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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5,911 추천수0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사람들은 새해를 앞두고 한 해의 모토를 정하기도 한다. 필자는 예수회의 모토인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iorem Dei gloriam)”를 소개하며 한 해를 시작할까 한다. 이 말은 자신에게 모든 영광이 오기를 기대하는 이기적인 우리에게 모든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느님이시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분의 영광을 위해 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확인케 한다.

 

내가 어떤 일을 성취했다고 해도 다른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기억하게 하는 말이 있다. 누구누구 ‘덕분에’라는 말이다. 우리는 하느님 덕분에 창조되어 살고 있고, 그분께서 보내 주신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인해 구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므로 미사 때에 ‘감사 기도’를 마치면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영광송을 성반과 성작을 든 사제의 입을 통해 바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이에 신자들은 “아멘” 하고 응답한다.

 

영광송(Doxologia)은 ‘영광을 돌리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하느님의 영광을 공적으로 선포하거나 찬양하는 기도 또는 노래 양식을 말한다. 주요 기도를 영광송으로 마감하는 관습은 구약 시대 유다인들의 기도에서 나타난다. 대표적 예로 시편을 들 수 있다. 본래 다섯 권의 소책자 형태로 되어 있다가 한 권으로 합쳐진 시편집에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곧 시편집은 1-41장, 42-72장, 73-89장, 90-106장, 107-150장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며, 각 부분의 마지막 장(41, 72, 89, 106, 150장)은 영광송으로 끝난다. 마지막 150장은 장 전체가 영광송이다.

 

‘감사 기도’의 전체 주제를 요약하는 마침 영광송을 3세기 히폴리토의 〈사도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때 사제는 주님의 몸과 피를 아버지께 바치며 제대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사제가 하는 이 기도의 첫 구절은 우리를 위해 죽음을 감내하시는 그리스도의 결정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상기시킨다. 예수님께서 당신 스스로 하느님께 가는 길임을 밝히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그리스도와 함께”: 사제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높이 들어 올린다. 우리는 이미 ‘예물 준비’에서 아버지께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면서 헌금을 하나의 봉헌물로 봐 달라고 청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께 봉헌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 아우구스티노가 <고백록>에서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으니, 오 주님,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평안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했듯이, 우리 마음의 갈망은 예수님 안에서 비로소 완전해진다.

 

“성령으로 하나 되어”: 이는 성 바오로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나온 말이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 4,3).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당신의 몸과 피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사제가 제대 위에 높이 들어 올려 감사의 제물로 봉헌하는 것과 같이, ‘감사 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으로 완전해진다. 교회는 자신의 머리이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하나되어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아버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바로 예수님 전 생애의 목표이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한 17,4)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아버지의 뜻을 당신 삶의 중심에 두고 그 뜻을 실현하려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창세 11장의 ‘바벨 탑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과 정반대다. 그들은 하느님을 제쳐 놓고 자기들을 드높이려는 잘못된 길을 갔다.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창세 11,4). 어찌 보면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자신의 명성과 지위와 권력을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오만은 그때까지 하나였던 말이 뒤섞여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낳았고, 그들은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채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다(창세 11,7-9 참조).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겸손과 희생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시며 모든 인류를 하나로 모으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마침 영광송을 통해 이러한 예수님의 파견 목표를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

 

이제 성찬에 참여한 교우들은 영광송에 “아멘” 하고 대답한다. ‘아멘’은 히브리어로 ‘그것은 진실입니다’라는 뜻이다. 이 응답은 유스티노의 〈호교론〉 65장과 68장에 나온다. 4세기말의 성 예로니모는 사제가 ‘감사 기도’를 마치면 교우들이 “아멘” 하고 응답하였는데, 그 소리가 천둥처럼 웅장하게 들렸다고 한다. 교우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제의 영광송에 동의할 뿐 아니라 ‘감사 기도’ 전체에 동의했음을 표시한다. 이 응답은 환호이므로 되도록이면 노래로 성대하게 불러 성부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 옳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월호(통권 466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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