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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거룩하시도다, 거룩해지고 싶은 열망이 담긴 찬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5,359 추천수0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거룩하시도다’, 거룩해지고 싶은 열망이 담긴 찬가

 

 

본당 신부에게 영명축일은 선물과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는 행복한 날이면서 한편으로 부담감을 느끼는 날이다. 축하 인사와 더불어 듣는 “훌륭한 사제 되세요”, “성인 신부 되세요”라는 말이, 격려인 동시에 참된 사제로 잘 살라는 권고가 되기 때문이다. 영명축일이 다가오면 ‘성인 신부’라는 화두를 가지고 끙끙 앓는 경우가 있다. 아직 거룩한 사제가 아니기에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사제들에게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삶의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성인 사제는 모두 하느님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자신의 원의가 아닌 하느님의 뜻(voluntas Dei)을 우선하며 살아갔다.

 

매일 미사 때 ‘거룩함’의 원천이며 정점이신 하느님께 한 목소리로 찬미가를 부르면서도 거룩함과 먼 자신을 발견하면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하느님의 거룩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성찬 전례의 감사송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룩하시도다’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감사송(Praefatio)’은 ‘감사 기도(Eucharistia)’의 주제인 ‘감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미리 보여 주는 ‘서언序言’ 역할을 한다.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특히 산상 설교(마태 5,3-12 참조)에 나오는 복된 이들처럼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데이비드 슈타인들-라스트(David Steindl-Rast)가 말한 “행복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교회는 이 명제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지 모른다. 감사를 통해 행복해지는 원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가 바치는 기도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감사송의 성대한 마무리인 ‘거룩하시도다(Sanctus)’는 혼자 바치는 기도가 아니다. “회중 전체가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일치하여 노래”(<미사 경본 총지침> 79항)하거나 외우는 기도다. 이 찬미가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

 

후반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앞부분은 이사야 예언서에서 천사들의 무리가 찬양의 송가를 큰 소리로 노래한 것을 기억나게 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3). 이 노래는 전통적으로 ‘거룩한’이라는 뜻의 라틴어 ‘상투스(Sanctus)’라고 불렸다. 이 상투스에 ‘찬미 받으소서(Benedictus)’라는 찬가가 첨가된 때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초창기였다. ‘찬미 받으소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예루살렘 사람들이 일제히 노래한 찬가이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

 

로마의 클레멘스는 96년에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찬미 받으소서’ 찬가를 노래했다고 전해 주는데, 그 사실을 비슷한 시기에 <디다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반면 3세기 히뽈리투스의 <사도전승>에서는 ‘거룩하시도다’ 찬가가 전해지지 않고, 로마의 감사 기도에서도 ‘거룩하시도다’는 4-5세기는 물론 6-7세기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2세기 이후 동방 문헌인 <투무이의 세라피온과 예루살렘의 치릴로 저서> 등에서 ‘거룩하시도다’에 대한 흔적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서방에서는 ‘찬미 받으소서’ 찬가가 널리 퍼졌고, 동방에서는 ‘거룩하시도다’ 찬가가 전례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2세기경 유다인들이 안식일 아침에 회당 예배 기도로 바친 ‘세모네 에츠레’의 제3 청원기도에 ‘거룩하시도다’가 세 번 나오며, 묵시 4,8도 ‘거룩하시도다’로 시작하는 찬가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구약성경이 자주 반복하여 강조하는 그분의 대표적 본성이다. 그분은 온전히 거룩하시기에 그분께 속한 백성, 땅, 성전 등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주된 가르침이다. 세 번의 ‘거룩하시도다’는 최상급을 나타냄과 동시에 거룩함의 강도를 점점 높이는 표현법이다.

 

아람어 ‘호산나’(히브리어는 ‘호시안나’)는 직역하면 ‘도움을 주십시오’이다(시편 28,9; 118,25; 2사무 14,4; 2열왕 6,26 참조).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뻐하며 외치는 공동체의 환호’로 쓰인다.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 업적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외치는 백성의 환호라고 볼 수 있다.

 

후반부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고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여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이제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제대에 오심을 환영하고 찬양하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참으로 거룩하고 찬양받으실 분의 백성, 곧 ‘나’와 ‘너’ 그리고 ‘지상’과 ‘천상’의 구분을 넘어선 분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되어 한 목소리로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고, 그분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받아들여 살아갈 때 가능할 것이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1월호(통권 464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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