날 성목요일의 두 번째 성찬례가 있었던 십자가 경당에서 거행되었다. 에게리아는 당시 서방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십자가 경배 예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십자가에 세워져 있는 골고타 후면에 미리 마련된 어좌에 주교님이 앉으시고 그 앞에 상보를 깐 상을 준비하면 부제들이 그 주위에 서 있습니다. 그다음 도금한 은제 상자를 가져오고 그것을 열어 안에 있는 십자가 보목과 명패를 꺼내어 상 위에 놓습니다. 그러면 주교님은 앉으신 채 보목의 위 부분을 손에 잡고 고정시킵니다. 주위에 서 있는 부제들은 그것을 지킵니다. 이것은 하나의 관습으로 되어있습니다.

 

신자나 예비 신자 할 것 없이 모든 회중이 한 명씩 상 앞에 나아가 머리를 숙여 보목에다 친구하고 지나갑니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어떤 사람이 훔치려고 보목을 물어뜯었다고 하는데 그 뒤부터 부제들이 늘 상 주위에 서서 누가 감히 또 그런 짓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지켜보고 있는 것이랍니다.

 

모든 이가 한 명씩 몸을 구부려 먼저 이마를, 그다음에 눈을, 보목과 명패에 갖다 댄 다음 친구하고 지나갑니다. 아무도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됩니다. … 이렇게 한쪽 문에서 들어와 다른 쪽 문으로 나가면서 십자가를 경배하는 예절이 육시에 끝납니다. 이것은 전날 목요일에 봉헌 예절이 거행되었던 장소에서 거행됩니다.”

 

오늘날 성금요일의 십자가 경배 예식은 바로 4세기 말 예루살렘에서 거행된 이 예식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경배의 대상이 된 십자가는 325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가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주님의 참십자 나무를 가리킨다.

 

한편 오후 예식은 육시부터 구시(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세 시간에 걸쳐 구원 역사의 정점인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말씀 전례를 특징으로 한다. 그 구성 요소들로 주님의 수난과 관련된 시편, 예언서, 사도 서간, 복음의 봉독과 함께 찬미가와 기도가 독서 사이에 삽입된 것을 볼 수 있다. 에게리아는 이 예식에 참여한 당시 회중의 역동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독서와 기도를 할 때에는 모든 회중이 감정에 북받쳐 우는데, 이 광경은 보지 않고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이렇게 세 시간 동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독히 수난 당하셨음을 생각하고 슬퍼합니다. 구시가 되면 주님께서 운명하심을 기록한 요한 복음을 낭독합니다.”

 

 

부활의 충만한 기쁨을 향하여

 

에게리아는 자신이 속한 서방 교회의 관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예루살렘의 성토요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에 관해서는 매우 간략하게 기술한다.

 

부활 성야 미사 전에 어린이들의 세례가 있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여 세워진 골고타 언덕의 두 성당에서 두 번의 성찬례 거행이 있다.

 

4세기 말 예루살렘 성삼일 전례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그 거행의 정신은, 무엇보다 주님의 수난 여정을 따라서 우리도 온전히 삼 일의 신비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최후의 만찬 순간부터 시작하여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따라서 마치 그 시간과 장소에 있듯이 그분과 함께 구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예식은 이 여정의 중요한 순간에 자리하면서 이 구원의 신비를 효과적으로 기념하고 묵상하게 해 준다. 성목요일 밤의 성체 조배는 성체성사란 놀라운 선물을 주심에 감사드리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깊이 일치를 이루는 시간이다. 가능하다면 우리도 예루살렘의 신자들처럼 밤새워 주님 곁에 머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신랑을 빼앗긴 날’인 성금요일과 주님의 무덤 옆에 머물며 부활을 기다리는 성토요일에 교회가 권고하는 파스카 단식은 거룩하다. 성삼일의 첫 이틀간을 이 단식과 기도로 거룩하게 보냄으로써 우리 모두가 부활 성야에 울려 퍼질 주님 부활의 기쁨에 충만히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김기태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3월호, 김기태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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